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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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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우리꽃,


BY 빨강머리앤 2004-04-12

봄이 무르익는 주말, 집에만 있기엔 햇살이 아까울 정도로 날이 좋았다.

가족들과 가까운 산에 올랐다.

내가 흐르는 마을을 지나 산입구에 도착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봄꽃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목련의 꽃구름 사태는 사뭇 위태로워 보일 정도다. 그대로 구름이 되어 하늘로

둥실 떠갈듯 크고 탐스런 꽃잎을 피워내고 있었다.

새순돋는 물가의 버드나무 여린잎새도 꽃만큼이나 이쁘고,

밭고랑을 고르는 농부의 밭가에 피어난 진달래꽃은 평화로웠다.

천마산 입구, 보광사에 들어가기 조금 못 미처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서

성급한 여행객은 벌써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어김없이 한쪽에선 삼겹살이

구워지고 물이 좋은 아이들은 손과 발을 물속에 담그며 조잘대는 것이었다.

산길을 올랐다. 길 양편에 보라색 현호색이 미풍에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우리들꽃, 현호색. 꽃의 보라색이 신비로웠다.

보라색의 현호색 옆에 띄엄띄엄 개별꽃도 찾을수 있었다.

생강나무와 산벚꽃이, 그리고 연두색 새순을 틔워내는 활엽수들이 싱그러운

봄을 완성하는 숲은 눈이 부셨다.

그렇게 봄꽃들을 찾아 산에 오르는 동안 이상하게 생긴 풀(?)을 만났다.

넓은 잎을 가진 채소처럼 생긴 풀을 보고 남편은 '산속에 웬 배추가 저리 많냐?'고

했을때도 그때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산을 오르는 동안 계속해서 따라오는 그 정체불명의 풀의

정체가 정말로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기이한 현상이었다. 아직은 봄, 막 피기 시작한 새잎들을 따라

땅속을 뚫고 나오는 새순들은 여리디 여렸다. 그것들이 피운 꽃들도

여린 새순을 닮은 작고 앙증맞은 꽃들이 대부분이었다.

설사, 그것들의 생명력이 강하다고 해도 기껏해서 어른손가락 굵기를 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체불명의 풀은 봄풀에 대한 내 기존의 선입견을

완전히 무시한 크기로 그것도 왕성한 생명력으로 산에 분포되어 있었다.

잎사귀는 배추와 담배잎을 섞어 놓은 듯하고 줄기는 아욱의 줄기처럼 보였다.

꽃봉우리가 없는 걸로 보아 꽃은 분명히 아닌듯 했다.

그것중 하나를 캐어 보았다. 생각보다 뿌리가 깊게 내려 있는지 쉽게 뽑혀 나오지

않았다.나뭇가지를 이용해 땅을 한뼘이나 파고 들어가니 겨우 뿌리가 끊긴채

딸려 나왔다. 좋지 않은 냄새가 뿌리에서 풍겨왔다.

산길을 중심으로 계곡과 산속에 온통 그 이상한 풀이 산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산을 가득 덮을 것만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소름이 끼쳐 왔다.

그걸 보며 딸아이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 이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처럼, 부해의 세상을 만드는

독초가 아닐까?'

그 풀은 적어도 우리의 토종풀이 아닐 것이었다. 그런 풀을 여태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을 뿐더러 그 비슷한 풀도 만난적이 없었으니,,, 그것도

혹시 밭에서라면 모를까, 산속에서  잎이 지나치게 넓직하고 왕성한 생명력으로

자라고 있는 풀을 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 정체 불명의 풀이 우리들꽃의 번식을 막는 외래종으로 확신하는것에는

문제가 있겠으나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내 생각이 편견이길 바라는

마음 한편으로 이젠 그 정체불명의 풀때문에 산행이고 뭐고 기분이 뒤틀리고 말았다.

계곡 근처에도 어김없이 정체가 불분명한 그 풀이 지천이다. 그것은 이제막 봄풀이

올라오는 산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이상한 풍경이었다.

산을 중간정도 올랐을까. 갑자기 기온이 오른 날씨 탓인지 쉽게

지쳐 아이들도 오늘은 그만 오르잔다. 가져간 미숫가루 한잔씩 나눠마시고

산을 내려갔다. 내려오는 도중에 각자 산을 오를때 쉽게 오르기 위해 들고간

나무가지 지팡이를 이용해 그 정체불명을 풀을 뽑기로 했다.

쉽게 뽑히지 않았고, 뿌리가 완전히 뽑히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우리 산속에 우리풀들이 평화롭게 자라기 위한 공간을

그것들이 다 차지하게 내버려 두면 안될것만 같았다.

나중에 길을 내려와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께 그 풀의 정체에 대해 물으니

아저씨 역시 잘 모르는 풀인데 어느 순간에 그렇게 풀이 나있어 자신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노라고만 말씀하셨다.

바로 전날 아이랑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개망초꽃에 대한 이야기였다.

먼나라의 숲에서 베어진 나무에 묻혀온 꽃씨가 배에 실려 우리나라에 오고

그 꽃씨들이 길가에 떨어져 피어난 하얀꽃이 산이며 들이며 길가에 지천으로

자라게 된 내용이었다. 개망초는 맹렬한 기세로 우리산하를 뒤덮어서

다른 꽃들이 자랄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책에선 그것이 좋다고도 하지 않았고

나쁘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종의 다양성'이 머잖아 큰 문제로 제기될

미래를 생각하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닐것이라고 생각하는

내뜻을 아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산을 내려와 나는 논둑에서 쑥을 뜯었다. 그  옆 논두렁 물속에서 장난하던 딸아이가

올챙이를 발견했다고 좋아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아이손에 올라온 올챙이를 보니 토종올챙이가 아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논과 강을 지배하기 시작한 황소개구리가 낳은 시커멓고

토종올챙이에 비해 몸집이 큰 올챙이였다.

며칠전 신문에 토종개구리의 몸에서 중요한 약리작용을 하는 물질을

발견해 냈다고 했다. 그것이 신약이 되면 암을 예방하는 약이 될거라고 쓰여진

기사를 보며 한편으론 대단한 발견이라고 생각되면서도 어쩐지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안그래도 없는 토종개구리가 그렇게 되서 더 잡아들여

씨를 말리려는것은 아닌지.. 모든 삼라만상이 다 그러한 것처럼

자연속에 서식하는 식물이며 동물도 종의 다양성이 보호되고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외래종 식물로 뒤덮인 우리 산하, 외래종 동물이 도배하는 우리 물가는

어쩐지 살벌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한때 신토불이란 말이 유행했었다. 우리농산물을 애용하자는 취지의

그 말이 지금은 무색하리 만큼 먹거리에서의 세계화가 진행되어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본다.

그래서 봄산에 저 홀로 신비로운 보라색을 띤, 현호색이 더 정겹고

저홀로 지상의 별로 피어난 하얀 개별꽃이 더 소중한 만큼

우리는 그것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나마 간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