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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두번째 이야기-


BY 빨강머리앤 2004-05-19

 

5월이 가기전에, 봄이 다 가기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니요, 하지 않으면 큰일날 일도 아닌 그것은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는일...

그 영화를 이 싯점에서 다시 한번 보고 가는 봄에게 작별을 고하고 싶었던 나만의 이별방식으로 홀로 만끽하고 싶었던 늦봄!!

 

다시 익숙한 정경이 주는 푸근함, 이젠 낯이 익다 못해 내 친구처럼 다정하게 느껴지는 사람들... 세번째 같은 영화를 보는 느낌이 그랬다. 그래도 좋았다. 내가 놓쳤던 장면들이 새롭게 다가오고 새로운 감동을 불러 오기도 했다. 다 보고 나서 하,,, 다시 또 볼것 같은 그런 느낌에 행복하게 전원 스위치를 내렸던 아름다운 우리영화 '봄날은 간다'.

 

은수랑 상우랑 사랑하고 헤어지고 아파하는 이야기가 담담하게 그려지고 그들의 사랑속에 아름다운 우리산하가 녹아든 잔잔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이 영화는 두개의 축으로 전개가 된다.

하나는, '소리따기'(사운드 엔지니어링)를 직업으로 하는 상우랑 방송국 피디인 은수가 소리를 따러 자연속으로 들어가 소리를 따는 이야기고, 하나는 그런 그림같은 배경속에서 둘이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이야기로..

서울의 수색엔 녹음실에 다니는 상우(유지태)가 있고, 강원도 강릉엔 방송국피디인 은수(이영애)가 있다.  직업상 만나게된 두사람의 첫 만남은 덤덤했다. 대숲에 들어 바람에 댓잎 부딪히는 소리를 따기 위해 침묵하는 두사람을 바람이 살짝 건드려 놓고 간다. 둘은 마주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함께 밥을 먹고, 이번엔 얼음장 밑으로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따러 나서는데 참 편안하다. 둘은 서로를 깊게 응시하기 시작하고  사랑은 그렇게 오고 있었다.은수가 상우를 집으로 초대한다. 깊어가는 사랑, 이 불같은 사랑에 상우는 가슴이 터질것 같다.

이혼경력이 있는 여자 은수의 사랑은 가볍다. 가슴 터질것 같은 상우에 비해.. 하지만 이세상이 모두 은수로 보이는 상우는 한밤중에 택시운전을 하는 친구를 불러 서울에서 강릉까지 새벽을 달려 은수에게로 가기도 한다.

둘의 사랑은 깊어가고 자연의 소리는 점점 그윽해 간다. 산사의 새벽, 느린바람이 불고 댕강, 댕강, 풍경이 울린다. 함박눈이 느린바람을 타고 하나둘, 낙화를 하고... 이 장면을 보고 있는 나는 사랑도 풍경도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빗소리가, 강물흐르는 소리가 그리고 그 속에 섞여있는 은수의 허밍으로 불려지던 '사랑의 슬픔'이 상우의 테이프에 들어왔다. 이젠 사랑도 봄날처럼 화사할 일만 남았구나. 하지만 봄날이 가는 것처럼 사랑도 가는 모양인지 은수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사소한 일로 싸우다 다시 보듬는 일이 잦아 질때마다 둘의 관계가 불안해 보인다. 매미가 우는 느티나무 아래서 정선아라리를 주거니 받거니 부르는 노부부는 여전히 다정한데..........

영화의 모티브인 사랑과 자연의소리는 참 편안했다. 느리게 전개되는 영화의 진행도 마음에 들었다. 다소 우울한듯한 감정 처리도 감동을 주었고, 평생 할아버지만 사랑하다 봄날속으로 떠난 할머니의 분홍치마저고리는 가슴이 시렸다. 배경음악으로 깔리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더라~'가 손풍금으로 연주되는것도 쓸쓸하면서도 좋았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하늘하늘 떨어지는 벗꽃처럼 자신의 곁에서 멀어지는 은수를 향한 상우의 작별의 말이 가슴이 아프다. 한사람만을 가슴아프게 부르는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 상우에게 은수의 사랑방식은 뜨악할수 밖에 없었다. 속초였나, 맹방해수욕장, 그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파도소리를 녹음하며 은수에게 노래도 불러 주었는데 말이다.

'이 생명 다 바쳐서 이토록 사랑했고/순정을 다 바쳐서 믿고 또 믿었건만/ 영원히 그사람은 사랑해설 안될 사람/ 말없이 가는 길에/ 미워도 다시 한번 / 아~아~안~~~녕/

상우를 연기하는 유지태는 더없이 멋있었다. 진짜로 사랑에 빠진 남자를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생머리에 가벼운 화장으로 시종 우울무드를 연기한 이영애의 연기도 얄미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둘의 연기에 잘 맞는 배경이 되어주던 강릉과 속초의 항구, 그리고 대숲과 산사등 영화의 배경 또한 아름다운 영화였다.

사랑은 가고 상우는 혼자남아 노래를 부른다. 처마끝에도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열어둔 미닫이문 틈으로 장독대에 빗물이 떨어지던 봄날.. 사랑도 가고 봄날도 가는데 상우는 혼자남아 사랑을 추억하고 홀로 운다. 할머니가 생전에 그러셨다. 우는 상우에게 사탕을 넣어주며 '버스와 여자는 떠나면 잡는게 아니라고' 상우의 눈물은 이제 이별을 인정하는 눈물이다. 벗꽃이 다시 흩날리던날 우연인듯 다시 찾아온 은수에게 담담하게 작별을 고할만큼, 상우의 마음은 단단해져 있었다.

강진의 바닷가 어디쯤, 황금빛 보리가 익어가는 들녁에서 '바람이 보리이삭을 훒고 가는 소리'를 따고 있는 상우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면서 영화는 막이 내렸다. 멀리 파랗게 펼쳐진 바다가 보였고, 바다와  보리밭 사이에 한그루 나무가 경계처럼 서 있었고, 황금빛으로 일렁이던 보리밭 속에 팔벌린 상우가 있었다. 사랑은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할것이었다. 봄은 또 오고 꽃이 피고 또지고 피는 것처럼.. 그것을 아는 상우의 입가에 미소가 설핏 지나갔다.

 

영화가 끝났는데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영화가 있어 얼마나 좋은가 싶었고, 젊은 감독인 허진호 감독의 다음작품이 기대가 되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도 좋았고 봄날은 간다는 더 좋았으니 이번엔 또 얼마나 더 아름다운 작품으로 다시 올지..

 

봄날이 가고 있다. 영화도 보았고 나도 이제 봄날을 아름답게 보낼수 있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