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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달빛.


BY 빨강머리앤 2003-10-09

낮동안 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나날입니다.

여름으로 가는 봄햇살은 피부에 해로운 반면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햇살은

고맙고 살가운 햇살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있지요? 봄엔 며느리를 밭에 내보내고, 가을엔 딸을

밭으로 내보낸다는....

 

릴케의 싯구도 떠오릅니다. 막연히요. 가을햇살을 이르러, 마지막 과실에

단맛을 들게 하는 빛이라 했던....

시월 들어 부쩍 일교차가 심합니다. 아침과 낮의 기온차가 십여도 이상 차이가

나서 식구대로 환절기 감기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기온차로 해서 가을곡식들이 잘 여물어 간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러니 고마운 햇살입니다.

우리집 베란다를 통해서 왼편으로 보이는 다락논이 있습니다.

작은 논배미에서 벼가 익어가는 모습을 볼수 있는데요,

아침마다 베란다 창문을 열면 바라다보이는 그 논배미 벼이삭이

날마다 조금씩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걸 시각적으로 가장 잘 표현해주는 벼가 익어가는 황금빛 들녘을

저 조그마한 다락논을 통해서 보게 되는 아침..

나도 가을햇살 속에 달고 잘 익은 열매하나 키웠음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어젠, 달빛이 참 고왔습니다.

태양력에 익숙한지라, 음력 날짜를 모르고 지나가기 쉽상이라 그나마

달의 모양을 보면서 음력의 날짜를 짐작해 보고는 합니다.

곧 보름에 가까워 오는지 살진 달의 모습이 넉넉하게 비춰 듭니다.

그래서 달력을 들춰 보았지요. 뭐하느라 바빴는지 아직 '9월'초가을에

멈춘 달력을 후다닥 넘겨 진짜가을이 무르익는 10월, 제자리를 찾아 주었습니다.

낼모레면 보름이더군요. 그래서 달이 저렇게나 둥실, 살쪄보였구나.

하마터면 그 달빛을 놓칠뻔 했습니다. 낮에 깜빡 잊고 있었다가

세탁을 끝낸 세탁기의 빨래를 건조대에 말리려고 베란다로 나서지 않았다면요..

보름이 오는지 어쩌는지도 모르고 밤하늘을 들여다 보는 일이 궁하기

짝이 없었지요. 뭐가 그리 바쁜지...

빨래를 한아름 안고 베란다로 들어서니 달빛이 베란다에 창문가득 쏟아져 들어오길래

조금 어두웠지만 베란다 천정에 붙어 있는 알전구의 전깃불을 껐습니다.

달빛이 충분히 환해서 그빛 만으로도 충분히 빨래를 건조대에 걸수가 있을 것도

같았고, 자연이 주는 천연의 빛을 받으며 빨래를 너는 기쁨을 맛보고 싶어서 였습니다.

가끔, 그렇게 둥실 보름달이 떠오르면 아이들을 시켜서

달을 보며 소원을 빌어 보라 시켜봅니다.

아이들은 재밌다는듯 두손을 모두고 비나리를 하면서 속으로 소원한가씩을

얘기하곤 하지요. 그냥, 별뜻없이 그렇게 해보라는데 아이들은 꼭 자신의 소원을

달님이 들어줄것 처럼 심각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는 소원을 비나리 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아이들이 참 귀엽단 생각이 들곤 합니다.

 

어제는 조금 싸늘했지만 일부러 베란다 이중 창문중 불투명한 창문을 활짝 열어 두었습니다.

맑간, 투명한 샷시문만을 닫아놓고 달빛이 우리집으로 한껏 들어올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모처럼 맑은 가을날 , 차고 맑은 기운을 타고 밤하늘 가득 달빛을

쏟아붓고는 우리집 창문까지 와서 넘치는 달빛을 나눠주던 달밤.

달빛 그림자가 창문을 넘어 방안에 드러누웠습니다. 푸르스름한 달빛을

받을수 있도록 아이들의 베개를 그쪽으로 놓고 아이들을 재웠습니다.

베란다 건조대에 걸린 아이들의 옷위로 쏟아진 달빛이

자는 아이들 얼굴 위로 소복히 내려와 앉았습니다.

달빛 세례를 받은 아이들이 부디 행복한 꿈을 꾸었으면 싶은

달빛 고운 어젯밤이었습니다.

달을 서서히 제가 태어난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여 하늘 중앙으로 흘러가면서

조금씩 방안에 드리운 제그림자를 거두워 갔습니다.

조금씩 작아지는 달그림자만큼 조금씩

달은 여명을 향하여 흘러갔을 겁니다.

어쩌면 여명의 한순간, 내일아침을 위해 마중나온 해님과

잠깐 달이 아름다운 교감의 순간에 손을 맞잡지 않을까 ?

그런 별 볼일 없는 상상을 하면서 잠을 재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