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불안했다.
원인도 몰랐다.
찾고 또 찾으면 불안의 근원을 찾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찾지 않았다.
그것과 맞닥뜨렸을 때의 고통이 두려운 까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굳이 찾지 않아도 알아지는 것들이 있는 법.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능력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라 진단했다.
가끔 생각한다.
내 한 몸 움직여서 여섯 식구가 잘 먹진 못해도 삼시 세끼 거르지 않고 죽이든 밥이든 먹고 살며
그럭저럭 깨끗이 입고 다니고 하는 것이 참 신통한 일이라고.
누구나 다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난 그게 신통했다.
하지만 육신만 부지런히 움직여서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실상 내 몸뚱이 하나 제대로 건사하고 남에게 해 입히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건만
난 결혼이란 의식과 함께 너무 많은 관계들을 맺고 그에 따른 역할을 맡게 되고 말았다.
아내도 힘들고 며느리도 힘들고 아,,,게다가 엄마란 자리까지.
누구나 자신이 가진 능력이 있는 법.
내겐 맡겨진 역할 하나하나가 내 능력을 뛰어 넘어서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자꾸 혼자이고 싶어했다.
다 초월하고 나 하나만 건사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말도 안되는 투정일망정 난 그런 투정으로 잠시라도 나를 자유롭게 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저 컸을까.
부모님을 비롯한 나를 둘러싼 여러 인연들의 힘으로 나도 살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그분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키워낸 것인가.
딱 하나는 안다.
훌륭한 존재는 아니지만 남에게 해 입히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
어떻게 그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마는 그 정도만으로 난 만족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도 부디 남에게 피해를주지 않고 더불어 잘 살아가는 존재들이기를 바란다.
너무도 소박한 소망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보니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산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더라.
나의 사소한 짜증 하나로 다른 사람의 맘을 무겁게 하거나 다치게 하는 일들도 숱하게 많은 법.
나도 그런 류의 피해는 항상! 늘 당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사람들은 왜 남을 배려하지 않는가.
관계 구도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의 자리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행하는 정신적 폭력들.
그것을 받아 들이고 감당해야 할 사람들의 고통은 참 알기 어려운가 보다.
그러니 그렇게 쉽게 사람을 다치게 만들지.
아, 글을 쓰다보니 나도 모르겠다.
나는 남에게 해 입히지 않는 존재라고 큰소리 친 것이 편치가 않다.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나를 좀 자유롭게 해 주어야겠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우울증의 증상이기도 하다는데.
타고 난 능력 이상 하려고 애쓰지 말아야겠다.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 너무 아둥바둥거리며 살았다.
2009년 3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