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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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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일,


BY 빨강머리앤 2003-12-11

마냥 청승을 떨고 싶었다. 자고 나도 풀리지 않은 이 피곤함의 정체를

부여 안은채 청승과 함께 뒹굴고 싶었다.

청승이란게 별건가, 내 감정에 충실해 지고 싶은 그대로

감정이입을 시킬수 있는 어떤걸 찾아 내 앞에 놓는일이다.

축하'란 말조차 지금은 사치겠다 싶어 일찌감치 스스로 선물하나를

내 자신에게 던지는 심정으로 비디오 가게를 찾아 들었다.

청승떨고 싶은 속내 이입 시킬수 있는 절절한 감정이 흐르는

영화 하나를 골라야지 싶었다.

아무리 훑어 봐도 최신작중엔 내가 원하는 영화가 없어서

오래된 영화 목록을 찾다가 이거다, 싶은 비디오를 발견했다.

'러브어페어'  십주년 결혼기념일에 즈음하여 '사랑하며 산다는일'에

대하여 이 영화가 뭔가 해답을 해줄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사랑하는 대상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모두'첫사랑'이다 라는 결론.

첫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의 그 탐스런 기쁨의 순간을 우린 불행히도 오래

지속시킬수 없다는 진실.... 하지만 되돌아 보면 그 기쁨의 순간은 짧았으되

그것으로 하여 우린 한사람을 오래 오래 사랑할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 어느때였을까, '잊을수 없는 사랑'이란 영화를 보았다.

숀코네리와 데보라카 주연의... 각자 약혼자를 둔 남자와 여자가

우연히 여행길에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그 사랑이야 말로 가장 진실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그들은 각자 현실의 문제를 매듭짓고 감정을

정리하는 3개월여의 시간을 갖기로 한다. 그리고 3개월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기로 하는데 마침내 약속장소로 향하다 여주인공은

교통사고를 당한다. 홀로 기다리는 남자는 그녀의 변심을 의심하면서도

그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잊지 못하다 결국엔 두사람이 크리스마스 전날밤

극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내용이었다. 물론 마지막에 두 사람의 오해가

풀리면서 달콤한 키스를 나누며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는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으로 차용되어 진다.

시애틀,,,에서 여주인공이었던 맥라이언은 '잊을수 없는 사랑'이라는 영화를

친구랑 보면서 눈물을 흘리곤 한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던 그 영화를 보면서

자신도 그러한 사랑을 꿈꾸는데 어느날 그런 사랑이 자신에게 찾아오고...

볼티모어였을 것이다.. 정동쪽에서 정서쪽에 위치해 있는 시애틀까지의

거리를 왕복한 사랑... 그것도 편지로 그것도 남자주인공의 아들이 대신한

편지를 매개로 사랑을 키워가는 두사람이 만나기로 하는곳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고, 두사람 역시도 엇갈릴 뻔한 우여곡절을

거치며 마침내 만나게 되는 플롯으로 전개가 되는 영화였다.

연대로 봐서는 '러브어페어'는 '잊을수 없는 사랑'과 '시애틀의 잠못이루는밤'

중간 정도로 보이는데 잊을수 없는 사랑의 플롯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플러스 되는 영화로 재탄생 했다.

아네트 베닝과 워렌비티라는 할리우드 최고의 연인을 탄생 시키면서..

실제로 그들은 러브어페어 이후 사랑에 빠져 결혼에 까지 이를수 있었다고 한다.

 

십여년이 넘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내가 '사랑하는 일' 운운한다는건

어찌보면 새삼스러운 일인듯 하다.

나도 분명 가슴 떨리는 사랑의 순간을 경험했었는데 말이다.

영화속 대사처럼 '당신의 행동을 지켜보는 일이 행복'한 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사랑의 느낌으로 충만했던 연애시절의 장소들이 어제인듯 뚜렷하게

기억되는 것으로 봐서도 그날들은 분명 행복했단 생각이다.

집근처에 있었던 실내장식이 자주색이던 '폴링'이라는 카페와 그 카페에서

듣곤 했던 훌리오 이글리시아스 음악들이 그립다.

그 옆에 있던 공원 벤치와 작은 소롯길을 산책삼아 걸었던 그길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저녁식사를 하곤 했던 종로의 작은 레스토랑의 이름이 '리베'였었다.

한남동에 있는 주막에 들러 '레몬소주'를 마시곤 했지. 흙담이 있던 그 분위기가

어찌나 포근하던지 시간 가는줄 몰랐었다.

그리고 가끔 찾아 가던 생맥주 집에선 음악신청을 받아 주곤 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일은 특별한 기쁨을 주었다.

한남대교를 걸었었다. 그 다리가 그땐 왜 그리도 짧았던지.. 다리위에 걷다가

중간쯤 서서 하늘을 바라보면 별이 몇개 반짝여 주곤 했었다. 밤이 깊은

한강은 몇개의 빛나는 별빛을 그대로 비춰 빛으로 일렁이던 모습도

손에 잡힐듯 하다. 그 길들, 그리고 장소들이 가슴에 그대로 박혀 들었다.

한사람을 그렇게 깊이 사랑하면 그 사랑과 함께한 것들도 가슴에

묻혀 오는 모양이었다.

 

그것들을 다시 꺼내 보게 하던 영화 '러브어페어'는 충분히 내 청승을

다 받아주고 홀로 울게 하였다. 아름다운 사랑을 보는 일은 '사랑하는 일'에

빠진 당사자 못잖은 감동을 안겨 주는 법인가 보다.

사랑을 기억하고 싶은 당신께 이 영화를 권한다.

가슴 떨리고 마음은 구름밭을 떠돌던 황홀하도록 아름답던

첫사랑의 순간을 잊었다면 그대도 이 영화를 보았으면 한다.

몇번을 봐도 크리스마스 전날밤 주인공 남녀가 재회하는 장면에선

눈물을 흘릴수도 있을 것이다.

따스하게 흘러 내리는 그 눈물은 당신의 무딘 가슴을 촉촉히 적셔 줄것이고

새삼스럽게 이젠 이쁠것도 미울것도 없는 당신의 옆지기를 따뜻한 마음으로

껴안을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사랑하는일... 그것은 첫 마음을 기억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