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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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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세상에서 만난 사람들 (6) - 백의(白衣)의 남자 천사.


BY 여신의 섬 2003-08-08


내가 이차돌님(가칭)을 처음으로 본 것은 올해 2월.
인사동에서 그가 주최한 독신자방 벙개 때였다.

흑두부로 유명한 식당을 못찾고 헤메다 그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마중나와 주었는데.. 난 그만 그의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 해버렸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머리에, 동그란 보라색 뿔떼안경.
옆으로 커다란 녹색줄이 쳐진 라운드 스웨터에 청바지.

그리고 웃으면서 내게 달려들어서 껴안으려고 하면서..
(전 놀라서 잽싸게 피했음돠....^^)
속사포 처럼 빠른 말로 ...
" 어머어머~~ 젠님! 젠님! 반가워요. 반가워요. 오호호호호~~ 오호호호호~~ "
이러면서 내 팔장을 끼면서 깡총깡총 뛰지 않는가?...^^

쉐상에나~~~
여자도 아니고 남자가.. 그것도 나이 마흔 넷이라는 남자가....
아무리 미혼의 노총각 이라지만...
기껏해야 이십대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창백한 하얀 얼굴에 호리호리한 몸매.
너무나도 여성스러운 외모와 호들갑스러운 행동.

그건 정말 내가 평소에 상상했던 이차돌님이 아니었다. -.-:::

난 그의 직업이 남자간호사이며, 바쁜 중에도 열심히 공부를 하여 박사코스를 마치고
지금 모 지방대에 교수로 발령이 나서 재직중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아무리 남자간호사라도 그렇지....
그는 정말 시중에서는(?..^^) 볼수 없는 참 희귀한 사람이었다...^^

본인이 결벽증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좀 독특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이차돌님.

" 어떻게 얼굴을 씻던 대야에 발을 담그어 씻을 수가 있냐?.." 하시면서...

세수는 빨간대야에 하셨고.
발은 파란대야에 씻으시고.
뒷물은 하얀대야에 하셨고.
양말을 세탁하는 대야는 초록색이고...
이렇게 용도에 따라 사용하는 대야가 다르셨던 분.

대야만이 아니라...이차돌님의 아버지 전용 수건은 요일마다 색깔이 달랐으며
가끔씩 어머니가 어제 노란 수건을 오늘 아침에 새로 꺼낸 것이라
우기시는 바람에. 수건에 아예 요일별로 자수를 놓아 표시 하셨다한다...^^

오늘이 화요일인데 어제 월요일 수건이 걸려 있으면 난리가 났고.
욕실 바닥에 머리카락 하나가 떨어져 있어도
기어이 그 머리카락 주인을 찾아 내셨고.
그 주인은 일주일간 욕실바닥 청소를 해야했다고 한다.

어쩌다가 부자가 설렁탕 집에 가서 설렁탕 두그릇을 주문해도
꼭 아버지 깍두가 하나. 아들 깍두기 하나. 따로 달라고 해서...
"그냥 다 드시면 더 드릴께요. " 하는 식당 종업원과 작은 실랑이를 벌이시던 아버지.

어머니 또한 깔끔하시고 청결하셨기에..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차돌님이 대학에 들어가고 또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는 말못할 고충을 겪었다고 한다.

이제는 아니지만..한 때는 자기 수저가 아니면 외부에서 밥을 먹지 않았고.
그래서 꼭 수저를 싸가지고 다녔으며..길거리 음식은 절대로 안먹었다.

대학시절 처음으로 친구들과 식당에서 찌게를 시켜먹었을때..
찌게 한그릇에다가 여러명이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숟가락을 담그면서 먹다니!!..
집에서는 찌게를 국자로 떠서 각자의 그릇에 담아 먹었는데...
충격적 이었다고 한다..^^

어려서 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지닌 그는 간호대학을 지원했고..
그런 그가.. 간호대학을 5년만에 졸업하고 신참 간호사가 되어서
처음 1년간은 주사기 한번 못만져보고. 그저 중환자들 돌보면서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으니..
그 결벽스런 성격에 얼마나 이를 악물고 참았을지?...

그는 이렇게 말한다.
" 결벽증.... 병 치고는 참으로 힘든 병이다.
아마도 내가 간호사가 아니였더라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의 정도이다. "

" 차돌님아! 우리 친구합시다!..^^ " 내가 말했다.

" 안돼요! 자긴 내말 안들어서 미워. 흥~ 내가 그렇게 부탁했는데도..병원도 안가고!!.....

(망막정맥페쇄증으로 고생하던때 난 잽싸게 안과에 가라던 그의 말을 안듣고
유황오리 엑기스만 먹다가 한동안 무쟈게 고생했었다. ..^^

" 눈 아프지마!~~~
그가 왜 그렇게 내눈에 신경을 써주고 야단을 했는지..
나중에 이해가 되었다. 그는 시각장애 6급의 장애인이다.)

그리고 자긴 또 나처럼 이렇게 할수 있어?..못하지 ? 못하지?
그러니깐 우리는 친구가 안돼요!...^^ "

퍼벅~~
그가 갑자기 두 손가락을 브이(V) 자로 그리면서 눈 앞으로 가져가더니
안경을 찔러대자.. 두 손가락이 그대로 안경알을 뚫고 들어가서 눈위에 꽂혔다.

ㅋㅋㅋㅋㅋ
그건... 안경알은 없는 그냥 모양만 안경인... 안경데였다...^^
아~~ 이 친구의 파격스러움에 모두들 그만....배를 잡고 웃었다.

그는 요즘 이렇게 산다.
대학에서 교수님으로 재직히면서 틈틈이 정신병원으로 자원봉사 가고..
그리고 3층 건물 맨 꼭대기 방 세개짜리 옥탑에서... 다섯남자들의 어머니로.. 주부로 산다.

병원에서 만난 알콜중독자 남자어른 3명과 출소자 남자어른 2명.

큰 해장국집의 주방 보조일을 하는 ㄱ님과
조폭출신으로 문신하고 뽕맞은 자리가 괴사되서 수술하고 고생하는 ㅇ님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공사판에 가서 열심히 일하시는 ㅁ님과
지하철역 근처에서 과일행상을 하시는 ㅂ님과
스님이 되고 싶다면서도 머리는 보라색이고 고물상에서 일하는 막둥이와 그렇게 산다.

여전히 그 결벽스러운 성격을 다버리지 못하고 자신을 들볶으면서...^^

삶고..락스에 넣고..비비고 빨고해서. 다른집의 행주보다 더 깨끗한 걸레로...
집에 들어 오는 그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손에서 걸레를 놓지 못하고 쓸고, 닦고.....

몸이 피곤해서 쓰러지기 일 초 전에도 청소를 해야하고.
재떨이에 담배가 하나만 버려져 있어도 비어야 하고....

중환자실 간호사를 하면서 더 심해진 것 같고.
작은 세균 하나라도 소흘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그래도 병원에서 근무 할 때는 잘 견디었고 표시도 많이 나지 않았는데...
직업 때문에 그려려니 이해를 해주기도 했었는데...

그런데 그의 결벽증이 학교에서도 이미 소문이 다 나서
이차돌님 방에는 아무나 잘 들어 오지 못한다고 한다.
혼자 방을 쓰는 건 아니지만...가구들을 잘 배치해서 그는 혼자 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즐긴다...^^

금녀의 집.
그의 집에는 아무나 못간다.
미리...사전 심사(?..^^)를 받아야 한다.
( 평소 장애인과 출소자 공동체에 관심이 있었던 내가... 한번 초대해주라...했더니만...
야멸차게 거절하던 이차돌님...우띠~~~ ^^)

퇴근하는 아저씨들을 일단은 홀닥 벗고 씻어야 밥상에 앉을 수 있게 만들어서
속옷차림으로 밥을 먹게 하는 그 결벽스러움...^^

유전적으로 백발을 타고나서 어쩔수없이 금발로 염색을 해야 했기에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가 부럽다는 그남자.
고무장갑을 끼지 못하고 다섯남자들 밥이며 청소며 빨래를 하느라
늘 손에 주부습진이 걸려서 고생한다며 섬섬옥수가 부럽다는 그남자.

시각장애 6급의 장애인으로 한쪽 눈을 볼 수 없는 장애를 극복하고...
간호사로.. 교수로.. 봉사자로 일인 다역을 하면서 살고..
그러면서도 교도소후원회를 운영하면서 틈틈이 재소자와 출소자를
방문하고 도와주며 사는 이뿐 남자 이차돌님!...^^

그는 메마르고 삭막한 요즘 세상에 어둠들 밝혀주는 ...
진정한 백의(白衣)의 남자 천사이다.

그가 부탁한 말을 끝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설계가 잘 된 건물은 교보빌딩입니다.
교보빌딩은 보도(인도)와 건물과의 사이에 턱이 없습니다. 한번 가보셔요.

이 세상의 모든 장애우를 없애는 방법은. 세상의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