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적엔 왜 그렇게도 시댁엘 가는 게 내키질 않았던지
때론 시댁과 가까이 사는 걸 내심 원망했었다.
주말이면 늘 시댁엘 들러 인사 드리고 나서 가족 여행을 떠나는 효자 남편 때문에 아침부터 이맛살을 찌푸려야만 했다.
한 번쯤 빼 먹으면 뭐 어때서
모처럼 쉬고 싶은 휴일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하니 자연히 남편과 마찰이 생길 밖에...
남편은 늘 그랬다.
우리끼리 어딜 가더라도 부모님께 전화로 보고를 드렸고
다녀와서도 당연히 하는 일이었다.
육남매의 장남답게 그야말로 ''''5분 대기조''''였다.
자가용이 흔치않던 시절이라
가족중에 우리만 ''''떵차'''' 수준의 자가용을 가지고 있던 터라
시부모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달려 나가야 했다.
그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시동생들이 연애하면서 드라이브 시켜달라든지
동서될 여자가 시 외곽지역에 산다고
밤에 좀 태워다 달라는 주문까지는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시아버님께 투정 비슷하게 지나가는 말로
한 말씀 드렸었다.
''''자기 애인이면 자신이 알아서 데려다 주고 오던지 하지
한 밤중에 형더러 기사 해 달라고 하는 건 뭔 경우냐''''고.
그 땐 왜 그렇게 사소한 것에도 신경이 날카로웠을까...
시어머님과 함께 나가면 언니냐고 묻는 주변 사람들조차
곱게 보아지질 않았다.
그럼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인단 소리야 뭐야...
남들은 날더러 늘 나이보다 훨씬 더 어려 보인다던데...
활달하시고 자기 주장이 강하신 시어머님과도
이따금 부딪히기 일쑤였다.
나 역시 자기 주장이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지라...
말씀이 좋으신 시어머님은
가끔 며느리들 사이에서 불란을 일으키기도 하셨는데
언젠가는 그로 인해 우리 부부는 대판 싸웠던 적도 있다.
그 자리에서 내가 오해 받기 싫어 해명하게 되면
동서와 시어머니가 곤란해 질 입장이어서
폭발직전인 마음을 이를 악물고 다스려야만 했다.
나는 팔년이 지난 후에야 그 문제로
남편과 시어머님께 항변을 했었다.
인내력이 좋은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마는 않다는 걸
그 후에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 후
시어머니는 다섯 며느리에게 함부로 흉을 보시는 일이 없어졌고
답답하시면 오직 큰며느리인 내게만 하소연하셨다.
말이 새 나갈 염려가 없으시다며...
남편 또한 시어머니께서 며느리들에 대해 단 한마디도 못 하시게 못 박은 터라 고부간에 불란이 있을 턱이 없었다.
전화로 한참 답답한 심중- 거의가 동서들에 관한 -을 말씀하시다가도 남편이 있는 기척이라도 보이시면 부랴부랴 전화를 끊으셨다.
남편은 모든 근원은 ''''말''''에서 불씨가 생기는 법이라며
꼭 필요한 내용이 아닌 말은 아예 못하게 해 버렸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남편의 중간 역할은 참으로 현명했단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남편 앞에선 시부모님께 대한 서운한 감정을 함부로 얘기 할 수가 없었다. 대신 남편에게 퍼 부었다.
그럴 때면
''''왜 죄 없는 내게 그래? 당신 시어머니한테 직접 해~''''라며
불만은 직접 말 해서 풀라는 식으로 유도를 하는데
어찌 화가 난다고 모두 다 말로 풀고 살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참고 배려하며 사노라니
''''큰며느리는 하늘이 내린다더니 역시...''''라는 평도 듣긴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시댁이 편치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식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헌신적이신 우리 친정 부모님과는 달리 시부모님은 냉정하시고
자신들의 미래를 더 생각하시는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친정부모님과 시부모님의 연세가
거의 이십 년 차이가 나시니 세대차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친정어머니 돌아가신 후 섧게 눈물을 흘리시며
몇 번이고 전화를 하셔서는 날 위로하시던 시어머닐 뵈면서
''''아~ 시어머니도 내 어머니구나''''라는 마음이 강하게 다가왔다.
워낙 친정엄마께서 내 뒷바라지를 다 해 주신 터라
당신들의 친손자 둘을 다 키워 주시고 살림을 맡아 해 주셨으니
시어머니는 당신 힘을 덜게 되시어 늘 고마워 하셨다.
다른 동서들에겐 애 봐 주시랴
김장 해 주시랴 늘 쉴 새 없이 하셔야 했으니 그러실 만도 하다.
이젠
시댁엘 가도 별 불편을 못 느끼겠다.
기세등등하셔서 꼭 한두가지 트집을 잡으시어
행사 때마다 온 가족을 불편하게 하시던 시아버님도
한 풀 꺾이시니 평화로운 분위기가 흐르게 되었고
할머니 노릇하시기에 바쁘신 시어머니도 예전 같지 않으시다.
문득
아 저 분들도 이젠 늙으셨구나 하는 느낌이 드니
괜히 콧등이 찡해 진다.
우리 친정부모님이 이젠 모두 안 계시니 더 그러는 건지...
괜히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파 온다.
정말 살아계시는 동안 잘 해 드려야 할텐데
사는 게 뭔지 별 실속도 없이 늘 바쁘기만 하다.
그렇게 가기 싫기만 하던 시댁이
이젠 별 일은 없으신지 건강은 좋으신지 염려가 되니
나도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이다.
젊은 날의 옹졸함이 이젠 ''''여유''''로 뒤바뀐 건가...
효성이 지극한 아들넘을 보면서 새삼 ''''부전자전''''임을 깨닫는다.
정말 ''''세월이 약''''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