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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세상에서 만난 사람들(2) - 어느 소녀의 러브스토리.


BY 여신의 섬 2003-08-05

 

원치않은 뜻밖의 임신으로 마음 고생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
저는 제가 이런 글을 올리게 될 줄 몰랐습니다.

그런 글을 읽으니..작년에 헤어진 그녀가 갑자기 그리워졌습니다.
작년 5월 30일.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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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녀를 생각하며

자다가 잠이 깨어서 일어났다.
다시 자리에 누우려는데 갑자기 그녀가 생각났다.
그래서 이 새벽녁에 그녀를 다시 만나기위해서
컴을 켜고 부랴부랴 독신자방 익명게시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거기 그녀는 없었다. 그리고 나도 없었다.
최근 네트워크 개편 작업중에 오작업으로 인하여
게시물의 일부가 다 날라갔다는 주인장의 안타까운 읍소가 생각났다.

스물다섯 그녀를 난 익명게시판에서 만났다.

그녀에게는 짝사랑 하던 대학 선배가 있었다.
그러나 그 남자선배는 그녀에게 별로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한창 뜨겁게 사랑의 열병을 앓던 그녀는...
스물 셋 되던 어느 날 밤.
술에 잔뜩 취한 선배를 유혹하여 관계를 갖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 2년 동안..그 선배와 지속적인 육체적 관계를 가져왔다.
사랑이 없는 그저... 몸만 주고 받는 그런 익숙한관계.

"전 그 선배에게 다만 몸뚱이에 지나지 않아요.
그건 사랑이 아니죠. 그 사람에게 최근에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데요.
난 이제 그를 그만 만나야하는데...
전 그를 사랑하는데....어쩌면 좋을까요?"
그녀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남자는 사랑없이 섹스가 가능하지만, 여자는 직업여성이 아닌 이상
그럴수 없다고. 그 선배에게 님이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하라.
그래도 받아주지 않으면 그때는그만 잊고 새출발하라.
혹시라도 임신하기 전에...

남자는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임신할 경우. 여자는 정말 혼자서 감당못할 만큼 힘들어진다.
마음버리고 몸까지 버리기 전에 그만 정리하라" 고 그랬는데..

몇일 뒤 그녀가 다시 불안과 초조와 공포마저 가득찬 음성으로 나타났다.
임신한 거 같다고...
그래서 미리 걱정부터 하지말고 약국에서 임신진단시약을 사서
임신유무를 검사해본 뒤에 같이 문제를 풀어보자고 했다.

한 이삼일이 지났을까?..그녀가 새파랗게 질려서 나타났다.
"저 임신했어요?...어쩌면 좋죠?
그는 저를 인정하지 않아요. 이 아이도..
자기아이가 아니라고 할거여요.
그가 외면하면 저 혼자 아이를 낳아서 키우겠어요.
그를 사랑하니까요. 그의 아이니까요.
그래도..그래도...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서워요."

그러자 게시판에 벌떼 같은 답글들이 쇄도했다.

"미혼모라니... 아이를 유산시키고 새출발하라.
괜찮아. 어쩔수 없는 상황이잖아. 남자가 인정하지도 않는 아이.
넌 평생 아이에게 사생아라는 굴레를 씌워서 불행하게 할거니?
네 욕심만 채우려고. 그래서 나중에 네 한을 아이에게 다풀겠다고?
넌 나쁜여자야. 당장 유산하라고..."

그렇지난 나는 그녀에게 아이를 절대로 낙태해서는 안된다고
간곡하게 설득했다.

입양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아이와 엄마까지 보호해주고
살길을 마련해주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춘천 마리아의 집 이야기며.
아기를 낳은 후에도 또 얼마든지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다..
나중에는 공갈협박까지 했다.
만약에 아이를 유산한다면...자궁건강에 치명적이 될 수도 있으며...
나중에 다시 태어나게 될때에는 님도 똑같이 낙태아가 될 것이다 라고 까지...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선배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같이 의논해보라고 했지만,
절대로 선배에게 죽어도 자기의 임신소식을 전할수 없다는 그녀를 또 얼마나 설득했는지...
선배도 아이의 부모다.
아이의 존재를 알릴 의무가 있으며, 같이 부모로서 책임을 지라고 했다.

몇주를 망설이다가 그녀는 그 선배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 남자..아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난 널 사랑했다. 그러나 넌 나를 사랑하지 않았잖아.
우리는 그저 관계를 가졌을뿐이야. 그 이상도 아니라고..
사랑하지도 않는 사이에서 생긴 아이. 난 인정할 수 없어."

"날 사랑했다고?... 그동안 나혼자만 몰래 가슴 태우면서
짝사랑한게 아니고? 선배도 나를...나를 사랑했었다고?..
그런데 그게 이제와서 무슨 소용이 있단말인가?
우리 이제 헤어지는 마당에..."
그녀는 피를 토하듯 울부짖엇고, 많은 술을 마셨다고 했다.

그리고 더이상 살기를 포기한채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고 했다.
눈을 감고 막 아래로 떨어지려는 순간.
"엄마~~ 나 죽기 싫어. 죽지마!" 하는 아이의 외침소리를 들었다고.
그래서 차마 죽지 못하고 다시 내려왔다고...
그리고 그후에도 아이를 꿈에서 여러번 만났다고...

처음에는 진지하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녀의 호소에 답해주었고.
때로 그녀가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서 안부를 물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답답하고 힘들때마다 나의 가명 닉을 부르며 나를 찾았고,
우리는 이상한 유대감으로 그렇게 가까와졌다.

그런데... 웬지 날이 갈수록..내가 누군가가 장난으로 올린 소설같은 이야기에
답글을 달아주면서 시간낭비 하는 건 아닌가하는 의구심과 회의감이 들었다.

그랬는데... 그후 몇주가 흐른 뒤에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선배가 그녀의 집으로 찾아왔고 그녀에게 용서를 빌었다고...
만나주지 않는 그녀를 애타게 기다리곤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서
또 찾아오고. 찾아오고...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그랬다고...
그리고 아기도 사랑한다고 그랬다고..

양가부모님을 만나뵈었고. 결혼 날짜를 잡았으며..
요즘 결혼준비로 바쁘다고...

게시판에서 모든사람들이 그녀를 축복해주었다.
나도 열렬하게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그리고 최근에 그녀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오는 6월 2일 선배의 고향인 지방에서 결혼식을 할 거라고...
그런데 나를 자기의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다고...
당일 10시에 영등포에서 관광버스가 출발할건데 오겠느냐고...

그런데 나는 선뜻 대답해주지 못했다.
어머니 간병때문에 하루 온종일 시간을 낸다는건 나로서는 무리였기에..
그러자면 또 동생을 하루 온종일 집에다 붙잡아 놓아야 하는데...
사실 요즘 사업상 힘들고 지친 동생에게 그렇게 무리한 부탁을 하기가
안쓰럽고 미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이라면 모를까..아무래도 지방은 좀 어려울 것 같다.
미안하다. 혹시 그래도 모르니까 그때쯤 소식을 다시 달라고
멜주소를 게시판에 남겼다.

아마, 그녀에게 멜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도 그 당시에는 기쁘고 들뜬 마음에 나를 만나보고 싶어했겠지만,
게시판에 공공연하게 드러낸 이야기라도 그녀에게는..
어쩌면 감추고 싶을 사생활일텐데...
그녀도 평생 익명으로 쏟아낸 그녀의 안타까웠던 사랑이야기를
익명으로 묻어두고 싶으리라.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잘모른다.
그녀의 얼굴도, 이름도, 주소도, 전화번호도...
심지어 그녀의 진짜 닉네임 조차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녀가 스물다섯. 꽃같이 아름다운 젊은나이에 한 남자를 사랑하고,
고뇌하고 번민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받았고. 춥고 외로왔다는거.
그리고 그의 아이를 가지게 됬고...
끝내는 사랑을 쟁취하고 승리해서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는거...
그리고 영원히 행복하리라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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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 생각대로 답멜을 보내오지 않았다.
어쩌면 결혼식 준비로 너무 바빴을지도 모르겠다.

때로 가끔 이런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때 그저 게시판에 핸폰번호라도 남겨서 그녀의 목소리라도 한번 들어보는건데...
그렇지만 그때는 나 역시도 익명이었던 자신을 드러내기가 싫었었다..^^

아무려나...난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아마도 지금쯤 그녀는...
귀여운 여자아이나 사내아이의 엄마가 되서 행복하게 잘살고 있으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