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놈은 나이가 양반''이라 했던가...
사노라면 어찌 그리도 많은 실수를 하게 되는 건지,
그게 실수란 걸 깨닫기까지엔 또 얼마의 세월을 보내야되는 건지...
세 치 혀 끝으로 상대방의 가슴에 못 박는 짓은 하지 말아야할텐데
그걸 또 알아채기까지엔 얼마간의 시간을 흘려 보내야만 한다.
늙으면 병 들고 추한 꼴만 보인다며
''에구~ 어서 죽어야 할텐데...''
''네 고생 더 시키기 전에 얼른 가야 할텐데...''
입버릇처럼 푸념을 하시던 친정어머니께 난 듣기 싫어 늘 툭 쏘아 붙이곤 했었다.
어떤 날은 다리가 쑤신다
또 다른 날은 잇몸이 아프다,
온 삭신이 안 아픈 곳 없이 다 아프다고 하소연하시던 어머니께
인상 찌푸리며 툴툴거렸던 자신이
이제 와 이렇게 후회스러울 줄이야...
엄마는 항상 내 곁에 계실 줄만 알았다.
그토록 강인하게 버텨 오신 무쇠같으신 우리 엄마.
그래서 겨울 끝자락에 감기에 걸리셨을 적에도
걱정은 커녕 매일 엄마 가슴에 상처를 드리고 말았으니
이제 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이미 땅 속에 묻히신 엄마가
내 이 아픈 가슴을,
후회하며 용서를 구하는 내 심정을 어찌 아실 것이며
당신 곁에 엎드려 통곡한들 내 잘못이 어찌 다 지워질 것인가...
왜 맨날 그렇게 아프기만 하느냐고
제발 좀 아프단 얘기 좀 고만하라고 툭툭 쏘아 댔던 못된 딸.
쇠로 만든 기계도 오래 쓰면 고장이 나고
고쳐서 쓰고 또 고치다 보면 결국엔 못 쓰게 되는 것을,
하물며 기계가 아닌 인간인 다음에야 무슨 설명이 필요 하랴...
몸살로 온몸이 다 아파 앓아 누워 있는 내게
애늙은이 같은 둘째녀석이 위하는 척 다가와 말을 붙인다.
"엄마, 많이 아파?"
"으응..."
"엄마.
외할머니한테 미안한 생각 안 들어?"
"???"
"엄만 지금 외할머니랑 똑 같은 증세로 아프잖아...
할머니한테 화 냈던 거 미안하지 않아?"
저런 쓱을 넘...
그러잖아도 내 엄마 생각에 가슴 아픈 내게
아예 칼날을 대는구만...
그렇겠지.
다음엔 내 차례겠지.
그렇게 간단한 세상 이치를 어리석게도 어쩌면 그리도 망각하고 살았을까...
팔순이 넘으신 늙고 병 드신 초라한 내 어머니.
설령 예고없이 가신다 해도 별 충격 없을 줄 알았을까...
아니,
내 엄마는 그렇게 쉽사리 돌아가시지 않을 거라고 방심하고 있었던가도 모른다.
생과 사라는 것이 이렇게 생판 다른 길임을 꿈엔들 생각이나 해 봤던가...
엄마는 늘 내 곁에 계실 줄만 알았는데,
''죽음''이란 것이
이렇게 한 순간에 갑자기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을 의미한단 걸 왜 미처 몰랐을까.
내 마음대로 꿈속에서라도 만나 뵐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까지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진을 부둥켜 안고 통곡을 하며
꿈에라도 와 주시라고 간곡히 염원을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알기 까지엔
내 가슴이 군데군데 숭숭 구멍이 모두 나 버린 다음에서야였다.
이렇게 가슴 아플 줄 알았더라면
엄마한테 그토록 쌀쌀맞게 대하는 게 아니었다.
이토록 엄마가 그리울 줄 알았더라면
좀 더 많은 시간을 엄마를 위해 할애해야 했다.
속으론 화가 나도 꾹꾹 눌러 참고 헤헤거리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렇게 엄마께 웃어보여드려야 했다.
엄마 안 계시면 난 살 수 없다고 좀 더 애걸복걸 했었더라면
자식 밖에 모르시던 우리 엄만 아마도 생명줄을 놓진 않으셨을 지도 모르지...
엄마한테 의지한 적 없었다고 자신있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엄마가 내게 의지하며 사신다고 생각해왔는데
내 짧은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난 금방 절실히 깨닫고야 말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해만 가는 엄마 생각,
불쑥불쑥
''이런 땐 엄마한테 물어보면 금방 알텐데..'' 하던 기억.
그토록 소중한 내 엄마를 보내고나서야
세 치 혀로 함부로 상처를 주는 일은 절대 하지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진다.
자식이니까 그냥 잊어버리셨을라나...
철딱서니 없는 딸년이 심하게 투정부린다고 그냥 넘기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