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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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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송별회


BY 今風泉 2003-08-06

청소하는 아줌마가 가장 마음이 언짢아보였다. 채 과장이 본사로 전보발령을 받아 송별회가 열리는 자리에 모두들 아쉬운 기색을 보였지만 특히 청소아줌마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을 모두다 알 수 있었다.

"아줌마, 술 한잔!"

채 과장이 술잔을 불쑥 내밀었다. 금새 눈물이라도 나올것 같은 아줌마가 머리를 읍조리고 잔을 받는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아줌마..건강하시고 서울오면 한번 전화 주세요"

빈말인지 진심인지 채과장도 아쉽다는 표정이다. 하기야 그럴만도 하겠지
채과장이 승진 발령을 받고 대전지사로 온것은 2년전의 일이다. 서울에 집을 두고 있어 회사 근처에 방을 얻어 생활하다보니 청소아줌마 이여사가 청소나 빨래 같은걸 도맡아 해주다시피 했다. 항간에는 무슨일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돌았지만 채과장의 인격으로 봐서 그럴리는 없다는 견해도 많았다.

"저도 한잔 올릴께요.."

이여사가 받은 잔을 채부장에게 올린다. 거칠어진 손에 얼굴은 그을려 까무잡잡하고 누가봐도 예쁜데는 별로 없는 근실한 여자이다.

"야, 이여사 봐. 큰일 났네..채부장을 얼마나 좋아 했는데.."
"글쎄 말야, 아들하나 군대 보내고 혼자 살다보니까 맘둘데 있겠어..."
"근데, 채부장하고 저녁도 같이 먹고 드라이브도 했다던데.."
"그래, 남녀 관계란 모르지..."
"그려, 아줌마가 너무 좋아하고 채부장은 혼자 지내니까.."

뒷구석의 말쟁이들이 수근거리는데 이러다 보니 오늘 송별회의 하일라이트는 이여사와 채부장의 관계에 쏠리게 되었다.

"자, 그동안 여러 직원분들의 사랑덕분으로 대과 없이 임무를 마치고 본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게 베풀어진 추억들이 너무 많아요. 일일이 다 말씀드릴수는 없지만 특히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이여사님의 따스한 사랑을 잊지 못할겁니다. 홀애비아닌 홀애비 생활을 하면서 살다보니 신세를 너무 많이졌어요. 한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제가 떠나더라도 아줌마를 더욱 잘 도와 드렸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

채부장이 인사말중에 아줌마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짚어서 부탁을 한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줌마가 결국 눈물을 떨구고 마는 모양이었다.

"참으세요, 아줌마 채부장님 본사로 가는 좋은 자린데.."
"그래요, 서운하시죠 정들었나봐 호호"

옆에 앉아 있던 여직원들이 아줌마를 달랜다. 아줌마가 정색을 하고 자세를 고치려 하지만 얼굴이 치료 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송별회도 파장이고 더러는 자리를 뜨고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자, 2차는 노래방 입니다. 요 앞에 아마츄어 노래방으로 가세요!"

총무팀장이 사람들을 채근하고 모두들 소지품을 챙기며 한편으로는 핸드폰질을 하면서 문을 나선다.

이여사도 여직원들과 얼려 노래방으로 들어간다. 안내된 방이 널직하다. 하기야 회식때마다 자주 이용하던 곳이라 배려가 극진할 수 밖에..

성질 급한 최대리가 마이크를 잡자마자 18번을 뽑는데 이친구 하는 노래는 늘 김수철의 젊은 그대다
돌아가면서 번호를 눌러대고 첫번째 나오는 건 18번이고 그다음에 나오는건 그사람의 취향을 말하고 또 다음에 나오는 건 그사람의 가슴속에 숨은 것을 말한다던데...

"채부장님 노래네요"

채부장의 노래가 시작 되었다. 채부장의 18번은 돌아와요 부산항인데 오늘은 그게 아니다. 모두들 고개를 갸유뚱 했다. 채부장의 오늘 노래는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가 아닌가..

"누굴 사랑한다는 거야.."
"글쎄.."
"이여사는 뭐 부를까?"
"들어 보자구.."

이윽고 이여사 즉, 청소 아줌마의 차레가 왔다. 그녀의 노래는 "만남"이었다

"분위기 되네.."
"그려, 그랬구먼.."
"그렇지 날마다 방정리 해주고 청소해주고..또.."

뒤에서 귀에다 소근거리며 좋아하는 직원들은 재미 있고 흥미 있는 표정들이었다.
몇곡씩의 노래가 돌고 밤이 깊어졌다. 아니 11시쯤 되었다.
분위기가 파장으로 가고 모두들 어깨를 감싸고 작별의 노래를 부르고 그동안 고마웠다 아쉬운 말과 덕담으로 끝이 나려는 시간이다.

"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자 이제 끝내시지요. 저도 내일 아침 일찍 올라가야 하니까..
이정도로 저는 만족합니다. 다음에 제가 시간을 내서 여러분을 한번 모시겠습니다."

채부장의 말이 빈말인지 진심인지는 모르지만 채부장 역시 놀이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여기서 마치자는 것이고 그게 서로에게 부담이 안가며 자신의 지금까지의 관리가 잘 마무리 된다는 판단인것 같았다.

서서히 노래방을 빠져 나왔다. 대리운전을 부르는 사람도 있고 택시를 잡아 타는 사람도 있다.

"부장님, 이제..?"
"응, 나 난 몇발짝 안되니까 걸러갈께..여러분들 다 가는거 보고..어서들 가라고"
"그럴께요. 그럼 부장님 잘가세요..."
"부장님..승진해서 다시 오세요.."
"알았어. 고마워.."

사라지는 모두를 배웅하며 채부장은 홀로 서 있었다.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하다. 얼마만에 쳐다보는 하늘인가.
더우기 별을 본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은단을 찾았다. 그리고 숙소를 향해 걸어 갔다.

"오늘이면 이 곳의 생활은 끝이구나.."

은단향이 촉촉하다. 터벅터벅 걸어가며 거리를 보니 유흥가 쪽은 이제 장사가 시작되려는지 불빛 속으로 살을 내놓은 여자들이 우왕좌왕 한다.
헤어져 살던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 이제 좀더 잘 해줘야지.."

술기운이 약간 올라온다. 조금 걸으니 2년동안 기거하던 숙소의 문이 보인다. 키를 주머니 속에서 꺼낸다.
이제 이 키를 쓸 필요가 없겠지..늘 마지막이란건 슬픈거고 아쉬운 것...
채부장은 키를 꽂았다. 오른쪽으로 키를 돌렸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문이 너무 쉽게 열렸다.

"부장님!"

문을 열자 그앞에 서있는건 아줌마가 아닌가..

"아니, 아줌마 안갔어요?"
"예, 못갔어요. 죄송해요..흑흑"
"지금 울고 계세요.?"
"죄송해요 부장님.."

채부장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채부장은 잠시 생각 했다. 그리고 쇼파에 가서 털썩 앉았다.

"앉으세요. 미안해요 아줌마!"
"..."
"이리 오세요..."

이여사가 채부장 옆에 다소곳이 앉는다.

"외로우신가봐요.."

이여사가 머리를 끄덕였다.

"저도, 아줌마 좋아했어요..그렇지만 제 욕심만 채울수는 없잖아요..."
"미안해요 부장님...그냥 가시면 너무 제 마음이 아플것 같아서.."
"알아요...저도 아줌마 많이 생각 했어요. 혼자 자면서 보고 싶기도 했고요..그러나 전 아줌마를 어떻게 하기에는..."

채부장은 아줌마를 살며시 가슴에 안았다. 아줌마의 숨소리가 거칠다. 남편과의 사별후 아이하나 키우며 살아온 날들속에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자신에게 늘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던 채부장의 품에 한번이라도 안겨보는게 소원이었는데 그게 지금 현실로 다가온 것이기에 감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줌마, 오늘 여기서 자고 가세요..."
"네?"
"저하고 ."
"네?"
"한번쯤은 어떻겠어요..아줌마가 이렇게 저를 좋아하고 제가 아줌마를 생각 했었다는게 사랑 아닐까요.."

이여사는 아무말이 없었다. 그리고 살며시 일어나 주방쪽으로 걸어 간다.

"차 한잔 드릴까요?"
"네, 고기 먹었더니 커피로 주세요.."
"커피 드시면 잠 안오실텐데.."
"잠 안오면 어때요. 밤새 얘기나 하죠 뭐."

금새 커피물이 끓나보다. 김이 모락거리다가 퐁퐁거리고 커피타는 이여사의 히프에 흥분이 붙어 있는데..
채부장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앞에서 내가 어찌 득죄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