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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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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전해주신 선물


BY 빨강머리앤 2004-10-02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드는 생각이란 '내가 참 못한 게 너무 많구나' 였습니다.

잘한것도 없지만 살아 생전에 며느리 역할도 제대로 못해낸 참 못난 며느리였단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어언 8개월여 시간이 흘렀습니다.

가끔씩 집안 여기저기서 어머님의 손길을 느낄 때마다

그때 어머님이 그러 하셨지 싶어 마음이 허전하곤 합니다.

한동안 그런 느낌으로 허전함을 느끼면서 어머님의 부재를 확인하겠지요.

어머님은 하늘나라에서나 평안 하실까? 하고 하늘을 향해 물어 봅니다.

가을이라 하늘은 푸르고 맑고 한가롭게 구름은 두둥실 떠가고 있습니다.

가을하늘이 '걱정 말라'그렇게 내 등을 다독여 주는것 같습니다.

 

어머님 산소에 다녀오기 위해 추석날 아침 일찍 서둘렀지요.

한갓진 농가의 풍경속에 고즈녁히 자리한 어머님의 묘자리에도 벌써 가을빛이 선연했습니다.

돌아가신 때가 겨울이었으니 그때는 참 설운 마음같이 삭막하기 그지없던 장소였는데 말입니다.

야트막한 산아래 고이 잠든 어머님의 산소가 보이자 마음이 서늘해져 왔습니다.

언덕 아래 길을 두고 아랫쪽에 벼들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지요.

가을의 풍요는 올해도 예외가 없이 너른 벌판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어머님도 그걸 내려다 보고 계실까.,. 풍요로운 들녘을 마주할때마다,참 좋다'를 연발하시던

 어머님 모습을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을 보며 떠올려 보았습니다.

산소를 오르기 위해 황톳길에 들어서니 양쪽에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허연 웃음을 흘리는 갈대는 어쩐지 쓸쓸했습니다.

곡식들이 여물어 가는 밭을 몇개 지나치자 어머님 묘소가 빠꼼히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당신 손자들 내다 보는 어머님 얼굴이 그려 졌습니다.

동안 저리 큰걸 보면 참 좋아 하셨겠지요?..

어머님의 산소 자리가 빠꼼히 얼굴을 내밀던 그자리에 서니 물큰 눈시울이 뜨거워 지더군요.

그새 자란 떼자리를 단정히 이발하고  가만히 가을아침속에 엎디어 있는 어머님의 산소에 닿았습니다.

가져온 음식을 제단에 차리고 어머님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었습니다.

남편은 의외로 담담한 것 같은데 저는 그만 엎드려 울고 말았지요.

그냥 어머님을 볼수 없다는 것이 서글펐습니다. 어느정도는 감상적인

기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순간 어머님의 부재가 서럽게 눈물샘을 자극하는걸 저도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속울음으로 '어머님 잘해 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해요, 부디 좋은 기억만 갖고 가세요'라고

말씀 드리고 그저 고개를 숙였어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님은 다 괜찮다

그러실거란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당신 생각이라곤 손톱만큼도 안하시고 남들만 죽어라 생각하시던 분이었으니까요..

생전에 좋은 옷 한번 입는걸 그렇게나 저어 하시던 분 또 있으실까 싶은

자신에겐 너무도 모질던 분이였으니까요..

아실까요? 지난 초여름 버스를 타고 가다 내 바로앞 자리에 앉으신 우리 어머님 또래의 할머니가

세모시 옥색 고운 한복을 입고 앉아 계셨습니다. 손에는 쥘부채를 쥐셨는데 그 자태가 참으로 고와

한번더 쳐다 보게 되었지요. 아, 우리어머님은 저리 곱게 단장한적 제대로 있으셨을까,

싶어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던 것을요...

지금에서야 죄송하고 송구한 마음으로 못난 며느리가 흘리는 눈물을 그래도 괜찮다고 닦아 주실 어머님, 

산소 주변에 감나무가 참 많았습니다. 그것이 감나무 인줄 몰랐을 정도로 앙상하던 나무 였는데

 어느 순간 잎새를 부지런히 틔워내고 꽃을  많이도 피웠던지 주홍빛 감들이 주렁 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어머님 산소 주변을 에워 싸듯 주홍빛 고운꽃처럼 달려 있던 감들이 참 풍성하게도 열려 있더군요. 

너무 많이는 말고 한나무에 서너개씩 감을 따서 담았습니다.

그것이 어머님 마음인양 따서 담았습니다.

명절때면 하나라도 더 못 싸줘서 안절부절 하시던 어머님은 감이 아니라 감할애비라도

손주손녀에게 쥐어 주고 싶으셨을 테지요.

어머님 묫자리 양옆으로 가져간 국화꽃을 심었습니다.

벌써 피어있는 꽃송이도 있고, 피어날 꽃봉오리가 더 많은 싱싱한 가을 국화꽃을

꼭꼭 어머님 양옆에 심어 드렸습니다. 생전에 꽃을 좋아하셨고, 누구보다 부지런 하셨던 어머님께

향기로운 국화꽃 다발 바쳤습니다. 국화꽃은 살아 피어있는 동안 어머님의 산소 주변을

향기로 물들거란 생각을 하니 얼마간 마음이 누그러 지더군요. 살아가는 일이 그런 것인지요. 

깊은 슬픔이 때론 작은기쁨에게 웃음을 보이기도 하는 것인지요.

 

집에와 짐을 풀어 놓으니 그중 눈에 띄는 것이 산소에서 가져온 감이었습니다.

주홍빛 나는 감을 하나씩 박스에 옮겨 담으며 어머님의 손길을 떠올렸습니다.

 떫은 감은 머잖아 달콤한 홍시로 익어갈 것입니다.

어머님이 전해주신 추석 선물을 들여다 보며 어머님의 마음을 느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