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맞이하는 날이지만 올해는 조금 더 건조한 듯 하다.
특별한 종교를 가진것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만을 믿으며 살아온 탓도 있지만 며칠 전까지 급하게 시험을 향해 달려왔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창고 안 구석진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있던 오래된 장식용품들을 버리고 난 뒤 새로 장만해 놓지 않아서 초록, 빨강의 특별한 분위기가 제대로 날리는 없다.
완전무장을 하게 했던 얼마전의 추위도 오늘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듯하다. 어제의 짙은 안개가 아침 창을 온통 뿌옇게 했던 시간들과 지금 풀어낼 이야기로 위안을 삼아야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어제 였던가~~~~~
큰아들 녀석이 '다 알고 있다'며 산타 할아버지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어떤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과 순수한 동심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순간적 얼버무림으로 넘겨 버렸는데, 울먹이며 내뱉는 몇마디가 엄마의 가슴에 작은 불씨를 남겨 준다.
'엄마, 축구화가 구멍이 나서 맨발로 축구공을 차고 있어요. 멀린의 신비한 마술학교 보다 지금 저한테는 축구화가 더 필요해요. 제발 산타 할어버지께서 축구화를 선물로 주셨으면 좋겠어요.'
작년의 그 뜨거웠던 월드컵의 열기를 타고 어디에서나 둥근 것만 보면 발길질을 해대던 버릇이 여태 지속되어 특별히 태권도나 수영 등의 운동을 시키지 않았어도 운동량을 충분히 소비할만큼 축구를 사랑하는 아이가 된 아들이다.
'전 커서 훌륭한 축구선수가 될거예요.'라는 말에 그 엉성한 헛발질, 소극적인 방어를 코웃음 치던 작년이었다.
우연히 아들녀석의 친구 엄마와 차한잔을 마시면서 들으니 일년 사이에 축구에서는 그 또래 중에서 서열 1위가 되었다고 한다. 사내아이들 세계에서는 뭐든 순위를 정해서 존중해주는 조폭식의 굴복과 의리가 통하나 부다. 무신경하게 지내왔던 지난 일년 동안 급성장(?)한 아들의 실력이 믿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원하는 것을 향해 노력하고 한 발짝 다가서고 있는 녀석이 대견해 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얼마전 대폭 세일 하는 매장에서 축구화를 미리 산 뒤 포장해 거질장안에 숨겨 놓은 사실을 알리 없는 아들이기에 더욱 따뜻한 저녁이다.
케잌으로 간단한 축하파티를 한 뒤 남편이랑 술 한잔을 나누면서 '엄마는 선물 주는 사람도 없네.'라고 투정을 부렸더니 녀석이 주섬주섬 점퍼를 꺼내 입는다.
월요일에 받았던 용돈을 챙겨서 어두운 밤길을 향해 나서는 것이다. 슬그머니 들어오더니 말없이 형광펜 두자루를 내민다.
'이게 뭐야? 엄마 선물이야?' 했더니
'네, 엄마는 맨날 저한테 주기만 하시고 받은게 없으시잖아요. 제가 가겟집 아저씨한테 특별한 형광펜을 달라고 했어요.' 라고 한다.
정말 그것은 특별했다. 생잉크가 들어있어 일반 형광펜보다 3배는 오래 쓸 수 있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것이다.
평생 이렇게 좋은 선물을 다시 받을 수 있으려나?
이제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려 헤진 신발 구멍 밖으로 삐져나온 발이 딱딱한 축구공을 차지 않도록 문 손잡이에 걸어 놓은 빨간 가방안에 선물을 넣을 작정이다. 내가 받은 빨강과 파랑의 형광펜으로는 무엇을 해야할까? 네가 내게 준 그 감동을 이렇게 두서없이 옮겨 적을 수 밖에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