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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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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아래를 거닐다


BY 빨강머리앤 2004-05-21

 

한 일주일 전 쯤이었을까요?

그날도 여느때처럼 오후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었지요.

언제나 처럼 발길을 빨리하며 걷고 있는 내 앞에

하얀모자를 단정히 쓴 할머니 한분이 한손에 흰꽃이 달린

나뭇가지를 들고 걸어 가고 있었습니다.

바빠 그냥 가려다 그 꽃이 풍기는 향기로움에 그만

말을 걸고 말았지요.

'할머니 손에 들고 가시는 그꽃이 뭐예요?'

할머니께서는 무슨 꽃이다, 라고 얘기하는 대신에

꽃가지를 들어 내 코쪽으로 쓱, 한번 훓고는 말았습니다.

얼굴에 미소를 띠고 내가 이꽃을 이렇게 들고가는 일이

얼마나 좋은 일인줄 아느냐,

내가 좋아하는 이꽃 네가 아느냐, 하는 표정으로

내게 미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행히 제가 잘 아는 꽃이었습니다.

다만, 그즈음에 그꽃을 본일이 없기에

벌써 꽃이 피었나 싶은 반가움에 다시 한번 꽃을 들여다

보며 '찔레꽃이 벌써 피었나요?' 라고 되물었습니다.

할머닌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그래, 찔레꽃이야,,

냄새좋지? 하며 예의 제 코끝에 살짝 꽃을 갖다 대는 흉내를

반복하셨습니다.

하얀꽃을 단 찔레꽃 한송이.. 어딘가에 벌써 초여름을 알리는

그꽃이 피어있던가 보았습니다.

어디 피었냐고 물었지요. 우연이었을까요?

할머닌 내가 사는 아파트 이름을 대며 그 울타리에 피어 있길래

한송이를 꺽어 왔다 그러셨습니다.

 

내가 여즉 모르고 있던 어떤곳에 피어 있을 찔레꽃이

얼른 보고 싶었지요. 할머니를 만난 그때부터요..

퇴근길에 코를 큼큼 거리며 찔레꽃 향기를 맡아 보려

했습니다. 눈길을 더듬어 저녁 어스름 속에서도 하얗게

반짝이는 찔레꽃을 찾으려 애를 써 보았습니다.

하지만 어인 일인지 내가 가는 길목엔 찔레꽃 한송이도 보이지

않았지요. 찔레꽃을 찾아보는 일을 뒤로 미루고

대신 출근길에 마주치는 아이들 학교담장에 핀 찔레꽃을

바라보며 행복해 했습니다.

 

그 길 아래를 걸어가면 솔솔, 찔레꽃 향기가 풍겨 왔습니다.

작년보다 더 길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팝콘 터지듯 하나둘, 꽃을

피우는 찔레꽃은 그렇게 향기로 다가오는 꽃이었지요.

매우 바쁜듯 걸음을 빨리 하다가도 그 아래를 걸어갈때는 발걸음을

천천히 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찔레꽃이 더 이상 보이지

않으면 허전하곤 했었습니다.

찔레꽃 핀 학교담장  가엔 찔레꽃 말고도 향기로 말을 걸어오는

장미가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붉은장미보다도 작고 하얀 찔레꽃이

더 정겹게만 느껴집니다.

 

그 길을 거닐며 추억처럼 떠오르는 한 생각.

예전 동네에 살때도 아파트 담장을 따라 찔레꽃과 덩쿨장미가 함께

향기로운 오월을 수놓고는 했었습니다.

코끝을 자극하는 장미향, 은은하게 가슴으로 스며드는 찔레꽃향이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향기로움을 전해주던 길이었습니다.

그 길에서 우연히 아는사람을  만나도 좋았고,

그 길을 따라 우체국으로 향한 길을 걸어 편지를 부치는 일도
좋았습니다.

엊그제 그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곤 하던 분한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길에 하얀 찔레꽃이 피어나고 있다고,.... 그래서

제가 생각나더라고 그런 향기로운 인사말을 건네왔습니다.

그분의 안부인사가 참 아름다운 이야기 처럼 들렸던건,

그 안부말 속에 찔레꽃 향기가 묻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이 었습니다.

오월의 볕이 너무 좋아, 버스 안에서 조을조을  잠이 들어 버렸던가

봅니다. 일어나 버스 창밖을 보니 낯선곳이었습니다.

황급히 일어나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제가 내릴 곳으로

두어정거장 더 온 길에 와 있었지요.

그 길을 내려 항상 다니던 길이 아닌 우회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길을 건너자 아파트가 보이고  아파트의 경계를 이루는 담장을 따라가다

그곳에서 우연히 보았지요. 찔레꽃핀 바로 그 길.. 길따라 훌쩍 높은 담장위에

핀 찔레꽃길이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찔레꽃은 절정이었습니다. 다닥 다닥, 팝콘 같은 하얀꽃송이를 가득

메달고 휘청거리듯 피어있는 찔레꽃길 아래를 거닐었습니다...

마침 부는 바람에 한아름

향기로움이 날리고 있었지요.

 

찔레꽃 아래를 천천히 거닐며

할머니가 들고가던 꽃가지 하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찔레꽃 향기를 맡아보며

찔레꽃 향기같은 안부를 물어주던 사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월속에 향기를 날리는 찔레꽃 아래를 거닐며

당신의 안부도 묻고 싶어지는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