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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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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산.


BY 빨강머리앤 2005-09-26

그리 썩 내키지 않은 산행이었다.

소화해야 할 산행은 어른 기준으로 9시간.

아이들을 동반한 산행이니 그 이상이 소요될게 뻔한 이치였다.

물론 남편도 '가다 못가면 중도에서 내려가면 될 것'이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산에 오르는 일을 인생 최대의 목표 정도로 정해 놓고 사는 듯한 이 남자의

표정으로 봐선 적당한 선에서 중도하차할 것 같지가 않았다.

애초에 산이 좋아 자주 아이들과 산행을 했을 때도 남편은 시큰둥 했었다.

그런 남편이 이젠 자신이 앞장서 가족을 이끌며 산행을 나선지 어언

봄을 거쳐 여름, 가을에 이르렀다. 그 사이 아이들도 왠만한 산을 오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어떤 산이든 한가지 이상의 복병은 있게 마련이어서 산행이 결코 쉬웠던

산을 한군데도 없었다.

그런 가운데 힘을 북돋워 주는 이가 있으니 그들이 바로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얼마 안남았으니 기운을 내라고,

안녕하시냐고 먼저 인사를 건네오는 분들과 서로 인사를 주고 받으면

저도 모르게 발걸음에 힘이 솟는다.

 

천마산을 올라서 각각 이름이 있거나 없는 산봉우리를 세개 지나쳐

철마산을 이르고 그곳에서 다시 지그재그 산봉우리를 두개 넘어 주금산까지 코스가

이번 산행길이었다.

산행은 늘상 처음이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오늘은 다른길로 들어왔더니만

산길 초입을 벗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길이다.

계단길은 유난히 힘들다. 일정한 간격의 계단을 일정한 간격으로 올라가야 하는일이

매번 쉽잖아 나도 다른 사람들 처럼 계단옆길로 새고 만다.

사람들이 오르게 쉽게 하도록 만든 계단길이 오히려 산행을 방해하는 셈이다.

 

첫번째 약수터까지 쉽지 않은 길이 이어졌다. 점심에서 부터 물까지 가족의 모든 짐을

혼자서 다 지고 가는 남편은 어느새 저만치 앞서가고

짐하나 걸치지 않은 맨 몸도 힘겨워 허우적 거리며 딸아이와 난 한참을 뒤쳐졌다. 

그러니 천상 약수터에서 물을 떠담고 있는 남편은 나와 딸아이를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긴 산행을 좀 줄여볼 요량으로 약수터 바로위 비탈길이 아닌 에돌아 가는 평평해

보이는 길을 가자고 조르니 남편은 오르던 길로 가잔다. 그길이 더 빠르다고.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할머니가 남편말에 힘을 실어 준다.

그 말을 마치고 할머니는 먼저 앞서갔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하도 가벼워 보여 연세를 물으니 칠순이 넘었단다. 곱게 화장하고 손에는 도토리를

담는듯한 봉지를 들고 있다. 아이들과 엎치락 뒤치락 쉬엄쉬엄 비탈길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봐라, 할머니도 저렇게 잘 도 오르는데 ..'

남편은 벌써부터 지쳐보이는 나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깍아지른듯 비탈진 길을 넘어서자

어느새 산은 나무의 식생의 변화를 보여주는 완만한 산길로 이어진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은 길이다. 온갖꽃들이 만발해 있고 꽃이 많아 나비도

즐겨 날아오는 곳이다. 가을꽃들이 피어난 산길을 감상하며 너무 느리지

않게 산을 오르려고 노력하면 걷는데도 언제나 남편은 저만큼 앞서가고

나는 한참을 쳐지고 만다. 그런 나를 바람처럼 휙 지나쳐 가는 한 남자.

온몸에서 땀이 물방울 처럼 흘러내리는데 '깔딱고개'를 바로 앞에 두고 '깔딱고개'가

어디냐고 물으며 저만큼 앞서간다. '조금만 더가면 되요' 라는 나의 대답을 들었는지

어쨌는지 꼭 바람처럼 우리를 지나쳐 갔다.

내 걸음에도 조금 힘을 준다. 드디어  바위를 타기도 하고

흙길을 에돌아 가기도 하는 정상까지의 험로의 여정을

무리없이 소화하고 정상을 앞두었다. 정상을 굽어보며

늘 그렇듯이 뿌듯함을 한껏 즐기며 바위투성이 길을

오르려는데 아, 약수터에서 만난 할머니가 벌써 정상에서 내려오는 모양이다.

오르는 사람들을 위해 한켠으로 길을 비켜주며 일일이

인사를 건네온다. '안녕하세요.'그리고 '건강하세요'라고

칠순을 넘긴 할머니가 건강하라고 건네오는 인사는 여느 인사와 같지 않았다.

그 절절한 느낌. 산을 사랑하고 산을 오르는 일을 오랜 세월 해왔던

자신의 인생담을 한마디로 요약해 전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진솔한 마음을 담아 우리도 인사를 한다.'할머니도 오래 건강하세요'

 

사람들이 많은 정상을 얼른 벗어나 아슬아슬한 바위를 밧줄을 타고 내려가 다시 오른

멸도봉에서 휴식을 취했다. 고사목 한그루가 위엄있게 서있는 풍경이 꼭 산수화를

옮겨 놓은듯 하다. 멀리 보이는 천마산 정상과 그 아래 벼랑끝에 아슬아슬 하게

자라고 있는 노송도 한폭의 그림이다. 너무 지체하면 안되어서 다시

길을 재촉한다. 그곳에서 철마산 중간지점까지는 아슬아슬한 벼랑길이 계속이었다.

남편이 앞서가고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이 되어 내 다리 아픈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리막과 오르막이 연속해서 등장하고

날카로운 바위가 솟은 길과 들판같이 완만한 길이 교차를 했다.

산행 중반 오히려 아이들의 발걸음엔 가속도가 붙는다.

괄라리고개 앞에 당도해서 점심을 먹었다. 그곳까지의 길이

험할거라는 정보를 보고 온 터라 이제부턴 조금 더 쉬운 길이 펼쳐질 것이란

예상에 마음이 어느정도 놓인다.

집에서 먹는 반찬이건만 밖에서 먹는 밥은 언제나 그렇지만 참 맛나다.

아이들도 맛있다며 평소보다  많은 양의 밥을 소화했다. 그 많은 길을 걸었으니

허기가 지기도 했겠다.  괄라리고개 삼거리에 성황당이 있어

옛어른들 흉내를 내며 돌멩이를 던지며 소원을 빌어 본다.

 

천마산이 줄을 이어놓은듯 끊임없는 인파로 북적였다면 이곳은 어쩌다 한번씩 사람을

마주칠 뿐 인적이 없어 한가로웠다. 오히려 겁이 날만큼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어쩌다 보이지 않은 봉우리에서 야호를 외치는 등산객의 인적이 느껴지면

그것이 반갑기 까지 했다.

철마산은 쉽게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르막 내리막을 몇십번이나 거쳤을까,

드이어 저멀리 우뚝 솟아나 있는 산봉우리가 보인다. 산행을 시작한지 다섯시간째

철마산정상을 앞에 두었다. 아무래도 오늘의 종착지는 철마산일수 밖에 없겠다고

괘도 수정을 하며 정상을 향해 올랐다. 산은 정상을 앞두고 갑자기 가파름으로

산새가 바뀌어 있었다. 그곳에서 간만에 할머니 한분을 만났다. 도토리를 잔뜩

주워 보자기가 두툼해 보이는 걸로 봐선 산행보다는 도토리를 줍기 위해 산을

찾은 할머니 같았다. 주금산에서 벌써 다섯시간째 산행중이라고 하니

두개의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는 할머니께도 역시 존경의 예를 다해 인사를 드린다.

'살펴가시고 건강하시라'고.

 

철마산정상은 조붓했다. 깍아지른듯한 커다란 암벽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조망해

보고 싶었으나 정상의 바윗돌은 너무 뾰족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조금 돌아 평평한 곳으로

나가 보았는데 그곳에 사람들이 있었다. 일단은 너무 반가운데 마침 커피를 드시고 계신듯

아주머니 두분이 커피를 한잔 건넨다. 산 정상에서 뜻밖에 마실수 있었던 커피의 맛이

아주 특별했다. 그 옆에서 열심히 산을 설명하고 계시는 분은 65세의 할아버지 산꾼.

그러고 보면 오늘은 대단한 할머니 할아버지를 자주 뵈었다.

그분으로 말할것 같으면 벌써 산을 찾은 세월이 40년을 훌쩍 넘었다고.

이 강산 구석 구석 안가본데 없으시다니 우리가 한 산행은 명함도 못 내밀

형편이었고 어디 산을 갔다 왔노라 하니 그 주변 산새와 제반요건까지 줄줄

모르는게 없으시다.  실로  움직이는 '산행백과'사전 과도 같은 분을 만난 것이다.

 

애초에 주금산까지를 산행에 넣었던 우리가 염려했던건 그곳에서

하산하는 길과 그곳에서 부터 집까지의 교통편의도 그분 입에서 줄줄이다.

다행히 그분은 철마산 아랫동네에 사셨고

철마산에서 하산할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길로 우리를 안내하셨다.

함께 철마산을 내려오면서 그분의 산행 이야길 옛날 이야기 삼아

재미나게 듣고 오는 동안 산행의 고통은 저만큼 달아나고

너무도 가볍고 즐겁게 산을 내려오게 되었다.

쉬고 싶다고 하면 편편한 산길을 알려 주셨고,

물을 마시겠다고 하면 미적지근한 우리물과

할아버지의 얼린물을 섞여 시원한 물을 건네 주셨다.

할아버지의 배낭속의 배를 깍고, 우리 배낭속의 사과를

깍아 먹으니 무릉도원의 복숭아라도 그맛은 못 낼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버스에 오르는 우리가족을 배웅해 주고

집으로 향하셨다. 그냥 감사하다고 한마디로 인사를 하기에

큰 배려와 보살핌을 받았으나 그냥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하고 돌아서야 했다.

우리가 산신령을 만나고 온것인가 싶게 돌아보면 비현실적인 일같은

일이 어제 산에서 있었다. 두고 두고 감사한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