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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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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은 뜨거웠네~


BY 리 본 2004-08-07

내생애 가장 뜨거웠던 여름을 기억하라고 하면 1982년의 춘천에서의 어느 여름을 꼽을수 있을 것이다. 아들아이가 두돐이 채 안될 즈음에 머리를 박박 깍으면 좋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 이발소에 데려가 중학생 머리를 만들어 의젓하고 등치도 큰게 엄마젖을 먹는다고 이웃집 아저씨에게 중학생이란 놀림을 받던 그해 여름이었다. 옹색한 단칸방을 면치 못하고 희망 한조각 부여잡지 못하고 절망의 날들을 살아야 했지만 그래도 흰떡처럼 잘생기고 영리한 아들내미 성휘가 내 삶을 지탱하여 주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낚시에 미쳐 밤낮으로 낚시터에서 살다시피하는 남편과는 정말이지 말조차 섞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남남으로 지내다시피하는 와중에 말다툼이 벌어져 전기밥솥 나동그라지고.. 겨우 장마한 손때 묻은 살림살이 박살나고 4칸짜리 낚시대로 머리를 얻어 맞았을땐 하늘이 깜깜하고 실신할 정도였다. 분하고 서러운 마음에 정말 어디라도 잠시 떠나 머리를 식히고 싶었지만 친정집이라야 아버님이 생존해 계시긴 했지만 서울이라 생각없이 다녀 오긴 먼거리였고 그런 몰골로 친정식구들에게 부담주긴 더욱 싫었다. 여기저기 흐트러진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아이를 달래 젖을 물리고 진정하려 애쓰고 있는 나에게 옆방에 함께 세들어 사시는 할머니께서 울적한 심사를 달래자면서 하일이라는 곳에 당신의 언니인가 동생인가 하는분이 사신다고 함께 가서 그집에 농사를 많이 지으니까 오이를 얻어 오자면서 함께 나서자고 하셨다. 집에 있으면 뭘하랴 싶어 아이를 울러매는 끈으로 업고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근화동 살던때라 버스를 타고 후평동 종점까지가서 그곳에서 하일까지 가는 버스 시간과 맞이 않아서 걸어 가기로 했다. 염천더위에 두돐이 가까워오는 말만한 아이를 업고 가도 가도 양쪽엔 스프링쿨러가 돌아가는 밭길 사이로 걸어 가는데 화탕지옥속으로 끌려 가는듯 한걸음 한걸음이 죽음이었다. 땀은 비오듯 흐르고... 등때기는 불붙은것 처럼 뜨겁고... 정말 이길을 왜 따라 왔던고 골백번 후회를 하면서도 딱히 돌아갈 수 없어 비척비척 걸음을 띠면서 할머니의 언니인가 동생이 사신다는 하일이란 곳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푹푹찌는 지열과 폭염속의 하일로 향하는 길은 정말 내생애 최고의 뜨거운 여름 나들이길이 되었다.


독단지만한 아이를 업고 염천의 들판길을 걸어 파김치가 되다시피해서 찾아간 할머니의 친정부치의 집은 언듯보아도 잘사는집 같아 보였다. 당도해보니 할머니의 동기는 춘천시내에 나가셨는지 안계셨고 며느님되시는 분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따순 점심상을 해내주셔서 시장하던 참에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맛있게 먹었고 오이를 따는 비닐하우스안에서 오이선별 작업도 하고 허드렛일들을 거들어주고 오이를 한접가량 얻어 왔다. 올때는 버스 시간에 맞게 춘천으로 나오는 버스를 타고 나와 땡볕과의 사투는 피할 수 있었다. 해마다 머리가 벗겨질 정도로 뜨거운 여름이 되면 그때 할머니와 동행했던 후평동버스종점에서 하일까지의 가도가도 황톳길 불볕더위에서 헉헉대던 그때의 악몽이 떠올라 여름이 더욱 싫어지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가난한 이야기... 내게 너무 뜨거운 여름이야기는 여기서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