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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추억


BY 이쁜꽃향 2003-07-21

나 어릴 적엔

전기나 수도가 없는 곳에 살았다.

여름이면 농수로에 나가 멱 감는 아이들과

고무신으로 피래미를 잡는 아이들로

농사일에 분주한 어른들 만큼이나 바쁘게 뛰놀았다.

 

교통사고니 환경오염이니 염려해야할 일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온 천지가 아이들의 놀이 장소였다.

놀다가 목이 마르면

시원한 우물물 한 바가지면 그만이었고

그 물에 오이 냉채나 미숫가루를 타 먹으면

그 또한 별미였다.

 

한여름밤이면

낮 동안엔 보이지 않았던 모기떼들이 극성을 부렸다.

석유  냄새 비슷한 역한 향이 나던 모기약이 고작이었던 그 시절엔

마당에 잡풀들을 뜯어 모아 모깃불을 피우는 게

모기로부터 피하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마당 한 가운데에 모깃불을 피우시는 아버지 곁에서

돗자리를 깔고 누우면

어머니는 우리가 먹을 간식거리를 준비해 주셨다.

감자, 고구마, 참외, 수박...

그 모두가 우리 밭에서 재배한 것들이었다.

 

배도 부르고

매캐한 연기에 질식한 모기들이 모두 달아날 즈음이면

우리는 하늘의 별들을 세다가 꿈길로 들기 일쑤였다.

졸음을 쫒느라 안간힘을 쓰는 우리들의 머리맡엔

늘 부채질 해 주시던 어머니가 계셨다.

서로 엄마 가까이에 누우려고 작은 소란도 잠시,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노라면

짧은 여름밤은 깊어만 간다.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아마도 우리가 잠 든 한참 후까지도

어머니의 부채질은 계속되셨으리라.

때론 부채를 들지 않으신 반대 손으로

행여 모기가 붙어 있을까 봐

팔이며 다리를 슬슬 어루만져 주시던 거칠디 거치신 어머니의 손.

 

아침이면

어느새 방으로 옮겨져 잠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우리 엄마는 참 힘도 세시지...

어떻게 우릴 모두 마당에서 방으로 옮기셨을까...

어리둥절하던 기억들...

 

"엄마~

등 긁어 주세요"

졸음이 오면 늘 습관적으로 인혁이는 등을 긁어 달라고 한다.

나도 졸려 만사가 귀찮은데

아들넘의 독촉에 할 수 없이 등을 어루만져 준다.

"에이~

할머니 손으로 긁어주시면 시원했는데..."

내 손놀림이 시원찮다고 투정이다.

그래.

우리 엄마 손은 하도 거칠어서

까칠까칠하여 가려운 곳을 긁어주시면 안성마춤이셨다.

아마도 녀석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생각하고 있나 보다.

 

당신도 온종일 밖에서 농사일 하시느라 고단하셨을텐데

밤새 자식들 모두에게 부채질로 모기를 쫓아주시느라

얼마나 더 피곤하셨을까...

정말

어머니의 사랑은 끝이 없나보다.

부채 대신 선풍기와 에어컨이 시원한 바람을 주고

방충망이 있어 모기라곤 구경할 수가 없는 요즈음

내 어머니가 한없이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