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전하는 걸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면허증이야 갖고는 싶었지만 필요성을 못 느껴 적극적으로 서두르질 않았다. 그런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남편은 운전학원에 등록을 해 버렸다. 결국 나는 남편의 반강요에 의해 운전을 하게 되었다.
면허를 취득한 후 그는 교묘하게 운전하기 싫어하는 걸 잘도 이용했다. 바가지 긁을 양으로 벼르고 있을 즈음이면 어찌 그리도 여우같이 눈치를 채는지 '운전 연수하자'며 불러 내는 그이때문에 운전 배우는 내내 스트레스만 더 쌓였다. 바가지도 못 긁고 하기 싫은 운전 하느라...
늘 바쁘게 사는지라 둘 다 차를 가져야 될 형편. 그저 운전만 할 줄 알 뿐 차에 관한한 다른 아무것도 못하는 나 때문에 남편은 세차 해다 주랴 기름 채워 주랴 늘 신경을 써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안되겠다 싶었는지 드라이브 나가는 길에 내게 운전대를 맡겼다. '이젠 당신이 기름도 넣고 다녀 봐' 주유소에 도착, 그는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가고 난 처음으로 주유를 해야는데 어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지라 밖에 서 있는 남편을 쳐다 봤다.
눈치를 챈 그가 '핸들 아래쪽 왼쪽 발 근처에 있어.' 대충 더듬다 보니 뭔가 손에 잡혔다. 의기양양하게 잡아당겼다. 뭐 별거 아니구만... 그리고 한껏 어깨를 젖혀 고개를 들고보니 남편의 표정이 어째 수상쩍다. 차 앞으로 다가 온 남편, '뭐하는 거야...'라며 본네트를 닫는 게 아닌가. 아니 그것이 워째 열렸다지...? 중얼거리며 또 왼쪽을 더듬거려 손에 잡히는 걸 잡아 당겼다. 웃음을 참느라 고개 돌리는 주유소 종업원, 인상이 좀 험악해 진 남편.
이번엔 트렁크가 열렸던가 보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기분 나쁘게 말했다. '도대체 8년 동안이나 차 타고 다니면서 기름 넣는 것도 신경을 안 쓰고 뭐 했어? 뭐에다 신경 쓰고 사는거야? 그러니까 살만 찌지.'
그러잖아도 민망스러워 입 다물려 했는데 가장 듣기 싫은 말로 내 신경을 건드렸다. (사실 난 별로 살 찐 편이 절대 아니다. 164센치의 키에 35,26,36.5의 체격이니 아줌마로서 마치 알맞은 몸매 아닌감.체중은 비밀...)
'뭐? 그러는 자긴 대체 뭐에다 신경 쓰고 살길래 삐쩍 마른 대추씨야?' 그 날 내내 퉁퉁 부은 얼굴로 다녔음은 물론이다.
워낙 깔끔하게 차를 쓰는 남편이라 내 차와는 늘 비교가 된다. 그의 차는 마치 호텔 복도를 연상케 하는데 내 차 속은 늘 난장판. 어쩌다 남편 차를 타는 날은 아들녀석도 신경을 쓴다. '너희들이 세차 한 번 해 주냐? 모래 털고 타라.' '차 속 어지럽히지 마라'라는 잔소리를 꼭 듣기 땜에.
그런데 내 차를 탈 때엔 쬐끄만 녀석이 꼭 쓰레기통을 만드니 부아가 더 치민다.
기분 좋게 새 차로 가져 오던 날. 점심때 모임이 있어 나갔다가 내 사무실에서 차 한 잔 하자며 돌아 오는 길. 교문을 들어오려는데 언제 왔는지 일행 차가 운동장에 서 있다. 넘 신기하여 '어디로 해서 온 거야?' 소리 치며 핸들을 꺾었는데 세상에... 갑자기 들리는 둔탁한 소음. 투툭! 투드드드드ㅡ득 십년 넘게 드나들던 교문 담 모서리에 조수석쪽이 난리가 난 모양. 급히 들어오려고 서두르다 미처 멈추질 못하고 계속 엑셀레이터를 밟고 말았다.
깜짝 놀라 직원들이 뛰어 나오고 '이걸 어째...'외마디 소리들. 내려서 보니 오른쪽 문짝 두개 가 모두 어긋나고 깨지고 투톤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눈 앞이 캄캄했다. 남편이 잘 아는 정비소는 갈 수가 없어 직원에게 빨리 알아 보라고 했다. 돈이 많이 들더라도 퇴근 전에 감쪽 같이 원상복구를 해 줄 수 있는 곳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퇴근전까지 꼭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 줘야 한다는 조건으로 부랴부랴 차를 맡겼다. '남편이 차에 대해 도사이니 절대 표 안 나게 해 줘요.' 투톤 부분은 새 것으로 교체하고 열처리에 들어갔다.
퇴근 무렵이면 늘 전화를 하는 남편인지라 마음이 더 급했다. 내 맘을 알리 없는 정비소 직원들은 내가 하도 닥달을 해서인지 여럿이서 한꺼번에 내 차를 붙들고 일을 하면서도 별 이상한 여자 다 있단 표정이다.
다행히 남편이 회식이 있어 좀 늦을 거 같다고 전화가 왔다. '으응~. 천천히 조심해서 와~' 침착한 척 하느라 콧소리를 섞어 응답했다. 휴우~ 다행이야. 시간을 벌었으니...
음료수와 함께 웃돈을 얹어 뇌물을 주고 무사히 차를 찾아 오는데 그 시간이 어찌 그다지도 길던지... 돈이 좀 많이 들었는데에도 그 당시엔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좌우상하 삥 둘러 보고 직원들에게 표시 나나 안 나나 살펴보라고 했다. '우린 잘 모르겠는데 워낙 꼼꼼하신 분이라 어쩌실지 모르겠네요...' 불안한 여운을 남긴다.
며칠 후, 휴일 날. 세차를 하자는 남편을 만류했지만 더러운 꼴을 못 보는 지라 괜히 더 말리다간 꼬리가 잡힐지 몰라 마지못해 세차를 했다. 차를 세워 두고 심사(?)를 하던 남편. 갑자기 오른쪽 조수석 옆에서 발을 멈춘다. 뜨끔했다. 가슴은 갑자기 콩당콩당...
'여기 이음새 부분이 왜 뜨는 거 같네?' 소스라치게 놀랬다. 그 때 정비소에서 무슨 나산가가 부러졌는데 맞는 게 뭐 없대던가 뭐라 했었는데... '설마 새 차인데 무슨 이상 있을라구... 자기가 너무 민감해서 그래. 우리 바람 쐬러나 가자 으응~.'
잽싸게 그의 팔을 나꿔채서 끌고 왼쪽으로 왔다. 자꾸만 그 쪽에 미련을 두는 그의 고개를 돌려 '나 회 먹고 싶어. 회 좀 사 주라 으응~'
물론 그 순간을 무사히 넘겼다.
그는 아직까지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차 팔 적에야 뭐 들통 난들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별 일이야 있을라구... 그런데 왜 그 수리비가 이제야 이다지도 아깝단 생각이 드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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