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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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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야기 (웃겨주세요)


BY 선물 2010-07-31

다음 질문에 O, X 해 보세요.

 

<암환자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암이다.>

 

정답은 X 랍니다.

 

암환자의 대부분은 우울증과 식욕부진 등으로 인한 영양실조로 인해 죽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심리적인 영향이 크다는 의미이겠지요.

역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암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요.

 

친정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은 것이 6개월 전쯤 됩니다.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의사선생님은 말했지요.

아버지 몸 상태가 치료를 받을 수 없을 만큼 쇠약해서 희망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그러나 치료를 받지 않으면 고작해야 2,3 개월 정도라는 말에 우리는 무조건 항암치료를 원했습니다.

처음 항암치료를 받을 때는 혈소판 수치 등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몹시 안 좋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몸을 뒤집거나 움직이는 것조차 극심한 통증으로 힘들어하셨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억지로라도 드실 것을 생각해 내시고 한 술이라도 섭취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저는 사실 수치로 나타난 통계에 근거해서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웠기에 매일 같이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면서 아버지와의 영영 이별을 두려워하고 있었답니다.

그 시간이 도둑처럼 닥쳐 올까봐 쩔쩔매며 나름대로 아버지를 위해 생각했던 것이 종부성사였습니다.

(종부성사는 임종이 다가온 환자에게 신부님이 마지막으로 주시는 성사로 가톨릭 교회의 칠성사 중의 하나입니다.)

종부 성사는 가톨릭 신자가 임종 전에 반드시 받아야 하는 성사이지만 그 성사를 받으면 정말로 죽음이 임박한 것 같아서 대부분 께름칙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그런 이유로 차마 그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습니다.

부족한 신앙이긴 하지만 그 믿음 안에서 살아가기에 용기를 내어야 했습니다.

엄마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종부성사 보고도 멀쩡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종부성사 본다고 죽는 것도 아니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그저 준비하는 마음으로 받기를 권해드렸으면 좋겠다.

 

엄마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고 아직은 그런 말씀 드릴 시기가 아닌 것 같다고 대답하셨지요.

 

그러던 중 입원실에서 뵌 아버지의 얼굴이 한결 환해 보이는 날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저를 부르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아침에 종부성사도 보시고 유언장도 다 작성하셨다고 했습니다.

눈물이 주루룩 흘렀습니다.

수저 드실 힘도 없으신 분이 글씨도 얼마나 반듯반듯하게 유언장을 적으셨는지요.

아버지는 이제 성사도 보고 유언장작성도 마치고 했으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며 힘없이 웃으셨습니다.

 

저는 일주일 간격으로 아버지를 찾아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고맙게도 아버지는 저희들에게 한번이라도 더 웃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셨습니다.

그리고 더 고맙게도 아버지의 몸이 항암치료를 너무도 잘 받아들여 조금씩 기운을 차려가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다들 암에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연구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것들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무조건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만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수제비(이것은 꼭 E아파트 수제비라야만 한답니다.^^), 아귀찜, 충무김밥, 본죽, 족발, 돈까스 등이 그 무렵 아버지께 헌납되던 음식들입니다.

처음에는 조금씩 밖에 못 드시던 양이 점차 늘어나면서 종류도 다양해지기 시작했지요.

저는 웃음이 좋다는 정보를 접하고 아버지를 뵐 때마다 웃겨 드릴만한 이야기가 없나 생각했습니다.

그 무렵 아컴에서 시냇물님이 올리신 웃긴 리플들이라는 글을 우연히 접했습니다.

일단 제가 엄청 웃었습니다.

그 무렵 웃음이 거의 사라졌던 저였는데 그 글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그런 절 웃길 만큼 재미있었습니다.

옳거니, 이거다 하고 여러 가지를 외워서 아버지께 갔습니다.

그런데 외운 것을 다 잊어버리고 겨우 생각해 낸 것이 4가지 이야기였습니다.

육갑잔치, 산달을 만기라고 한 것, 통장재발행을 재개발이라고 한 것, 그리고 곰보빵 아저씨 이야기였습니다.(궁금하신 분은 다시 찾아서 읽어보셔요. 다시 봐도 재미있어요.)

 

제 이야기를 들으시던 아버지, 그렇게 눈물까지 흘리시며 웃는 모습은 근래 처음이었습니다.

특히 임산부 산달이야기에서는 속된 말로 뒤집어지셨습니다.

그 모습을 뵈면서 제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짐작하시겠지요.

 

아버지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받아들이려는 자세였고 의사선생님을 하늘로 알고 따르며 남은 시간 더 많이 사랑하려고 애쓰며 살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에도 그토록 활짝 웃으실 수 있으신 거구요.

 

웃음전도사라는 분께 들었던 이야기인데요.

웃음이 우리 몸에 주는 선물이 정말 엄청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웃음이 생각보다 잘 터지질 않지요.

그러면 억지로라도 웃거나 아니면 하하호호 소리 만으로라도 웃으라고 합니다.

우리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어리석답니다.

한 예로, 지금 눈앞에 신 오렌지 하나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껍질을 벗깁니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뭅니다.

오렌지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입에서는 벌써 침이 분비되고 있을 거예요.

아닌 분들은 좀 둔하신 분일듯^^

 

그러니까 실제 상황이 아닌 생각만으로도 우리 몸은 반응한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억지로라도 웃거나 소리로라도 웃으면 몸은 아하, 지금 웃는구나 하고 웃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을 마구 분출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께도 그 말씀을 드리면서 억지로라도 하하하 웃으시라고 권해드렸습니다.

아버지는 그냥 네가 오면 웃게 된다. 하셨어요.

그런데 죄송하게도 최근에는 처음처럼 자주 뵙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아버지를 많이 웃겨드려야 하는데 좀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와 관련된 글을 종종 올리게 될 것 같은데 부디 오래오래 올릴 수 있도록 말이지요.

 

지금 아버지는 방사선 치료 중이십니다.

처음, 의사선생님이 아버지 상태가 좋아지셔야 받을 수 있다고 들었던 치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