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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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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48

착한여자


BY 실버들 2003-09-16

 

착하게 살면 반드시 복 받는거 맞지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착한사람보다는 영악한 사람이

더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착하고 순수하다는 표현이
언제부터인가 미련스럽다는 의미에 속해버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 나눠줘야만 직성이 풀리는
남편의 외사촌 영심이 누나.
정말이지 그리 착한 사람은 본적이 없습니다..

집에 다녀가라는 연락에 잠시 들리면
냉장고 구석구석을 다 뒤져

친정어머니가 보따리 챙겨주듯
바리바리 싸 주고서야 맘이 놓여 빙긋 웃으시는 언니..

누구에게든 그렇게 베풀며 고운 맘으로만 사는 언니가
추석 전날 또 전갈이 왔습니다.
안그래도 언닐위해 마련해둔 선물도 전해줄겸

집으로 간다니까
평소엔 안그러더니만 자꾸 중간지점에서 만나자는겁니다..

역시나 언니는

입이 벌어질만큼 커다란 5킬로짜리 황돔 1마리와
배 한박스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고급양주 한병을 마련해 왔습니다.
몸둘바를 몰라하는 내게 언니는 얼른 차에 실어두고
차 한잔 하자는 겁니다.

" 은실아! 사실은 내가 속이 뒤집어질 것 같다..
  하소연 좀 하고 싶어  밖에서 보자 그랬다.."

" 그래요..언니! 언니도 속상한게 있어요?
  나는 늘 언니가 부러워죽겠구만.."

" 그래 모두 그래보이나봐..
  근데..사실 나는 이십여년간 단 한번도 편한 맘으로 살아본적 없다.."

그리 많지않은 나이여도
형부는 00청 서열 3위까지 올라갈 정도로 사회생활을
능란하게 해내시는 분이랍니다.

" 서로 오손도손 살 수만 있다면 나는 특별한 직책없는
   환경미화원이어도 좋을것 같애.."

늘 여유롭게 웃으시며 말 주변 좋은 형부가
나는 정말 좋아보였는데.. 남자는 같이 살아보기전엔 모르는건가?

언니는 켜켜이 쌓인 응어리를
눈물까지 흘리며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 언니! 돌아보면..안팎으로 완벽한 남자가 없는거 같애요..
  형부의 장점만 보면서 살면 안될까?"

" 우리는 첨부터 어긋나는 만남이었어..
  이제는 서로가 적당히 무시하며 사니까 오히려 편하다."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지요..
한지붕 밑에 살면서 가족의 의미가 완전히 와해된 그런 삶이라니
얼마나 서글픈 노릇이란 말입니까..!

" 넌 무척 행복하지? 세심하고 각시밖에 모르는 남편이랑 살아서.."
" 언니야! 나 있지..이젠 그러려니 하고는 적응해서 그렇지
  첨엔 숨이 콱콱 막히는것 같았어요..나는 형부같은 남자가 정말 좋더라.."

본인 짝의 단점을 다른사람은 장점으로 본다는 거..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이치와 맥이 통하는걸까?

과거에 바람까지 펴서 속을 긁어 놓았었다는 형부의 얘기,
엄마속 몰라주는 대학다니는 딸 얘기..고3인 아들얘기..그리고 늦둥이 얘기..

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고 언니의 하소연은 해도해도 끝이 없었는데..
" 언니야! 우리 추석 지내고 편하게 만나 실컷 얘기하자.."
" 삼십분만..아니 십분만 더 있다 가자..아니..오분만.."

결국 두시간을 더 마흔일곱난 언니의 한숨을 받아내야만 했습니다.
결론은..다시 이십대의 결혼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꿈같은 얘기였습니다.

" 언니! 그래도 소중한 아이들 생겨났잖어..그 기쁨으로 살면 되는거지..
  뭔 복에겨운 소리야!!"

" 그래..그래..니 말이 맞다..그래..그래..."

끄덕이며 눈물을 글썽이던 언니의 모습이 자꾸만 맘을 누르네요..
내일이면 다시만나 언니속 후련하게 해드려야겠어요..

착한언니에게 이제는 복이 듬뿍 내려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