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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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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어디 닮았나?


BY 빨강머리앤 2003-11-18

'벌레'때문에 친해진 수영이 엄마가 생각난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아이였을때, 마당이 있는 빌라 주택에서 살았다. 한번은 삼겹살을 구워 저녁참을 올릴 생각으로 상추를 씻고 있었다. 몇포기 상추를 씻다 깜짝 놀라 기절하는 줄 알았다. 상추에 애벌레 한마리가 딱 달라 붙어 있다.

흙을 좋아하고 자연을 좋아하는 내가 가장 무서워 하는게 벌레란걸 알면 아마 사람들은 웃을 테지만, 단순히 그 이유 때문에 난 텃밭 하나 키울 엄두를 못내고 있으니... 어쨌든, 그 벌레를 보고 기절 초풍하기 일보직전, 이걸 어찌해야 하나,처치하지 않으면 우리집을 기어다닐지도 모르는데 그냥 둘수는 없고, 그렇다고 저렇게 징그러운걸 내손으로 직접 처치할수도 없고... 정말 난감했다.

그 몇분동안 공포상태에서 머리가 하얗게 될지경인데 갑자기 앞집으로 뛰어갈 생각이 났다.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서로 목례만 간단히 나눌정도의 사이였는데 왜 그집이 생각났는지 몰라. 아무튼, 무조건 벨을 누르고 '저, 저희집에 잠까만 와주실수 있겠어요?'하니, 앞집여자 그 작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내 딴에는 가슴을 진정시킨다고 한건데 그녀의 눈에 들켜 버렸나 보다.

 부리나케 먼저 앞서서 우리집에 들어섰다. 뭔가 대단한 일이 생긴 모양이군... 그녀의 표정엔 그런 상상이 숨기지 않고 드러났다. '어디예요?, 무슨일이죠?'하며 나를 따라 부엌으로 오면서 조금씩 그녀의표정이 누그러졌다. 거실을 거쳐 부엌까지 오는동안 아무일 없는듯, 모든것이 제자리였고, 분위기는 고요했으며, 아이들은 저희들 끼리 잘놀고 있었으므로. 그제야 비로소 내가 상추를 씻다만 씽크대를 가리키며 '저기 벌레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픽, 그녀의 웃음. 에이, 뭐 이런걸 가지고... 용감한 그녀는 맨손으로 내가 가장 무서워 하는 벌레를 집어 변기통에 집어 넣고 물을 쫙, 내려 주며 웃네. '뭐 이런걸 가지고 그렇게 놀랬어요. 난 또 무슨일 났는줄 알았네~~' 하며 나간다.

벌레를 무서워 하지 않던 그녀의 용감함이 대단해 보였고, 상대적으로 멋쩍게 되어 버린 내가 변명을 했다. '전 이 세상에서 벌레를 가장 무서워 하거든요'그러자 그녀가 그랬다. '난, 벌레는 안무서운데 귀뚜라미는 왜 그렇게 무서운지 모르겠어요?'등치가 내 두배는 되었던 그녀로부터 귀뚜라미가 무섭다는 얘길 듣는데 왜 그렇게 웃음이 나던지. 그리고 갑자기 친구가 되어버린 느낌이 드는 거였다. 비로소 공포로 부터 해방이 된 내가 웃으며 그랬다. '저는 귀뚜라미는 하나도 안 무서워요. 아니 귀뚜라미를 좋아해요. 그러니 그집에 귀뚜라미가 나타나거든 저를 불러 주세요. 하하..'.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동갑이었다. 괄괄한 그녀의 성격과 새침떼기인 내성격은 서로 무지 달랐지만 어쨌든 앞집을 서로 마주보며 이웃간의 정을 새록 새록 키워갔다.

그런데 그녀에겐 아이가 없었다. 늦게 결혼을 했으니 아일 얼른 낳아 길러야 할텐데 하면서 나름대로 병원에도 가보고 시어머니가 지어다 주신 한약도 먹는 눈치인데 쓸데없이 살만 늘어가면서 아이는 안생겨 이만저만 걱정을 하는게 아니었다.

일년이 그렇게 지났나, 기적처럼 아이가 들어섰다. 나는 늦게 아일 갖게된 그녀가 신기해서 이거저것 선배로서 가르쳐 주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임산부가 알아야 할 기본상식이며, 태교며 그리고 어떤음악을 들을 것이며... 등등. 시장에 가서 과일을 사면 일부러 그녀에게 주기위해 이쁜것을 골라서 가져다 주기도 했다.

한번은 장을 보다가 세일을 하고 있는 '로엠걸즈'에 들러 딸아이 옷가지를 몇개 사고 나오면서 계산대 옆에 있는 카탈로그를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참 예뻤다. 볼이 오동통하고 눈망울이 왕방울같고, 하얗고 뽀얀 얼굴에 장밋빛 뺨을 가진 외국아이들의 사진이 너무 예뻐 그걸 들고 나왔다.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어찌 났는지 몰라.

그걸 자랑삼아 그녀에게 들려주며 자주 들여다 보라고 강조를 했다.'이걸 들여다 보면 진짜 이렇게 예쁜 아이 낳을거야' 사실, 그녀는 못생긴 편이다. 못생겼다 그러면 수영이 엄마 눈을 흘길지 모르지만, 중성적인 그녀의 외모는 '이쁘다'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얼굴이다. 물론, 맘씨 하나는 끝내주게 쿨한 여자지만. 그녀의 남편의 인물도,,,,쩝.. 그녀가 입버릇 처럼 말한게 있다. 만약 뱃속의 딸이 자기 남편을 닮아 태어나면 자신은 정말 아이 얼굴 보고 싶지 않을거라고.. 그 남자 자기가 아일 낳아도 아이 한번 안아 줄지 의문일 정도로 아이를 안좋아하니 걱정이라는 말까지 했었다.

아무튼, 그녀는 로엠걸즈의 카탈로그에 있는 이쁜 아이들 사진을 가까이 두고 자주 들여다 보고는 했다. 그집에 놀러가면 그녀가 좋아하는, 좁은 집에 안어울리던 유난히 큰 텔레비젼 바로 위에 항상 그 카탈로그가 펼쳐져 있었다. 활짝 웃고 있는 금발의 여자아이. 유난히 큰눈을 반짝이며 웃고 있는게 천사가 따로 없다 싶은 사진이었다.

사실은 그 카탈로그를 그녀에게 전해주면서도  속으론'설마'했었다. 아무려면 사진을 많이 들여다 본다고 그렇게 닮아질까 싶은 의심의 마음이 한켠에서 도사리기도 했었다. 그녀가 낳은 아이가 그 사진속의 아이를 닮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조금 미안해 지기도 할텐데...

열달후, 임신중독으로 퉁퉁부은 그녀가 어렵게 재왕절개 수술을 한끝에 아일 낳았다는 얘길 그녀의 남편으로 부터 들었다. 몸조리를 위해 친정에 한달을 있는 동안 잠깐씩 집에 들어오는 그녀의 남편으로 부터 그녀의 근황을 들으며 임신중독인 몸으로 어렵게 아일 낳느라 힘들었을 거야, 하는 맘 한편으론 태어난 여자아이의 얼굴이 너무나 궁금했었다.

 드디어, 한달간의 조리기간을 끝마치고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다. 친정엄마가 같이 오셔서 그날은 그집에 들어설 생각을 못하는 동안 궁금증은 참을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는데 어김없이 시간은 가는법이다. 다음날, 그녀의 남편이 출근을 한 시간을 맞춰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미리 사둔 아이내복을 가지고 '축하해'라는 인사말을 건네고 들어서니 활짝 웃으며 그녀가 반겨주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우리딸 좀 봐'하는데... 와, 이건 기적이었다. 그 큰눈. 누굴 닮았냐? 엄마눈도 아빠눈도 새우눈 인데 그 큰눈, 동그랗기도 하지? 그 빛나는 크고 검은눈은 어디서 많이 본듯도 하다. 아하, 너 그사진속의 아일 닮았구나. 세상에 이럴수가... 그녀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어쩌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아일 들어올렸다.

정말 닮았네. 아이는 정말 예뻤다. 수영이... 그 이쁜 여자아이가 보고 싶어 날마다 난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조금씩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까지 행복해지는 느낌이 들정도로 얼굴이 예쁜 수영이. 하지만,생각해 보면 그까맣고 곱슬거리던 머리는 아빠를 닮았고, 오물오물 밥을 잘도 받아먹던 그 입은 네 엄마를 닮았구나. 그래, 아이는 엄마를 아빠를 닮는 법이거든.

 그래도 그눈, 크고 반짝이는 수영이의 눈은 엄마도 아닌 아빠도 아닌 그 사진을 닮았더란 전설같은 얘기 였다. 오래전에 연락이 끝긴 수영이 엄마가 오늘은 무척이나 생각난다. 둘째도 여자아일 낳았다는데 그 아이 모습은 어떨지, 그아인 또 엄마아빠의 어떤 모습을 닮아 있을지 ... 문득 지나간 그 시절, 함께 이웃지간의 정을 담뿍 나누고 살던 일들이  그림처럼 떠올라 추억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