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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울타리(호주 원주민의 아픈 역사에 대한 보고)


BY 빨강머리앤 2004-03-15

며칠전 모대학 교수의 아이들 책읽기에 대한 강의를 접한바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위인전을 어떻게 읽힐 것인가'에 대한  논의였다. 대게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기 바라고 그 인물의 유형을 위인전을 통해 제시를 하곤 한다.

근데, 그 위인이라고 하는 범주에 대해 진지한 고민도 없이 만들어 지는 기존의 위인전집을

들여다 보면 위인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사람들이 포함되기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이나 콜롬부스는 어떻게 보면 침략자이며 약탈자인 인물들인데

그마저도 미화를 시켜 위인전을 만들어 아이들의 분별력을 흐리게 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다.그래서 제안하건데, '위인전'이라는 말 대신에 '인물이야기'가 옳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야 그 인물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에서 독서가 가능하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 졌다.

 

그날 저녁,'토끼울타리'라는 호주 영화를 통해  호주 이주민의 역사 속에 가려진

원주민의 아픔을 보았다. 언젠가 아메리카 원주민의 아픔을 다룬 '라스트 모히칸'이란

영화를 아주  잘 보았는데 같은 역사적 사실을 라스트 모히칸은 전쟁을 통한 어른의

입장에서 토끼울타리는 순박한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려놓은 영화였다.

 

사막과 건조한 땅에서 자라는 억센 풀들과 가시를 단 나무들 사이로 작은 움막같은 것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원주민의 땅 '지갈룽'

여기에 백인 이주정책을 펴는 호주 당국은 원주민을 보호 한다는 명목 아래 원주민의

거주지를 제한할 요량으로 '토끼울타리'를 친다.  그 울타리는 치는 이는 백인 남자들이다.

어쩌다 그 백인 남자들은 원주민 여성을 겁탈하기도 했다. 그러다 태어난 혼혈아들,,

몰리와 데이지 그리고 두 자매의 친척인 그레이시 역시 백인남자를 아빠로 둔

혼혈아이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리의 엄마는 몰리와 데이지를 목숨처럼 사랑한다.

원주민들은 영혼의 새가 있어 자신들을 지켜줄거라는 소박한 믿음을 가지고

사는데 몰리가 백인들에게 잡혀가기 전날 엄마는 하늘을 나는 한마리의 독수리를

가리키며 '영혼의 새'에 대한 비밀을 이야기 해준다. 저 새가 언제나 너를 지켜 줄거라고..

 

네빌이라는 원주민 보호 관리 소장 쯤 되는 이가 몰리 처럼 백인혼혈인 아이들을

한곳으로 모아 들인다. 그들은 비밀스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혼혈아이들을 분리시켜

다시 백인과 결혼하게 하면 조금더 살결이 하얀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다시 백인과

결혼을 하면 완전히 백인이 될거라는 사실을 들어 호주 원주민 혼혈아이들을

수용하기 시작한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지갈룽의 원주민들은 조혼을 서두르지만

몰리와 데이지 그리고 그레이시는 백인들에 붙들려 수용소에 감금되고 만다.

백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수용소엔 달랑 침대만 나란하고 잡혀온 혼혈 아이들은 모두

잠옷같은 옷을 입고 있다.  원주민 말대신 영어를 써야하고 백인이 먹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 생활을 못 견디고 도망이라도 치면 '개코아저씨'한테 잡혀와 죽지 않을 만큼

매를 맞고 독감되는 곳이었다.

 

개코아저씨는 본래 다른 이름이 있었다. 냄새를 잘 맡는 덕에

원주민인 그가 백인들에게 부역하며

자신들의 동족을 잡아 들이는데 앞장서는 모습이 묘한 서글픔을 주었다.

몰리는 철저한 보안망과 개코아저씨의 악착같은 모습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엄마한테 가야 겠다는 일념으로 때를 기다린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어느 아침, 몰리는 동생 데이지와 그레이시를  이끌고 수용소를

탈출한다. 소나기가 개코아저씨의 코를 무용지물로 만들것이라는 몰리의

생각은 맞았지만 머잖아 개코아저씨는 조금씩 몰리를 따라 붙는다.

도무지 12살 어린이라고 생각할수 없을 정도로 몰리는 침착하고 머리가 비상하다.

시냇물이 냄새를 지워줄 것이란 생각도, 반대방향에 동생의 가방을 떨어뜨려 놓고

온것도 다 개코아저씨를 따돌리게 할 묘안이었다.

 

하지만 4천킬로가 넘는 지갈룽, 엄마에게 향하는 여정은 개코아저씨의 끈질긴

추적 못지 않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배가 고팠고, 다리 아프다는 어린동생을

업어주기도 하고 방향을 가늠할수 없어 허탈해 지기도 몇번...

도움도 있었다. 원주민을 만나 고기를 얻어 먹기도 하고 자신처럼 수용소에 있다

백인집에 하녀로 있는 여자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들은 멀고도 먼 지갈룽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한결같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자연의딸이라지만 그들은 아직 너무 어린 여자아이들이었으므로..

호주원주민 관리소장인,네빌은 한달이 넘었는데도 여자아이들을 찾지 못하자

자존심이 상하지만 자신이 관할하는 경찰이며 군인들을 동원하는데도 몰리일행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을것 같던 몰리도 배고픔과 사막의

건조한 공기속에서 더는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다. 쓰러진 아이들 등뒤로

사막의 태양이 쏟아내는 백광이 눈부셔서 가늘게 눈을 뜨고 하늘을 보는데

원주민을 지켜준다는 새, 영혼의 새가 태양속에서 불쑥 날아 오른다.

몰리는 '저 새가 너를 지켜 줄거야'라고 했던 엄마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 몰리는 동생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길을 재촉하지만

토끼울타리 부근, 지갈룽엔 벌써 경찰이 몰리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연의 신이 가르쳐준 지혜를 따르는 원주민들은 원주민아이들의 먼 발자욱 소리를

듣고 그날밤 부족이 모두 모여 축제를 벌린다. 몰리를 환영하는 축제의 소리는

밤하늘 멀리로 퍼지고 마침내 토끼울타리 가까이에 온 몰리와 엄마는 숲에서의

반가운 해후가 이루어 진다.  엄마품에 안긴 몰리,몰리를 안은 엄마의 따사로운

표정이 클로즈업 되면서 영화는 끝이 났다. 이상의 얘기들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한

이야기였다는 멘트와 함께.....

 

우리는 인간은 동등하다고 교육 받았다. 가려진 호주이주민 역사에서 원주민의

인권이 새삼스럽게 인간은 과연 동등한가, 하는 의문을 품게 했다.

달달 외우기만 했던 역사책에서도 가르쳐 주지 못한 공부 한편의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하는 기분이다.  이 세상은 힘있고 권력있는 자들만의 세상은 아니다.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모두의 세상이라야지 조화롭고 아름다운 곳이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