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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그 느티나무


BY 빨강머리앤 2005-07-04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느티나무는? 하고 물으면 대게의 사람들은 '두물머리 느티나무'라고 얘기하지 않을까. 반짝스타는 아니지만 두물머리의 느티나무도 스타반열에 오를 만큼 사람들에게 알려진 스타나무다. 왜? 텔레비젼 드라마에 혹은 영화에 배경으로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배경으로 해서 사진으로도 이미 잘 알려진 나무 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텔레비젼 드마라로 먼저 그 느티나무를 만났다. 아주 오래전에...

오래 전에 '첫사랑'이라는 주말 드라마가 있었다. 지금은 부부로 잘 살고 있는 최수종과 하희라가 주연을 했다는 것 말고는 내용도 어렴풋 하다. 그 내용도 어렴풋한 드라마의 시그널화면이 바로 두물머리 느티나무였다는 것만 기억에 또렷하다. 드라마 내용상 느티나무와 그 주변이 꽤나 비중있는 배경이 되어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 기억은 그것 뿐이지만 내가 첫사랑이라는 주말드라마와 함께 그 나무를 떠올리는 건 드라마완 전혀 다른 기억으로다. 그때 딸아이가 갓 세살을 넘길 무렵이었다. 어릴때 부터 책을 참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혼자서 한글을 읽게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냥 무심히 텔레비젼을 켜 두고 방 청소를 하려는데 텔레비젼으로 다가가던 아이가 '첫 사 랑'이라고 한자 한자 짚어 가며 읽는 것이었다.

아이가 글을 읽네?'싶었던 놀라움과 반가운 마음이 한편, 에이, 무슨 ?... 설마, 하는 마음이 들어 아이를 앉혀 놓고 책을 읽게 했다. 딸아이는 떠듬 떠듬 책을 읽어 냈었다. 당장에 텔레비젼을 끄고 이책 저책 쌓아 놓고 아이더러 책을 읽어 보라 시켰던  십여년전 기억 속에 그렇게 아이가 내뱉은 첫 글말, '첫 사 랑'과 함께 두물머리는 내 기억 속에 존재 하고 있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그곳을 이제야 비로소 찾으며 이젠 어느덧 열두살이 된 아이에게 그 얘길 들려 주었다.  정말 그런일이 있었냐고 아이가 되물었다. '그래, 그러니 이 장소는 처음으로 와 보는 거지만 어쩐지 여러번 와 본 것 같은 느낌이다' 고 얘기해 주었다.

비가 흐물 흐물 내렸다. 아이둘은 짱구가 그려진 우산과 무지개색이 채색된 우산을 받치고 앞서 갔다. 남편과 나는 우산을 함께 쓰고 아이들 뒤를 따랐다. 강가를 따라 갈대가 무성히 자라 있었다. 비에 젖은 갈대가 유난히 푸른초록색으로 선명했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조심스럽게 건너 단조롭게 이어진 흙길를 따라 느티나무를 보러 갔다.

비가 와서 인지 인적이 드물어 멀리 보이는 양수대교의 차량 행렬만 아니라면 고요한 강물의 흐름을 느낄수 있을것 같았다. 드라마나 영화 배경이 되었던 탓에 주변이 정갈하게 잘 꾸며져 있다. 지나치게 인공적이지도 않고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울린 채로.

흙냄새를 맡으면서 그길을 걷는 일이 좋았다.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흙탕물을 튕기고 빗물은 우산위로 쉴새없이 통통 거리듯 튀었다. 왼편으로 이어진 강변을 따라 비를 맞고 자라난 개망초 무리들이 잡초들 틈으로 삐죽히 올라와 있고 오른편으론 제법 잘 가꾼 밭들에선 고추모종이 그새 하얀꽃을 피우고 있었다. 머잖아 푸르고 싱싱한 고추들이 주렁주렁 열릴것 같았다. 고추밭 가를 두른 푸른콩포기들도 잘 자라고 있었다. 학교 실과 시간에 씨앗을 심어 둔 텃밭과 비교가 되는지 딸아이는 건강하게 자란 콩밭을 보며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여기 콩들은 왜 이렇게 잘 자라지?, 내가 심은 건 벌레가 먹어서 걱정인데...'

'네것도 잘 보살펴 주면 잘 자랄거야. '라고 말해 주자 엄마한테 꼭 한번 보여 주고 싶으니 학교로 놀러 오란다. 텃밭을 만들어 씨앗을 심게 하고 그것을 가꾸는 마음을 알게 해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를 보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비를 맞으면서도 푸르게 자라는 콩밭을 보면서 걷는 동안.

밭고랑이 끝나자 왼편은 여전히 강물이 출렁이고 강갈대가 사각대는데 이번엔 수련이 가득한 연못이 나타났다. 그리 크지 않은 연못에 무성하게 잎을 틔운 연잎들이 가득했다. 가볼수 없는 연못 끄트머리께에 분홍색  고운 연꽃이 세송이 피어 있었다. 줌을 이용해 사진을 찍기에도 불가능할것 같이 멀리서 혼자 피어있는 연꽃을 한참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로 부터 떨여져 있고 홀로 피어난 연꽃의 연한분홍빛에 마음이 설렜다. 

강가 저편 산허리엔 허연 안개구름이 둘둘 말려 있다. 일부는 바람이 부는 대로 다른 산능선을 찾아 가고 일부는 이제 그만 하늘로 오르고 있는 신비경을 연출한다.

이젠 연꽃핀 방죽도 끝나고 한뼘 크기로 자란 모가 심어진 논이 이어진다. 그곳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느티나무와 그 주변 풍경이 손에 잡힐듯 펼쳐 졌다. 멀리서 바라보는 두물머리 느티나무는 아닌게 아니라 드라마 배경이 제격이다 싶을 만큼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그리고 강가에 피어나는 푸른안개처럼,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적당한 비애감도 전해 준다.

드디어 당도한 느티나무를 앞에 두고 아이들이 옆길로 샌다. 논에 풀어 놓은 오리들을 보겠다고  논가에 심어둔 연꽃잎에 이슬이 예쁘다고 논둑길로 따라 간다. 연잎에 빗물이 보석처럼 출렁거린다. 다이아몬드라도 저 부드러운 출렁거림은 흉내내지 못할 듯 싶었다. 한쪽을 흔들면 다른쪽으로 모두어 다시 반짝이는 보석을 만들고는 하는 연잎의 이슬을 가지고 딸이이는 한참을 놀았다. 그 끝에 한송이 흰연꽃이 피어나 있다. 빗물이 튀어 부끄러운지 꽃송이를 모두 고 있는 연꽃한송이는 얼마나 신비롭고도 아름답던지...

시끄럽게 꽉꽉 거리며 사람들을 쫒아다니는 오리무들은 단연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주인공들이었다. 수도권 상수도를 대는 이곳은 상수도보호지구이다. 그러니 농약도 안되고 비료도 덜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이 부근엔 그렇게 오리를 풀어 놓는 오리농법이 일반화 되어 있다. 오리가 풀도 뜯어 먹고 해충도 잡아 오리똥은 비료를 대신하니 오리가 농사를 짓는 셈이다. 또 이렇게 아이들한테는 인기 만점이니 일석이조, 아니 일석사조가 따로 없다.

드디어 느티나무다. 수령 400년이 넘었다는 둥치가 우람한 느티나무는 생각했던 것 보다 거대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은 쪼르르 느티나무께로 다가가 나무와 더불어 놀았다.

장마라 팔당댐을  열어 두었는지 물이 많이 빠져 강변이 드러나 있었다. 어떤 나이든 아주머니가 뭔가를 줍고 있었다. '다슬기가 있나 보는데 물이 맑지 않아서 잘 안보이네.' 두어개 다슬기를 주운 아주머니의 얼굴에 아련한 추억의 빛이 머물다 가는걸 본다. 다슬기 몇개는 아주머니에게 있어서 아득히 먼 유년의 기억 한조각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되어줄 것이다. 그 옆에서 나도 돌틈을 뒤져 본다.  손톱만한 조개와 다슬기가 몇개 보인다.

수질오염이 여기도 피해가지 못하는 모양이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강가에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수양버드나무와 강너머 산새가 빚어내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이젠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허준이라는 드라마에서 썼다는 나룻배가 주변을 고풍스럽게 한다. 그 뒤로 울을 쳐둔 묵정밭에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울타리를 따라 늦게 핀 덩쿨장미가 꽃분홍 빛깔로 화사하다.

나룻배 위로 올라가본 아이들이 노젓는 흉내를 낸다. 찰칵, 나룻배와 아이들, 울타리에 핀 꽃분홍 장미와 개망초밭이 들어 온다. 비에 젖은 풍경 속에 꽃들은 더욱 화사한 색감을 드러낸다. 드물머리 느티나무도 함초롬히 비에 젖었다. 때문인지 오늘은 느티나무가 비가를 읊조리는 느낌이다. 날이 좋은 날 다시 찾으면 연가를 불러 줄 느티나무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