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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2]


BY 빨강머리앤 2004-04-26

비가 올거라는 예보를 증명하듯 구름이 낮게 드리운 하늘에서 차분함이 느껴지는 월요일이다. 어제 캐온 쑥을 씻어 채에 받치고 싱크대 위에 올려 두었다. 오늘같은 날은 대기의 이동이 낮은 까닭인지 쑥냄새가 잔잔히 퍼져온다. 방안을 채운 은은한 쑥향이 참 좋다.

원래는 쑥을 뜯을 생각이 아니었다. 아이들과 '우리동네 봄'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는데 그 길에 이제는 제법 키가 자란 쑥들이 지천이었다. 은근한 쑥향기가 나를 이끄는데 그냥 지나갈수 없어 쪼그려 앉아 도구도 없이 손으로 쑥을 뜯었던 것이다.

으례껏 쉬는 날이면 아이들이 먼저 성화를 부린다. '산에 갔다 오자~'고 . 아주 좋은 징조다. 아이들이 먼저 산을 찾는 현상이 나를 한껏 고무시킨다. 자고로 아이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정서가 안정이 되고 참된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라고 생각하는 평소의 지론이 이제야 조금씩 먹혀 들어가는 것 같다. 쉬고싶다는, 나를 들러 붙는 게으름을 떨치고 부랴 부랴 길을 나선다. 물 한통을 들고...

이 동네는 산이 좋아 덩달아 물도 좋은데 마구잡이 개발로 인해 핏줄처럼 곳곳을 흐르는 하천에 더러운 물만 흐른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 저리 큰 하천에 맑은 물이 흐르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지, 검은색 이끼낀 하천을 보면 항상 안타까움이 앞서곤 한다.

하천 주변에 봄꽃들이 지천이다. 노란민들레, 하얀민들레, 꽃다지도 한웅큼 피어나 있다. 역시 노란색의 애기똥풀꽃이 그새 많이 피어나 있구나. 애기똥풀의 줄기를 꺽어보면 노란즙이 나오는데 그것이 아기똥같다고 해서 붙여진 귀여운 우리봄꽃이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꽃마리도 작디작은 꽃송이를 달고 여기저기 피어나 있다.'꽃마리'는 정작 꽃보다는 이름이 더 이쁘다. 하천가에 핀 꽃들을 하나씩 들여다 보며 아이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이꽃 이름이 뭐예요? .. 딸아이는 습관처럼 꽃가지 하나씩을 꺾는다. 꽃다발을 만들거란다.

산동네 바로 아래 집 화단은 꽃단지가 따로 없다. 키큰나일락 아래, 이제는 꽃대가 저버린 수선화 잎새가 곧다. 붉단풍 나무 잎새가 빨간꽃을 피우듯 피어나는 화단에 반가운 꽃, 금낭화가 피었다. 날씨는 화창하고 하늘이 파래서 그아래 피어난 온갖 식물들의 색깔들은 가장 선명하게 빛나는 날이었다.

 

 

 

논과 산이 마주보이는 길을 따라 산으로 가는 길이다. 논둑에서 조금,산아랫길에서 조금 쑥을 뜯으며 갔다. 쑥을 뜯는 엄마 옆에서 딸아이는 꽃다발을 만드느라 바쁜데 아들녀석이 빨리 가자며 길을 재촉한다. 제법 자란 쑥은 금방 한손 가득 차온다. 한손에 가득히 들린 쑥향기를 맡아보며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에 무한한 감사를 보냈다. 이좋은것, 이 향기로운것들이 봄이면 봄마다 잊지 않고 찾아와 주어 얼마나 감사한지. 다시 쑥영양밥도 좋고 쑥버무리도 좋고.. 쑥을 먹으며 쑥향기에 흠뻑 젖어도 좋을것 같다. 이번엔 쑥차에도 한번 도전해 봐야지. 엊그제 지인의 집에 갔다가 향기로운 쑥차를 대접받았다. 쑥차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맛을 보는건 처음이었는데 향도 향이거니와 쑥이 우러난 찻물의 색감이 일품이었다. 엷은초록색으로 우러난 쑥차는 자연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한 싱그러움을 주었고, 맛 또한 자연그대로의 맛으로 내 몸 가득 자연의 향기가 골고루 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쑥차를 만들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쑥차의 향기로움'을 나도 선물해 주어야지 싶어 욕심껏 쑥을 뜯었다.  그렇게 천천히 발길을 옮겨 오늘 우리의 최종목적지인 '흥선대원군 묘'라고 쓰인 팻말앞에 섰다. 그 길로 이십여분만 올라가면 흥선대원군묘인데, 늘상 다니던 그 길이 아닌 다른길이 가고 싶었다. 왼쪽으로 산길하나 나 있어 그길로 들어섰다. 산길 여기저기 제비꽃이 한창이다.  처음 와본 낯선길, 사람이 별로 다닌흔적이 없고, 군데 군데 길이 끊겨 있기 까지 했지만 햇살이 곱게 쏟아져 내리는 숲길은 한없이 싱그러웠다. 낙엽송이 깔린 산길에 호젓이 피어난 '각시붓꽃'을 그곳에서 만났다. 두터운 낙엽층을 뚫고 올라온 놀라운 생명력은 연한 보랏빛 꽃으로 피어 숙연한 아름다움을 주었다.  직진코스로 갔다면 만나지 못할 산에서 피는 뭇 생명들을 만나고 연두색  새잎이 돋는 나무들 사이를 거닐었다.

산철쭉도 피어나 있었다. 이제막 꽃잎을 피우기 시작한 산철쭉은 밝고 연한 분홍색이다. 이보다 더 연한색이 있을까 싶은... 꽃빛이 하도 밝고 연해서 마음이 다 아릿해 온다. 산철쭉을 만나고 커브길에 들어서니 제법 산길이 잘 닦여져 있다. 그 길을 쭉 따라 가니 그곳에 '흥선대원군 묘'가 마침하니 자리잡고 있다. 산새들이 저희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인적이 드문곳이다.

이쪽지방에 조선시대 왕들의 무덤이 많다. 대개의 왕가의 무덤은 크고 화려한데 반해 흥선대원군  묘는 상대적으로 초라한 행색을 면치 못하고 그나마 홀로 멀리 떨어져 있다. 얼마전까지는 묘지를 알리는 입간판 하나도 제대로 달리지 못했는데 누군가 손을 쓴건지 일킬로 간격으로 작은 표지판이 들어서 그마나 길 찾기가 쉬워진 정도다. 흥선대원군을 흠모하는 것도 아니요, 그 어르신이 펼친 '쇄국정책' 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이 쓸쓸함 속에 홀로 들어와 있는 묘를 보는 심정은 착찹하다.

나름대로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을 했으나 무리한 경복궁복원 계획은 백성의 원성을 샀고, 의견이 맞지 않았다고는 하나 국모인 명성황후와의 껄끄러운 관계, 그리고 나라문을 닫고 쇄국정책을 편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오늘날 이곳 지극히 한적한 시골,야트막한 산아래 묻혀 아무 말이 없다.

딸아이는 오는 길에 하나둘씩 꺽어 만든 꽃다발을 제단에 올렸다. 무덤을 지키는 무인석과 동물상이 이곳이 왕가의 무덤이었음을 말해주는곳,  그곳의 주변에도 봄풀들이 올라오고 더러 꽃을 피웠다. 소나무 무성한 묘지아래, 키작은 각시붓꽃들이 바람에 한들거린다. 소나무군락지를 빠져 나오니 한낮의 태양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쑥이 있어 향기로운 일요일,꽃과 바람과 햇살이 풍요로운 봄날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