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일인가로 한참을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지금은 잠시 소강상태다.
위층에서 일어난 일이니 내가 상관할바가 전혀 아니고 더군다나 부부싸움이고 보면 내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 하는것은 그들의 다툼이 아랫층에 있는 내 귀에 들려오는 때문이다. 나는 사실 위층부부의 부부싸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들이 벌건 대낮부터 얼굴을 붉혔는지 어쨌는지 보지 않아서 알수가 없고 분명 알 필요도 없는 일일 것이다. 또한 그들의 다툼이 하루 이틀동안의 일이 아니고 2월 들어서 벌써 여러번 내게도 감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대체 왜 그리 큰소리로 싸우는지 알수 없는 우리 아이들 에게도 들켰을 정도로 상습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나 보았지만.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오는 그들 부부의 다툼의 소리는 처음엔 그래도 들릴막 말락한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조용해 지나 싶었는데 어느샌가 한톤이 높아진 상태로 큰소리가 오가는 거였다. 무슨 말인지는 구별이 잘 안갔으나 아침 댓바람부터 서로 다투는 양하며 남자 목소리보다 여자목소리다 한옥타브 쯤 더 큰걸로 봐서는 남자한테 잘못이 있는 듯 싶었다.
섣부르게 판단하건데 이 엄동설한에 경기침체의 국면에서 남자가 퇴출된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다들 설연휴도 끝나고 각자 일터로 갔을 시각에 아내의 잔소리에 대꾸하고 있을 턱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이다. 그들의 다툼이 지속적으로 있어온것도 아닌것이, 그것도 2월 들어 가끔 들려오는 부부싸움 하는 소리로 봐서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고 혼자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한편으론 가정을 이루었고 아이도 있는 위층 사는 남자가 부디 일이 없어 한낮부터 부인과 말다툼하는 가슴아픈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각설하고, 이것은 전혀 쓸모없는 일이고 쓸데없는 생각이다. 왜 내가 남의 부부싸움에 감놔라, 배놔라 하겠는가 말이다. 내 할일도 다 못해 내고 항상 바빠서 허둥지둥 대며 설쳐대는 내가 위층부부싸움에 한마디 보태는 것은 이해할수 없을 만큼 빈약한 이 아파트의 '방음장치' 때문이다. 아무리 위층에서 큰소리로 싸웠기로 그들의 싸우는 소리가 바로 옆방에서 싸우는 것처럼 들리느냐는 것이다.
여기 아파트로 말할것 같으면 낼모레 재개발에 들어가야 할 그런 아파트도 아니요, 지은지 십년도 안된 겉으로 봐서 정말 멀쩡한 아파트다. 한때 '날림'이라는 말이 유행을 탄 적이 있었다. 인구많고 땅덩이 좁은 나라(과연 그럴까?)에 내 집 못가진 사람들은 또 넘쳐나니 얼른 집은 지어야 겠고 하니 대충 집은 짓다보니 그것이 날림이라... 겉으로 멀쩡한 집들이 일년 못가서 여기저기 고장나서 하자보수 받으려면 그런 회사 이미 없어졌다 하는일 흔하던 시절이 엊그제 까지 였던걸 우리는 기억한다.
그중 한가지가 바로 방음장치에 대한 무감각한 건설회사족의 무대응이 아니었던가 생각해 보는것은 피디수첩 같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손가락으로 헤일정도로 방음과 관련한 민원사항이 방송된것을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살았던 예전의 집들 역시도 방음에 관한한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을 만큼의 '얄팍한 방음효과(?)'를 흉내낸 정도의 집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아파트 라는 주거공간의 특성상 완벽한 방음이란것도 사실 불가능할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전제를 하고 들여다 봐도 이집은 좀 너무 하다는 생각이 오늘 들었던 것은 단지 위층부부의 싸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금 전 부부싸움을 하기 전의 일이다. 확인해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으나 그집 안주인 되시는 분께서 운동삼아 런닝머신을 뛰었던듯 싶다.
런닝머신에 관한한 벌써 오래 전의 일인데 이집을 이사오고 얼마후에 위층에서 쿵쿵 소리가 들려오는데 그소리가 조금 과장을 하자면 공룡이 걸음마 연습하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온집안이 흔들리는 느낌 곧이어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내게로 그 소음이 엄습해서 귀가 울리고 급기야는 머리까지 아파와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집안 정리 대충 끝내고 음악 틀어놓고 커피 끓여서 고요한 가운데 신문을 읽으며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차였다. 이 소리가 대체 무슨 소리인가, 밖으로 나가 위층으로 올라가 보니 밖에서 들었을땐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집으로 들어오는 역시 또 같은 현상인지라 조금만 기다려 보자 하는데 그것이 결코 쉽지가 않았다. 웬만하면 이웃간의 사소한 일로 경비실에 연락하는 법이 없었지만 그 소리는 전혀 참을만 하지가 않아서 인터폰을 연결했다. 경비아저씨는 위층여자에게 연결을 시켜주었고 그녀는 런닝머신을 뛰고 있었다며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아, 그게 런싱머신 돌아가는 소리였구나 ... 알겠노라하고 그렇게 지나간 일이 있었다. 그 뒤로 런닝머신 돌아가는 소리가 나면 대충 넘어가기로 했고 그녀도 조심하는듯 보였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랬는지 런닝머신 돌아가는 소리가 예사가 아니다. 내가 너무 예민한건가 싶어 귀를 막아 보았지만 이건 견디기 힘든 소음임에 틀림없다.
런닝머신을 사용할것 같으면 베란다에 내놓고 하면 될것 같은데 거실 바로 위에서 하필이면 우리집 소파에 앉은 바로 내 머리꼭대기에서 들려오는 쿵쿵 거리는 기계음은 고문에 가까웠다. 나중에는 머리까지 아파왔지만 '참자'를 삼세번 되내이며 인내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쿵쿵 거리는 소음이 들들.. 거리는 소리로 바뀌는걸로 봐서는 이제는 워킹순서인가 싶었다. 그것은 참을만 했다.
그러다가 몇분후 터진것이 그들의 부부싸움하는 소리였던 것이니 나는 오늘 은연중 듣고자 한것도 아닌데 그들생활의 일부분을 듣고야 말았다..., 아, 아파트 살이의 고달픔이여..나 역시 허술한 방음장치로 인해 알게 모르게 남한테 피해를 입혔을 터. 지난번엔 아랫층에서 한밤중에 우리집엘 노크한적이 있었다. 그날은 설날 하루전날, 그날은 늦게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니 열시 반이 넘어 있었다. 부랴부랴 봐온 장바구니에 마늘이 있어 다음날 쓸 마늘을 찧어야지 하고 나는 바삐 장바구니를 정리하고 남편한테 마늘좀 찧어 달라고 아뭇생각이 없이 부탁을 했다.
마늘을 그날밤 찧어놓으면 다음날이 수월하리라는 생각 뿐이었는데 누군가 한밤중에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아차, 싶었다... 한밤중에 마늘을 찧었으니 분명 아랫층에서 쿵쿵 거렸을 것이었다. 죄송하다고 이제 집에 들어와서 내일 바쁠 생각만 하고 그생각은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말씀 드렸더니 아랫층 아저씨는 선뜻 '그러시냐'고 알았다고 다시 오던길 돌아 내려가셨다.
또 한번은 우리 아이들이 집안을 쿵쾅 거리고 다녀서 경비아저씨한테 '아이들 조용히좀 시키라'는 인터폰을 받은적도 있었다. 그것도 내가 없는 틈이라 나는 더욱 아랫층에 미안하여 아이들에게 알아듣도록 호되게 야단을 쳤으나 아직도 아이들은 제흥에 겨워 방을 뛰어다니는 일이 더러 있다. 그런 일이 자주 있는 일이라서 이젠 좀 살살좀 다니라는 소리가 지겨울 정도가 되어 버려 아파트 생활을 이젠 끝내야 하는가 하고 심각하게 고민한적도 있다.
내가 전원생활을 꿈꾼 것은 아주 오래 되었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혹은 경제터전을 바꿀만 하지 않아서 라는 현실적인 이유를 대서 내 꿈을 먼훗날로 미뤄 놓았지만 실은 여러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아파트가 주는 편리함에 어느샌가 익숙해 졌기 때문이란걸 나는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또한 추위에 대해 병적으로 약한 내가 추위에 그대로 노출된 일반주택에서 살아갈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 낳고 나서 부쩍 추위에 약한 나는 무엇보다 추위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다.
하나, 나는 꿈을 꾸는 중이다. 마당 한켠에 화단을 만들어 철마다 꽃들을 심고 가꾸며 살아갈 것임을.. 화단의 경계는 반드시 손바닥 만한 돌멩이로 쌓고 마당에 돋아나는 잡풀들도 맘껏 자라도록 놔 둘것이며 담장가에 풍게나무 한그루를 심어 봄이면 풍게나무에서 태어나는 나비들의 축제를 즐길 그런 꿈. 그런 꿈을 마음한켠에 들여 놓는한 아파트의 소음쯤이야 얼마든지 무시할수 있을것이다. 하여 아파트에 사는 동안 좀더 조심할 일이다. 짜증이 섞인소리 불만에 가득한 소리 남을 무시하는 소리 마음에 안든다고 야단치는 소리, 나도 듣기 싫어 얼굴이 찌뿌려지는 소리들이 남들 귀에는 또 얼마나 괴로운 소리로 날카롭게 들어가 박힐것인가.. 고운소리, 부드러운 소리, 칭찬하는 소리, 듣기좋은 소리를 만드는 연습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