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어머님께는 며느리가 악쓰는 소리였다.
내가 귀 막고 아아악 내지르는 모습을 또 다른 내가 안타깝게 보고 있었다.
그 소리는 어떠한 이성의 개입도 없이 완전히 본능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거침없었다.
이런 모습, 드라마에서나 보았을까, 상상 속에서도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건만 나는 저질렀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으리라.
일단 나는 후회하는 마음이 지금까지는 들지 않는다.
그날 그렇게 터뜨리지 않았다면 내가 돌아버렸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 상황을 생각하면 지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연세 많으신 어머님으로선 차마 겪어선 안 될 일을 당하신 것이고 그로 인해 사무치는 한을 품게 되셨다.
며느리로서 차마 해선 안 될 일을 저지른 나는 저 뜨거운 심장까지 차가워졌지만 한편으로는 슬픈 평화를 얻고 있었다.
나는 나를 안고 있었다.
토닥이며 위로하고 있었다.
애썼다, 수고 했다. 고생 많았다며 격려하고 있었다.
그 행동에 대해 잘했다 하는 맘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싸늘해진 심장은 나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만들었다.
그 심정으로 길고 긴 메일을 썼다.
수신자는 남편과 나를 맺어준, 그래서 어머님과 나를 고부관계로 만들어준 시누님이었다.
거짓 없이 적어 내려갔고 글 말미에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제 입장에서 쓴 것이니 모든 내용에 대한 어머님 입장도 꼭 들어보시고 판단하시라고 덧붙였다.
그 형님은 공정하신 분이다.
때문에 공정하게 판단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성은 공정하게 판단하겠지만 감정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엄마를 향하지 않겠는가.
그것을 기꺼이 감수하고 보내기를 눌렀을 때는 어쩌면 끝이라도 좋아 하는 맘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형님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형님은 공정하지도 못하신 듯 했다.
이건 아닌데 갸웃거려질 정도로 치우치게 나를 편드셨다.
어머님을 대신해서 사과하셨다.
완곡하긴 했지만 분명히 어머님의 흉까지 보셨다.
분명히 밝힐 것은 우리 형님들, 어머님을 향한 사랑은 더 이상의 표현이 필요 없을 만큼 절절하고 애틋하다는 것이다.
자식들을 위해 당신 모든 것을 바친 엄마니 당연한 마음이다.
그런 분이 어머님께 내 역성을 드시느라 옥신각신 하셨다.
다른 시누님들께도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다들 나를 다독이신다.
나는 차가운 채로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형님들이 이러시면 원하지 않아도 내 맘이 절로 노골노골해진다.
쩡 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맘이 되면 정신은 고요해지고 맑아져서 판단이 더 쉬워지는데 이렇게 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며칠을 얼음처럼 지내던 내가 드디어 어머님 방을 향했다.
사실 어떤 갈등이 있었어도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옆에 가서 마음을 풀어드리던 며느리였는데 이번에는 그럴 마음이 전혀 생겨나지 않았다.
내 마음이 원하는 소리를 잘 듣고 그대로 따라주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을 녹여버린 형님들.
나는 어머님께 가서 내가 했던 행동을 사과드렸다.
그러나 채 녹지 않은 맘이 있었던지 덧붙여 우리 고부 관계는 그만 하자는 말씀이 나왔다.
속으로나 할 수 있을 말이 또 이렇게 터져 나온 것이다.
어머님, 다른 자리에서는 선하시고 경우 바르신 분이며 마음 약하신 분인데 단 한자리, 시어머니 자리에서는 그렇지 못하십니다.
형님들과의 통화에서 치를 떠시며 죽을 때까지 내 행동을 잊지 않겠다, 이를 앙 무셨던 어머님.
내가 드린 말씀에 그래, 내가 안 그래야지 생각은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 쉽게 인정하신다.
며느리가 되어 차마 해선 안 될 행동을 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라는 말씀에 또 쉽게 나도 잘못했다 인정하신다.
저도 잘 자랐고 누구에게나 착하다 칭찬 듣던 사람인데 며느리가 되니 못된 사람이 되네요. 라는 말씀에 내 손까지 덥석 잡아주신다.
그러니 어머님, 우리 고부하지 말아요.
왜 멀쩡하게 착하게 살 사람들이 이렇게 서로를 죄짓게 만들고 본성대로 못살게 만들며 살아야 하나요.
어머님, 절 며느리로 보지 마시고 그냥 일하는 아줌마로 보세요. 저도 어머님 시어머니로 보면 미우니까 그냥 맘 좋은 할머니라 생각하면서 따뜻한 맘으로 보며 살게요.
우리 고부하지 말아요.
이 말들이 머리속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진짜 소리가 되어 마구 터져나갔다.
어머님, 그래도 넌 내 며느리다 하신다.
나는 지금 살아가는 것이 사실 여러 가지로 힘들고 벅차고 고단하다.
그런데 이런 수고가 좋은 결실도 맺지 못하고 오히려 미움을 갖게 하고 죄짓게 만들어 내 영혼까지 상처를 입힌다면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삶을 사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을 흔히들 십자가라고 표현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고 그로 인해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셨다.
십자가는 나를 구원으로 이끄는 길이 되어야 한다.
자식은 내게 십자가일 수 있다.
사랑으로 짊어지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님은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이 아니라 나를 죄로 이끄신다.
이유는 하나이다.
내가 어머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마찬가지, 나도 어머님을 죄 짓게 하는 사람이다.
가장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사랑을 갖지 못하니 삶이 불행하다.
그러나 사랑을 구하는 기도조차 진심으로 나오질 않는다.
사랑은 일단 접어두고 미움이라도 갖지 않는 것이 내가 우선 구할 바다.
형님은 어머님의 남은 여생을 당신이 모시고 싶어 하신다.
그러나 어머님께는 절, 대, 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나 또한 그렇게 싫어하시는 것을 하시게 하고픈 맘 정말 없다.
그것은 나에게 어떤 협상의 여지도 없는 나의 몫이다.
다만, 이 세상에서의 인연이 끝나는 그 시간이 오기 전에 적어도 두 사람 사이의 미움만이라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에게 평화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