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운동을 가려고 알람소리와 함께 눈을 뜨니, 어깨가 뻐근하고 콧속도 막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포근함이 이불 속으로 이끄는데도 기어이 일어나 불을 켜고 세수를 했다. 자꾸만 관절이 풀린 듯 축축 늘어지는 몸이 이상해서 창 밖을 보니,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피고 일렬로 세워진 자동차들도 모두 같은 모양이다.
3월에 보는 눈꽃세상이라니...
산은 지금 얼마나 아름다울까?
내가 가야할 곳도 아직 아무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다.
엉거주춤 운동화를 신고 밖을 나섰더니 겨울에 밟던 그 경쾌한 소리와는 다르게 '처벅처벅', 무겁게 발목을 잡는다. 눈이 내리고 있는 중인데도 나뭇가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불꺼진 동무의 창을 보고 있는 내 꼬락서니가 새하얀 세상에 박힌 것이 너무나 어색해 집으로 돌아왔다.
도대체 얼마동안이나 말들을 조합하지 않았던가?
끊임없이 낱 글자로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내 언어들을 정리할 여유가 그렇게도 없었나...
지금도 아이들 기침소리에 쫓기듯 두드리고 있다.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한다는 부족감에 의지가 꺾이지만, 그래도 적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사명감이 더 크다.
오른편 베란다 쪽을 바라보니 눈이 수직으로 내린다. 어서 모든 걸 다 쏟아내고 말겠다는 듯 필사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다급한 내 모습인양 안타깝다.
이대로 세상 모든 것이 굳어져 있으면 좋겠다. 모두들 잠에서 깨어나지도 말고, 자동차도 그대로 주차해 있고, 오직 눈만 계속 내리는 상태로 말이다.
쌓여서 오래가지도 못할 눈인데, 사람들의 발자국과 자동차가 떠난 시커먼 공간이 날 다시 슬프게 할 것 같다.
2004. 3. 5. 오랜만에 차분해진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