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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비밀은 있다.


BY 빨강머리앤 2004-08-09

                                                                                    

오후들어 소낙비가 쏟아졌다.벌써 며칠째 같은 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 덕분에 뜨겁게 달아오른 대지가 시원하게 식혀지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 저녁을 맞이하기 좋은 날이었다. 새삼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되는 나날이다.

밤바람을 뚫고 자동차극장으로 영화를 보러가는 중에 차 유리문을 활짝 열어두었었다. 서늘한 밤바람이 열어둔 문틈으로 와락 쏟아져 들어왔다. 상쾌했다. 영화에서 처럼 손을 한껏 뻗어 유리문 밖으로 내놓고 바람을 느껴보았다. 여기저기 풀숲에서 밤벌레 울음소리가 드높았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라는 다소 비밀스런 제목의 영화를 보러가는 길, 서늘한 밤바람이 내내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영화도 비밀스러운 사랑을 서늘한 밤바람처럼 쿨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세간의 '노출수위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생각보다 야하지도 그리고 비밀스럽지도 않았다. 그저 '영화니까 저럴수도 있겠구나'싶은, 그리고 한바탕 웃고 즐기는 그런 영화였다. 영화적 상상력이 빚어낸 세자매의 사랑에 대한 헤프닝 이라고나 할까?

세자매가 있다. 큰언니 진영(추상미)는 결혼하여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과 딸하나와 함께 그저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간다.아니, 겉으론 평범하게 보일 뿐이다.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은 하루종인 여자의 은밀한 부분을 들여다 보는 직업인 관계로 밤에까지 아내의 그곳을(?)을 보고 싶어하지 않은 이제는 부부관계에 흥미를 잃어버린 배가 튀어나온 사십대다.

둘째,선영은(최지우) 연애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공부에만 관심을 두려 애쓰는 노처녀다. 그녀는 어디선가 불현듯 만나 첫눈에 반하는 지극히 소설같은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갖고 사는 여전히 숫처녀인 문학도이다.

막내, 미영(김효진)은 다소도발적이고 당당한 모습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재즈를 부르는 가수이다.그녀에게 사랑은 일회성, 어디 괜찮은 남자 없을까 싶어 눈알 굴리기 9단쯤 되는 여자이다.

이렇듯 각기 다른 세자매 한테 한남자가 나타난다. 수현이라는 인물은 포장되고 부풀려진 남자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 적임자 처럼 보인다. 사랑에 대한 혹은 겉치레에 대한 허영심을 굳이 숨기지 않은 미영에게 수현은 완벽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또한 새침떼기이며 사랑에 관한한 어리숙하기 이를데 없는 선영에게 따뜻한 배려와 적당한 순발력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이미 결혼하여 내 행복보다는 타인의( 아이와 남편 그리고 집안)행복에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진영에게는 진정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한 삶이 어떤것인지를 깨닫게 하기도 한다.

수현은 그렇듯 세자매의 감춰진 본성같은 것을 면밀히 짚어내며 각각의 자매에게 다가가 그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든다. 어쩔수 없이 바람둥처럼 보여지는 수현이 한편으론 세자매가 가진 한계를 풀어주는 중요한 역활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현을 통해서 세자매는 저마다 나름대로 행복을 느끼고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각 혹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특별히, 김효진의 연기가 아름다웠다. 셋중 가장 어리고 연기에 있어서도 한참 후배인 김효진이 연기하는 재즈뮤지션의 역활이 인상적이었다. 재즈바에서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노래를 하는 (맆싱크 였지만) 김효진의 섹시하고도 상큼한 모습이 꼭 서늘한 바람이 부는 여름밤을 연상시켰다. 반면 최지우의 연기는 매끄럽지 못하게 보였는데 그녀는 지나치게 감정을 오버하는듯해서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껄끄러운 느낌이었다. 영화속 선영이와 최지우의 불협화음!!

이병헌은 연인과의 결별에도 불구하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치부이니 상관관계를 따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겠다)  영화를 통해 수현의 멋진 연기를 선사한다. 한마디로 여자마음을 너무도 잘읽은 핸섬보이, 재력을 갖추고 외모 또한 출중한... 그런 남자라면 한번쯤 사랑에 빠지고 싶게 만드는 매력남 역활의 이병헌은 역시 베테랑이었다는 생각이다.

내용상 외설스러울수 밖에 없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외설보다는 유머와 상큼함에 비중을 둔 재밌는 영화'누구나 비밀은 있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그 비밀은 추억의 한부분을 아름답게 만들고 그 비밀이 현재와 미래의 당신의 삶에 활력소가 된다면 비밀 하나쯤 간직하는 일도 괜찮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