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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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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BY 실버들 2003-09-22

" 오늘 21일 맞지?"
두어번이나 식탁위에 걸려있는 달력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남편이 뜬금없이 날짜를 확인하는거다. 

" 왜? 뭔 특별한 일 있어요?"
" 아니~~"

나는 내 생일조차도 기억못할정도로 날짜감각이 없다.
아니 원래는 안그랬는데
하도 철두철미해서 아주 미미한 일도 결코 놓치는 일이 없는
고마운(?) 써방이랑 사는 덕에 알게모르게 그냥 그렇게 되버린거다.^^

21일이라..
정작 내가 알고있어야할 달거리 날까지도
대신 정확히 꼬집어 주는 사람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냥 날짜를 들먹일 까닭이 없는데
이 양반은 피식거리기만 하고..

정말이지 궁금해서 미칠지경이었다.

" 뭐야! 뭐! 빨리 얘기해!"
" 모르면 그만이지뭐..그냥 넘어가!"

그리고는 운동하러 나가버렸다.

아이들 역시도 벗들과 약속이 있다며 도망갔고
혼자 멀뚱히 컴앞에 앉아 있었더니
가을바람이 솔솔 콧끝을 간지럽히는게
마치 내가 들판에서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인듯한
착각속으로 빠져들기에 딱이었다.

그 순간 문득 생각나는게 있었다.
대학 3학년 어느 가을날이었던가
미연이랑 효정이랑 코스모스속에 파뭏혀 사진을 잔뜩 찍어뒀던 기억..

얼른 빛바랜 기억들 가득한 앨범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행복의 물결이 물밀듯 밀려들기 시작하는 순간에
남편이랑 신혼여행 가던 날 어색한 포즈로 살포시 안아찍은
촌스런 사진한장이 눈에 뜨였다.

그 사진을 가만 보고 있노라니
중매로 만나 급속으로 꼴인했던 관계로
어설프기만 했던 첫날밤 비하인드 스토리에서부터
그동안 내가 웃으며 울며 살아냈던 많은 순간들이
새삼스럽게 주마등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아뿔싸!
무심코 쳐다보다 그 아래 찍힌 날짜를 보니..바로..90 /9/21
그렇담..그렇담...바로..결혼기념일?
그랬던거다...
꼭 기억해내리라던 중요한 날을 이번에도 나는 또 놓치고야 말았다.

내가 생각해도 어리버리한 내가 너무 한심해서
죽을상으로 있는데..그 순간..때르릉~~~~~~
" 삼십분 내로 외출준비해서 기다려라~"

시침 뚝 떼고는 .." 왜? 어딜 갈려고? 오늘 뭐..중요한 볼일 있어?"
이 양반도 속시원하게 털어놓질 않고서..
" 응...별 이유없어...그냥..어디 좀..갈데가 있어그래.."

내 참.. 하는 수 없이..알고도 모르는체..눈 딱 감고.. 

정성껏 화장을 하고 써방이 젤 좋아하는 스타일로 챙겨입고서는..

멍멍이가 눈 반기 듯 ..쫄래쫄래 쫓아나가고 말았다...

 

어쩌면..앞으로도..내 인생은...

오로지  한사람만을 쫓는 그런 삶일 거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