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 나는 '아날로그' 인간이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한 템포 쯤이 늦은... 나의 한 템포 느림은 천성이다. 자타가 인정하는 기계치인 나는 내가 생각해도 현대인이라 하기엔 그 소양이 부족해도 한참이나 부족하다.
나는 대한민국 7,80%에 육박하는 보유율을 자랑하고 그 보유대수로 따지면 세계 2위던가, 3위던가, 어쨌든... 그렇게나 높은 보유대수를 자랑하는 심지어는 초등학생도 있는 핸폰이 내겐 없다. 내가 핸드폰을 소유하지 않은 까닭은 대단할것 없이 그냥 갖고 있을 필요가 없어서 인데 핸드폰이 없는 나를 향해 핸드폰( 손전화기)을 가진 이들의 시선이란, 어머머... 웬 원시인? 하는 정도인걸 나도 모르는바 아니다.
가질려면 못가질 이유야 없을 것이다. 내가 손전화기가 없는 유일한 친구인걸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한 친구는 선물로 손전화기를 사놓고 내가 부를 날만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아이들 비상 연락망에, 모임친구들 전화적는 란에 유일하게 내 개인번호만 빠져있는걸 보며 아이들이 한마디씩 했었다. 엄마도 핸드폰 하나 있으면 좋겠다, 라고.
하지만 사실은 손전화가 꼭 필요한가 싶다. 아직은 절실하게 필요할만큼 내가 중요한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손전화로 분초를 다투며 일을 해야 하는 바쁜 사람도 아니기에 말이다. 꼭 필요한 사람은 손전화를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꼭 필요하지 않으나 손전화가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도 손전화를 쓴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다.
우리 아이도 친구들이 가진 손전화를 부러워 하며 저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가능하면 지금 가지고 싶은걸 중학교 때로 미루면서도 손전화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엄마도 필요가 없어 가지지 않는 그것을 무엇때문에 벌써 부터 가지려고 하느냐고 '지금은 안된다'는 분명한 의사를 전달했으나 아이는 여전히 불만이다.
한때는 무분별하게 길거리계약을 하고 단말기를 정부에서 보조해 주는 호조건에 혹해서 너나 없이 어린 청소년들이 핸드폰을 마련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 결과로 예상했던 부작용이 하나둘 드러났다. 수입이 없는 청소년들이 무분별하게 핸드폰을 사용한 탓에 사용요금으로 인해 가계부가 적자가 되는 어이 없는 일이 뉴스화 되었고 , 핸드폰이 만들어 내는 전자파에 대한 경고도 여러번 뉴스를 통해 보도가 되었다. 또한 수업시간인데도 수업중에 울리는 벨소리에 선생님과 학생간의 실갱이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아이들은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하고문자 메세지를 주고 받는일이 거의 중독에 가까운 현상이 되어 버렸다. 핸드폰게임은 또 어떤가. 핸드폰이 아이들의 '전천후 장난감'이 되어 버린듯 하다.
무릇, 지나치게 편리한것이란 작고 느리게 울리는 감정을 무시하게 되는 법이다. 빨리 연락하고 빠른 소통이 주는 편리함 이면에 느림의 가치는 소멸되고 인간의 진정성에 기대는 법을 잊고 사는것은 아닌지 이쯤에서 한번 돌아 볼 일이다.
새로운 문화가 가져다준 문명의 이기를 지금에 와서 모두 갖다 버릴수는 없는 일일터.문명의 이기가 주는 편리함을 이용하되 인간의 고유한 가치까지 그 편리함에 맡기는 어리석음은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것은 핸드폰을 만들어낸 우리 어른들이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심어주어야할 책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지하철을 타게 되면 핸드폰을 소유하지 않은 나로서는 다소 소란스럽다고 느낄만큼 다양한 핸드폰 벨소리를 듣게 된다. 버스를 타서도 마찬가지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그 소리도 다양한 핸드폰 벨소리가 여기저기서 불쑥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어떤이들은 같이 타고 가는 승객들을 완전히 무시한채 큰소리로 통화를 하는 무례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길거리에서도 예외는 없다. 이젠 불편하게 손으로 잡고 통화를 하는 대신해 이어폰으로 연결된 수화기를 통해 자유롭게 통화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러 분명히 혼자인데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어 쳐다보면 이어폰으로 통화중인 경우였는데 제삼자인 입장에서 그런 사람을 보면 조금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연장에서의 핸드폰 벨소리가 문제로 제기되기도 했다. 공연을 관람할때는 핸드폰을 꺼두거나 진동으로 해야 하는 기본 에티켓을 지키지 못한 일부 관람객으로 인해 조용히 감상해야할 음악회가 짜증나는 시간으로 둔갑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얼마전에 있었던 바이얼리니스트 장영주의 고국무대에서는 연달아 기침소리를 내는 관객과 핸드폰 벨소리 때문에 연주자들이 오히려 무안해 했다고 한다.
뭐가 그리 우리를 바쁘게 하는 것일까, 이 근거없는 바쁨은 혹시 핸드폰을 위시한 문명의 이기들이 불러온 '조작된 바쁨'이 아닐까. 우리 어렸을 때을 생각해 보면 확실한 비교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때는 지금처럼 전화기마저 보급율이 저조 했다. 우리는 편지를 애용했고, 그 편지는 훌륭한 연락자 역활을 해주고도 남았다. 물론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았다. 정 급하면 전보를 쳤었다. 그래서 항상 우체국엔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우편배달부는 바빴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랑과 행복을 실어 나르느라 행복했다.
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물질문명이란건 어쩌면 허상이 아닐지,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핸드폰이 없어도 우린 행복하지 않았던가, 빠름을 최대무기로 탄생한 물질문명이 편리함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시간을 빠르게 몰아가는 주범이 아닐까 하고 의문을 품게 된다. 예를 들어,주부들의 가사노동을 대신하기 위한, 세탁기며 냉장고 그리고 식기세척기가 발명되었지만 우리 여자들 어디 한가한가 말이다. 남편들이 흔히 하는 '기계가 다 해주니 여자들은 편해서 좋겠다' 는 그말이 말그대로 되는 세상이던가 말이다. 우리는 너나 없이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 왜 그리도 바쁜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인생에 대한 정의를 쉽게 내릴수 없듯이 세상사란것도 이렇다할 정의를 내리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다만, 세상을 움직여 가는 것이 인간인가, 물질인가, 그것을 생각해 보는 것은 오늘날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이 고민해 보아야할 과제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