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로 한동안 세계의 이목을 집중 시켰던 대한민국의 옹골찬 사나이 '최민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배우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올드보이를 통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 시킨 이후
선택한 영화가 '꽃피는 봄이 오면' 이었습니다.
올드보이의 오대수의 이미지, 그 강렬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역활이후 그가 선택한 영화치고
너무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미 강렬한 카리스마로 관객들에게 어필되 버린 셈이지요.
배우가 한가지 이미지로 고정된다는 것은 그가 가진 다양한 탤런트에 대한 마이너스 요인이
될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꽃피는 봄이 오면을 보면서 '역시 , 최민식이다'싶은 안도감 같은 거..
그러니까 그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연기뿐만 아니라 지극히 부드러운 역활도 천연덕스러울 만큼
일부 평단에서는 '최민식이라는 배우에 너무 의존한 최민식의 영화'라는 비평도 있었지만 저에게
이 영화는 참 좋은 또하나의 '괜찮은 한국영화'였습니다. 겨울이 깊어가는 이즈음 보면 참 좋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눈이 내리는 강원도 풍경에서 겨울의 참 모습을 발견하는 일도 좋았고 영화의 엔딩장면에서 보이는 벚꽃 흩날리는 장면도 참 좋았습니다.
눈내리는 강원도에선 주인공 현우의 정신적인 혼돈의 시대를, 벚꽃이 흩날리던 엔딩장면에서는 그
런 혼돈의 시대를 멋지게 끝낸 현우의 행복한 결말을 대신해 주는듯 싶었지요.
현우는 트럼펫을 전공한 음악도입니다. 그는 나름대로 음악을 통한 예술의 숭고함을 믿는 부류에 속했지요.
아무리 세상이 속물로 넘쳐나고 돈이 지배하는 곳일망정 음악은 예술이라는 고귀한 장르이며
그런 음악의 속성은 변치 않을 거라는....
하지만 트럼펫을 전공한 그에게 떨어진 현실은 너무 고달프고 배가 고픕니다. 순수예술로서 음악을 해보겠다는
그에게 세상은 비열해지라고 가르치는듯 해보였습니다.
그런 처지를 비관하는 현우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 그리고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여자를 붙잡을 수 없습니다.
현우를 사랑하던 여자 연이는 기다림에 지치고 그만 다른사람과 결혼할거라며 돌아섭니다.
마지막이다 싶은 오디션에서 다시 떨어지고 비상탈출을 한곳이
강원도 산간지방의 한 학교 입니다.
오늘날 농촌의 학교가 폐교위기에 놓인 것처럼 현우가 들어간 도계고등학교도 학생수는 점점 줄어가고 있습니다.
한때는 잘나가는 관악부가 그 학교의 상징이기도 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는 '왕년의 일'이었습니다.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도계고등학교 관악부,, 학교지원도 인색하고 아이들은 그저 악기를 '불'뿐인
시골학교입니다. 강원도 산골고등학교 관악부가 그가 맡은 새로운 임무였습니다.
현우는 자신의 꿈, 그러니까 순수예술로서 트럼펫을 부는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예술로서의 음악을 하는 일에 대한 자신의 꿈을 아이들에게 투영시키고자 합니다.
현우가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부분에서 피폐한 농촌의 현실이 잠깐 보여집니다.
또한 그런 과정에서 대일이라는 꿈과 희망을 믿는 순수한 소년과 우정도 싹이 틉니다.
할머니가 난전에서 떡을 팔아 생계릉 유지하는 대일이.
구차하고 힘든 현실을 헤쳐가기엔 그의 몸은 너무 작고
그의 꿈을 지탱시켜 줄것 같은 트럼펫은 또 너무 낡았습니다.
현우는 그런 대일이를 불러 함께 밥을 먹고 할머니를 돌보기도 하면서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지닌 산골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갑니다.
탄부였던, 병으로 입원해 있는 아버지를 돌보며 시골약국을 운영해 가는
수연과의 사랑도 싹이 트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연은 병든아버지를 돌보며 평생 떠나본적 없는 고향마을에서 초라한 약국을 경영하며
그렇게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자동차정비공인 남자친구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결국 고향을 떠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일수도 있을텐데 영화속의 수연은
너무 담담하게 그려졌습니다. 그녀가 그곳을 떠나고 싶어하는것 같기도 하고
그곳을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이부분은 영화속에서 그리 세심하게 다뤄지는 부분이 아닙니다.
오늘날 농촌의, 혹은 영화속의 배경처럼 탄광촌의 피폐함이 너무 쓸쓸한 탓에 수연의 장래가 궁금했던
탓에 해본 순전히 사견입니다.)
현우는 관악부 아이들에게 '악기를 연주'는게 아닌 '음악을 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상을 받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지금 열심히 음악에 몰두하는 일 그것이 소중한 일이라는걸 일깨워 줍니다.
마침내, 연주회날 아이들의 현우의 지휘에 따라 멋지게 연주를 해냅니다.
그날의 연주회를 통해 간접적이나마 현우의 꿈이 이루어진것 처럼 보입니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아이들이 준
지휘봉을 들고( 무대뒤편에서 아이들이 지휘봉을 선물하는 장면이 감동적입니다)
기꺼이 아이들과 하나되어 연주를 이끌면서 현우는 비로소 행복한 웃음을 짓습니다.
'음악을 연주'하는 아이들과 어울려 지휘하는 현우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행복했지만 그 행복한 아들을 객석에서 지켜보는 어머니(윤여정)의 시선은 사뭇 감동적입니다.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한장을 찍고는 두손모두어 자식의 행복을 지켜보는 어미의 심정을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아주 짦은컷에 다 보여주던 그 장면이 참 좋았습니다.
현우는 겨울의 눈내리던 강원도를 떠납니다. 또한 그의 길었던 방황기를 떠나 보냅니다.마침내 봄이 오면서 그의 방황의 시절이 아름답게 갈무리 됩니다. 아마도 현우의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은 새롭게 '꿈'을 일궈 나갈 것입니다.
'당신'아니면 안될것 같은 연이(현우의 여자친구)는 끝내 다른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현우와 재회를 합니다. 그때가 '꽃피는 봄이 오는'날이었습니다. 연이의 집앞에 놓인 벤치에 앉아 현우는 연이에게 전화를 겁니다. '너 학원 차렸다며? 내가 괜찮은 트럼펫주자 한사람 아는데 어때, 소개해 줄까?'... 시종 웃음기를 거두고 세상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던 현우가 처음으로 활짝 웃습니다. 그의 옆에서 그의 웃음을 닮은 벚꽃이 하늘하늘 흩날립니다.
함께 영화를 본 남편이 그럽니다. '역시 최민식이다' 올드보이의 강렬한 카리스마대신 꽃피는 봄날처럼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준 영화, 꽃피는 봄이오면...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다만 벚꽃의 가벼운 흩날림때문이 아닌 희망같은 봄날의 약속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