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막바지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봄비라고 표현하기엔 다소 거친 바람을 동반한 비였습니다.
신문에서 보니 대관령에 때아닌 춘설이 내렸고, 폭우가 쏟아진
곳도 있었다니 '춘삼월 호시절'에 어인 난리인가 싶은 이틀이었습니다.
봄꽃들이 깜짝 놀랐겠습니다.
여린대로 굿굿한 대로 봄비에 젖고 춘설에 파묻혔을 봄꽃들이
다시 일어나 고운꽃도 피우고 싱싱한 잎새도 튀울수 있길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비가 내린 엊그제 갑작스럽게 비상이 걸렸습니다.
오랫만에 신발장한켠 우산창고를 들여다 보니 우산이 부족합니다.
우산을 들고 나갈 때마다 우산을 다시 꼭 들고 들어올 것을 당부하지만
아이들은 가끔씩 우산을 놓고 오는 까닭입니다.
우산을 쓰고 갔다 오후들어 비가 그칠때면 아이들이 종종 우산을 놓고 오곤 합니다.
그렇게 잊고 온 우산들은 다시 찾아오는 경우보다는 그냥 그렇게 잊고
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아이들은 살이부러져 버릴까 하고 팽개쳐둔 우산을 쓰고 학교에
갔었습니다. 그 우산이나마 있어 다행이라 해야 할까요?
참 요즘엔 우산이 왜그리도 고장이 자주 나는지요?
특히. 캐릭터가 그려진 아이들 우산은 몇번을 못쓰고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산살에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쓰이지 않은 우산이 없을 정도로
우산조차 중국제에 저당잡힌 현실에서 우리는 튼튼한 '우리 우산'도 가질수
없는게 오늘날 우리 모습입니다.
쉽게 살수 있다는 편리함으로 아이들 우산을 사다보면 어김없이 '메이드인 차이나'입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어제도 '메이드인 차이나'라고 새겨진 우산을 또 샀습니다.
모양은 그럴듯 한데 우산살이 영 맘에 들지 않습니다.
새로운 우산이 얼마 안가서 부러지고 못 쓰게 되는 일을 경험하며
행여 아이들의 소비심리가 그렇게 무뎌질까 염려 되는 맘도 생깁니다.
불투명한 하얀색에 엷은파란색 그림이 그려진 아이 우산은 '메이드인 차이나'임에도
불구하고 참 이쁜 우산입니다.
어젠 두여학생이 나란히 무지개우산을 쓰고 가는걸 보았습니다.
일곱빛깔 무지개색이 채색된 무지개우산이 어찌나 이쁘던지
학생에게 우산구경좀 하자 졸랐습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비와 낭만'에 대해
뭘 좀 아는 이가 그 우산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무지개빛우산을 만든이나, 그것을 산 학생들이나 어쩐지 무지개색을 닮아서
마음이 다채로운 빛으로 일렁이는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지개우산을 들고 가는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우리아이들에게도 그 우산을 사고 싶어 주제넘게도 어디서 샀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무지개우산을 들여다 보다 눈살이 찌뿌려 집니다.
'메이드인 차이나'라는 문구가 새겨진 까닭입니다.
그 우산만은 쉽게 부셔지거나 고장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면서 우산을 돌려 주었습니다.
쉽게 고장나 버리기엔 너무나 이쁜 우산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나면 무지개가 뜹니다. 나 어릴적엔 무지개를 자주
볼수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무지개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쉽게 볼수 없는 하늘의 무지개를 대신해 무지개 우산이라도 마련해야 하는것은
아닐까요?
오후들어 비가 그친듯 해 보였습니다. 엷은 회색빛 구름사이로 햇살이
조금씩 비쳐 들고 있었으니까요. 우산없이 출근을 하려는데 딸아이가
우산을 챙겨줍니다. 우산을 들고 갔다오마고 인사를 하려는데
딸아이의 한마디가 갑자기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오늘은 비 냄새가 나'
비가 내리니 비냄새도 나겠습니다만, 그런 표현을 할줄아는
딸아이가 참 이뻐 보였습니다. 참 좋은 표현이다고 말해주고 돌아서 오면서
나도 큼큼 비냄새를 맡아 봅니다.
비릿하기도 하고 새로 돋는 나뭇잎을 닮은 상큼한 냄새도 나는것 같습니다.
비는 한동안 내렸습니다. 비릿하면서 상큼한 봄비였습니다.학교 담장에
찔레꽃 넝쿨이 초록색 잎새를 많이도 피워올렸습니다. 머잖아 하얀찔레꽃도
볼수 있겠지요. 담벽을 따라 파랗게 돋아난 작은풀들은 더욱 무성하게 돋아나
있습니다. 어제 내린비는 그 모든 생명들에게 내리는 생명수 였던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