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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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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비원에서-


BY 빨강머리앤 2005-03-01

그이와의 첫키스는 사실 밋밋했다.

첫키스의 강렬한 기억이 그래서 내게는 없다.

다만, 그것이 그이와의 첫키스 였기에 그때 그장소가 또렷이 기억날 뿐이다.

우린 급속도로 가까워 졌었다. 만난지 한달이 안되었을때 손을 잡았다.

주변의 사람들이 우리를 다정한 오누이 같다고 하였기에 그이는 자신을

그냥 편하게 오빠로 생각하라 그랬던 말이 계기가 되어 그이는

그때부터 '나의 사랑하는 오빠'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호칭은 여전하다.

만난지 한달째 되던날도 여느때처럼 종로의 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한남동으로 이동을 했다. 늘상 그랬던 것처럼 한남동에 있는 생맥주 집에서

맥주를 한잔씩 마셨다.

시끌 벅적한 분위기의 생맥주 집이었는데 젊은이들로 가득찬 그집엔

그때까지도 디제이가 있어서 신청곡을 들려 주곤 했었다.

아마 사랑이 시작되려는 시기였을 것이다.

그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나를 위해 신청했고 나 역시

그와 특별히 듣고 싶었던 내가 좋아하는 곡을 함께 들으며 우리는 얼마나 행복해 했던가..

그래서 한남대교를 건널때 즈음 우리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을 것이었다.

수줍게 손을 잡고 다른 연인들처럼 거리를 걷다가 한남대교를 만났는데 

그이가 다리위를 걸어서 건너 보자 그랬다.

여름밤에 부는 바람은 참으로 부드러워 한강다리를 걸을만 했다.

다리 중간 정도를 걷다 한강을 바라보기 위해 잠깐 멈춰섰었다.

다리 위에 일렬로 늘어선 가로등이 물위에 비춰 물결위에 일렁이고

있는 강물을 바라 보기 위해서였다.

하늘엔 반쯤 기운 달이 걸려 있었는데 달빛이 그윽하고 곱게 내리는 밤이었다.

지상에는 수없이 많은 빛을 뿌리는 가로등이,하늘에선  희미하게 비추는

달빛이 강물위에 어룽거리고 있었다.

한강 다리 아래, 강물이 흐르고 강물에 달빛이 비춰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을 떠올렸는데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와의 키스, 그 밋밋한 첫키스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이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을때 내가 눈을 감았던가, 말았던가..

떨리는 순간의 애절함으로 결코 잊지 못할 첫키스의 추억을 만들거라는

내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덤덤한 첫키스였다.

그러다 정말 잊지 못할 키스의 추억을 갖게 되었던건 그로부터

한달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토요일오후, 그날의 데이트 장소는 비원이었다. 

주말이라 고궁을 구경나온 사람들은 입구쪽에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안내원의 해설이 있어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였다.

마침내 입장을 하고 보니 해설사를 따라붙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 다녀서 차분히 산책을 할 생각을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그때 우리에겐 우리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이와 나는 중간에서 몰래 대열을 빠져나왔다.

되도록이면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한적한 길을 찾아 숲으로 접어들었다.

매미가 쉴새없이 울어대는 비원의 숲은 녹음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짙은 초록의 나뭇잎이 빽빽히 들어찬 숲에서 비릿한 풀냄새가 풍겨나왔다.

대열에서 이탈한 우리는 좁다랗게 이어진 오솔길을 뛰어 올랐다.

어느정도 사람들로 부터 떨어졌다라고 생각한 지점에 낮은 둔덕이 있었다.

더이상 뛸수 없을 만큼 숨이 턱까지 차올라 둔덕 아래에 잠시 멈춰 섰었다.

늦여름, 숲속으로 난 울퉁불퉁한 오솔길을 뛰다보니 더워서 땀이 흘렀다.

그 숲속에서,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힌채로..

그의 꿍꿍잇속이든 어쨌든 잊을수 없는 키스는 아무도 없는 비원의 숲에서 이루어졌다.

늘상 꿈꿔왔던 '떨리는 순간의 애절함으로 결코잊지 못할 추억'의 입맞춤...

숲길을 달려오느라 숨이 막혔던 그 느낌과는 다른 간절한 숨막힘의 순간이었다.

돌아보면 나의 연애시절은 그리 거창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비원에서의 입맞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아직도 가슴이 뛰는 것만 같다.

그전에도 그이후에도 그런 입맞춤은 없었다.

마치 영화의 한장면과도 같았던 아름다운 순간이 내게 있었기에

지금도 그 추억만으로 그날을 아름답게 회상할수가 있는 것 같다.

짙은 녹음으로 푸르게 펼쳐진 비원의 숲으로 햇살이 가늘게 쏟아지고 있었던,

나뭇잎이 만들어 내는 그늘 사이 사이로 떨어지던 햇살이 만들어 내던 무늬들이 생각난다.

늦은 여름숲에서 매미는 줄창 울어댔고 우리는 그사이에 서있었다.

잊지못할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속에서 한동안 시간이 멈춰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