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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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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그린 풍경


BY 빨강머리앤 2003-10-11

여느때처럼 자명종 시계 소리에 놀라 잠에서 퍼득 깨어났다.

눈은 떴고, 햇살이 방안까지 침입한 흔적이 고스란한데 눈거플에 붙은

여분의 잠이 자꾸만 이불속으로 나를 유혹했다.

그래도... 아침을 준비해서 아이들 학교 보내야지,, 아침마다 늘상 해오는

그 일이 오늘아침따라 힘이 드는건, 감기때문이다. 어제 감기약을

먹고 일찍 잠을 들었어야 했는데 비디오를 보고나니 새벽이었다.

 

내일부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새엄마'가 되기로 하고

눈을 비비고 일어나 졸음을 일깨울 양으로 동쪽으로 난 창문을 열었다.

서향인 우리집, 그래서 아침은 항상 뒷쪽 베란다로 먼저 발길이 닿는다.

 

햇살이 닿는 손길이 산능선에 그대로 아로새겨진 모습을 보기위해서다.

창문을 열다가 흠짓, 아,저건 또 무슨 신비로운 자연현상이란 말인가.

 

하늘에 고래등이 떠있었다.

시력이 별로 좋지 못한 나도 분명히 구분할수 있을 만큼, 하늘에 고래등이

한개 떡하니 떠있는 거였다.

가만, 살펴보니 오늘따라 짙은 운해가 산아랫부분을 다 가려 버리고

산봉우리 부분만 살짝 드러내 놓고 있는게 아닌가.

화득짝, 놀라 눈이 번쩍 뜨였다. 잘자는 식구들을 몽땅 깨웠다.

자다 봉창 두드린다는 표정으로 뜨악하게 일어나는 남편,

졸린눈을 부비며 엄마 왜 그래? 다가오는 아이들,,,,

'저것 봐라. 저기 산을 좀 봐, 저거 안보면 후회할걸...'

 

식구들대로 좁은 다용실에 들어가 산을 바라보았다. 이젠 하늘에

'섬'이 하나 떠있었다. 늘 수리쪽에 관심이 있는 아들이 그랬다.

'엄마, 저 산봉우리가 해발 천미터는 넘겠지?'

엄마가 수선을 떨며 이리 와 보라고 하자 가장 즐거운 표정으로 뛰어왔던

딸아이가 그랬다. '구름이 덮인 산보다 엄마 얼굴이 더 재밌다..'

 

꼭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듯 했다.

운해에 싸인 산이 있고, 절벽 가운데 폭포가 흐르면

그 사잇길로 지팡이를 짚고 가는 나그네가 있는 수묵화 한점이 떠오르기도 했다.

 

산과 산이 연결되어 온 세상을 감싸듯한 이곳지형에 인간이 이루어놓은

건물들만 우뚝 드러나고 세상이 온통 구름에 잠긴듯한 모습이었다.

잠시후, 아침햇살에 조금씩 산아래 부터 구름이 걷혀오고 있었지만,

여전히 산꼭대기에 묵직하게 얹혀진 구름은 바람에 따라 그 모양을 조금씩

바뀔뿐 도무지 물러날 생각을 아니 하였다.

 

온 산들이 운해에 싸여 있고 산봉우리만 엎어놓은 바가지 마냥 혼자 둥실떠가는

모습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섬이었던 산봉우리가 뒤짚어놓은 바가지가 되고, 잠시후 안개속에

묻혔다 싶었더니, 그것들이 서서히 승천을 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있는 구름과 지상에 있는 구름이 서로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들이 지상에 있는 구름들을 향하게 손을 내밀어 주었을 테지..

조금씩, 가볍게 하늘로 구름들이 올라가면서 산능선들이 비로소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남은 구름들이 서둘러 북한강가로 몰려가는것을 끝으로

산들은 구름샤워를 하고 말끔한 얼굴을 내밀어 주었다. 오늘따라

맑갛게 떠오르는 가을해를 향하여.

 

그 아래로 아이들이 줄지어 학교에 가는 모습이 보인다.

늦었는지 뛰어가는 아이들.아이들 등뒤로 쏟아지는 아침햇살이

따사로워 보였다. 신비롭게 열렸던 아침,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생길것만

같은 예감이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것 같은 예감, 아컴방에 오신 모든 분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한없이 크게 열리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