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280

1943년 여름, 중국 봉천


BY Hellena 2003-07-18

 

안녕하세요?

아줌마닷컴에 가끔 을을 올리는 젊은(?) 아줌마입니다.

제 할머니와 어머니, 이모님들께 들었던 가족사를 글로 구성해봤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약간의 제 상상을 동원하였습니다.

부족하고 모자란 풋내기 아줌마가 쓰는 글이지만 읽으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43년 여름, 중국 봉천.


그 해 여름은 무지 덥고 길었다.

봉천의 작은 조선족 마을은 일제 말기의 혼란을 틈 탄 아편밀수꾼들의 작은 안식처였다.

김회룡도 그런 밀수꾼 중 한사람이었다.


왕래하는 사람들도 하나 둘 느린 걸음을 옮기고 있는 길고 무더운 어느 여름날.

인적이 드문 어떤 작은 술집에서 약간의 실랑이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격다짐을 하는 듯 한 어떤 중년남자의 호통소리와 그에 응수하는 어떤 젊은 여자의 애원.

중년남자는 억 하고 큰 소리로 뭐라고 내뱉더니 안에서 문을 있는 힘껏 발로 밀어 제꼈다.


김회룡은 봉천의 어떤 작은 술집 방에서 무언가 가슴에 움켜쥐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가 밖으로 나오자 그의 뒤로 어떤 젊은 여인이 늘어지듯 달라붙었다.

김회룡은 그 여자를 내치며 가슴에 안은 무언가를 더욱 움켜쥐었다. 그것은 이내 앙 하는 어린아이의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안 돼요!”

“이것 놔 이년아!”


김회룡은 늘어지는 여인을 내팽개치듯 떼어놓고 핏덩이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문을 나서자마자 그는 품 안에서 무언가 절그렁거리는 주머니를 꺼내더니 방바닥에 확 내동댕이쳤다.

이를 지켜 본 술집 작부들이 그를 말리려고 했지만 그를 말리는 팔엔 아무 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김회룡은 성난 야수처럼 씩씩거리며 그들을 밀쳐냈다. 그가 밀치자 뒤로 얼른 물러나는 작부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서는 김회룡.

그의 뒤에서 오열하는 젊은 여인.


그 여인은 이곳 봉천의 작은 술집에서 작부로 일하던 탄실이였다.

열아홉 살짜리 탄실과 사십도 넘는 김회룡의 인연은....... 몇 년 전 김회룡이 봉천과 평양을 오가며 밀수품을 전달하던 중 이곳 작은 술집에 들르면서 시작되었다.


김회룡은 봉천과 평양을 오가던 거물급 밀수꾼이었다. 그는 사업차 중국에 오면 이곳을 반드시 찾았다. 그러면서 안면이 익은 밀수꾼들은 서로 정보도 주고받고 새로운 껀수를 찾기 위한 대화를 나누는....... 봉천은 당시 밀수꾼들의 집합소였다.

김회룡에겐 평양에 처자가 있었다. 본처 말고도 첩을 두어명 거느린 거물급 밀수꾼인 김회룡. 그는 봉천에 올 때마다 탄실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탄실은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았다.

하지만 탄실을 첩으로 들일 생각조차 없었던 김회룡은 탄실의 임신사실을 부인하려고 했다. 누구의 씨앗이냐 윽박지르고 돈으로 회유하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탄실은 뱃속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김회룡은 그 날 이후 한번도 탄실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탄실과의 모든 일을 지워버리려고 했다.


그가 오지 않는 이곳 작은 술집에서 탄실의 배가 점점 불러오자 이 소식은 곧 두만강을 넘어 평양으로 내려왔다.

그러던 1943년 여름....... 드디어 탄실은 여자 아기를 출산하였다. 그리고 이 소식은 다른 밀수꾼들을 통해 김회룡의 귀에 쉽게 들어가고 말았다.


김회룡은 탄실이 언제고 아이를 앞세워 자신의 발목을 잡을 것이 귀찮았다. 그래서 그는 몇 달 만에 봉천 그 작은 술집을 또 찾았다. 그래서 생떼 같은 아이를 어머니의 품에서 빼앗아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김회룡의 품 안에서 울어 제끼는 그 작은 핏덩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그 여자아이....... 그 아이는 무책임한 밀수꾼 아버지와 술집작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백일도 되기 전에 생모와 떨어져야 하는 기막힌 생이별을 당해야만 했다.

아무 힘도 없는 그 아이는 이런 선택에 대항할 어떤 능력도 없었다. 오로지 부모를 잘못 만난 것이 죄라면 죄였을 뿐.

그 아이의 일생은 그때부터 얼룩지기 시작했다.






1943년, 평양 여름.


평양의 여름도 무척 덥고 길었다.

김회룡은 강보에 싸인 작은 핏덩이를 안고 어느 기와집으로 오고 있었다. 아이는 계속 울고 있었다. 하지만 김회룡은 아이를 어를 생각은 안 하고 그저 아이의 울음소리에 짜증만 잔뜩 내고 있었다.


이윽고 목적지에 다다른 김회룡은 문을 쿵쿵 두드렸다.

안에서 하녀로 보이는 젊은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누구십네까?”

“내레 김사장이라우.”


문이 열렸다. 하녀는 김회룡을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오랜만이심네다!”


그런데..... 그의 품에 안긴 아이에게 시선이 고정되는 하녀. 그러나 김회룡은 애써 무시하며 안으로 들어설 뿐이다.

어안이 벙벙한 하녀는 김회룡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다...... 방안으로 한마디 던졌다.


“아씨, 사장님이십네다.”


안에서 책을 보던 어떤 젊은 여인.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가 한눈에 기생이라는 걸 알 수 있겠다. 그녀는 하녀의 목소리에 가슴이 덜컥하고 내려앉았다. 그녀는 약간의 한숨을 쉬며 보던 책을 덮었다. 그리고 말했다.


“모셔라.”


그녀는 한 때 평양에서 알아주던 기생, 명창 임운향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속일 수 없는 법.

아름답고 재간둥이였던 그녀도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몸이 쇠약해졌다. 더 이상 노래를 부를 힘도 없어지던 무렵 기방을 자주 찾던 김회룡을 만났고...... 그의 첩으로 들어앉은 지 이미 오래였다.


김회룡의 첩이 된 후 그녀는 평양의 한 모퉁이에서 역시 기생인 동생과 노모, 그리고 하녀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병약했던 그녀에게선 아이가 태어나질 않았다. 그것이 어쩌면 더 잘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녀가 김회룡의 첩이 된 건 그저 살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 김회룡과의 인연을 더욱 연장시키고 싶지 않았던 그녀였다.

그런데 임운향의 집에 김회룡이 아이를 안고 나타났다.


김회룡은 안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아이를 내려놓고 두 다리 쭉 뻗고 누워 물을 찾았다.

한쪽에 물건처럼 떠밀려진 아이. 그리고 그 아이의 울음소리에 짜증난 듯 손으로 귀를 틀어막는 김회룡.


임운향은 물 한 사발을 김회룡에게 주면서 아이를 애잔하게 쳐다보았다.

강보에 싸여서 울어 제끼는 그 아이. 운향은 그 아이의 일생도 내 일생만큼 가시밭길이 되리란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녀는 아이에게 팔을 뻗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안았다.


“임자, 내레 임자가 아이를 보고 싶어 한다는 걸 안다우. 형편이 이렇게 됐으네 자네가 좀 키워줬으문 좋겠으이. 먹고 사는 건 걱정 말라우. 내레 다 알아서 해 줄끼네.”


김회룡은 그 어떤 책임감도 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운향을 항해 말을 했다.

자기 자식을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은 첩의 집에 물건 떠넘기듯 던지는 이 남자.

본처에게 들이밀지 못하고 첩에게 들이밀면서도 명령조로 말하는 이 남자.

이 아이의 일생, 앞으로 펼쳐질 이 아이의 일생을 과연 어떻게 추측할 수 있겠는가.

운향은 온 몸의 힘이 쑥 빠지며  측은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김회룡은 물을 입 안에 벌컥 들어붓듯 마신 뒤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리고 피곤한 듯 드르렁거리며 잠에 빠졌다. 그건 안도감에 빠진 단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