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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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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선물


BY 선물 2006-10-23

나는 아무 말 없이 가만 앉아 있으면 비교적 조용해 보이는 모습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본 모습이 아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망가지면서도 남을 웃기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때문에 활동하는 것도 적극적이고 늘 외향적이란 말을 듣고 살았다.

놀 때도 화끈하게 잘 놀줄 알았고 때론 응원단장을 맡기도 했을 정도였다.

때문에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것이 장점이 되어 단체 활동을 할 때면 늘 앞서서 하게 되는 편이었다.  난 그렇게도 사람이 좋았다.

하지만, 현재 시점의 나는 조금 다르다.

물론 그런 성품 자체가 크게 변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처한 주변상황으로 인해 타고난 본성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동창들 모임에도 한참을 나가지 않았더니 언제부턴가 친구들이 연락조차 하질 않았다.

인간관계란 쌍방의 노력으로 이어지는 것이지, 아무리 돈독한 관계였다 할지라도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계속 될 수 없는 법이다.

물론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는 옛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극히 일부분이다.

후일 내게 시간이 허락되고 누군가가 애절히 그리워질 그 어느 때가 오면 분명 난 많이 외로운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며느리 중 바깥활동을 맘 편히 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난 잘 모른다.

하지만, 아마도 시어머님이 활동적인 분이라면 며느리도 그런 면에서는 많이 이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짐작된다.

나의 시어머님은 언제나 하는 표현처럼 붙박이 장롱 같은 분이시다.

여자가 라는 어절로 시작하는 어록도 꽤 될 듯싶다.

그 중 하나가 여자가 바깥으로 돌면 집안이 엉망이 된다는 지론이다.

물론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또한, 그것을 며느리에게만 국한시켜 강요하는 분은 아니기에 더 수긍하려 하는 편이다.

그런데 공감하면서도 때로 어쩔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르니 적응이 되고 지금의 갇힌 삶이 차라리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이다.


언제부턴가는 어머님이 드러내 놓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너에게 무슨 활동하라고 하면 넌 무조건 내 핑계를 대거라.

시어머님이 반대하세요, 라고 하면 다들 더 이상은 뭐라 하지 못할 게다.>

어쩌면 그런 핑계가 어머님 흉이 될 수도 있는데 그것을 무릅쓰고서라도 며느리 밖으로 도는 것이 싫으신 것이다.

그래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아무런 활동조차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어머님도 자식들로 인해 맺어진 관계들은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으신 대로 인정해 주셔야 했다.

그런 모임 중의 하나가 성당 복사 자모회이다.

아들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복사활동을 했으니 벌써 6년이 되었다.

자주 참석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성실하고자 노력하며 지낸 6년이었다.

물론 어머님은 그 활동조차도 아마 그리 탐탁해 하시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 성당 복사 자모회는 아이가 중 3이 되는 엄마들 중에서 자모회장을 뽑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 중2를 가진 엄마들 중 한명을 내년 자모회 회장으로 뽑아야 한다.

나를 포함하여 모두 다섯 명이 중2 엄마인데 안타깝게도 다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회장 직을 맡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택한 것이 제비뽑기였다.

누구나 어려운 사정이지만 그럼에도 하느님은 할만한 사람을 일꾼으로 정해주실 것이니 뽑힌 사람은 겸손하게 받아들이자는 약속을 하고 한 자리에 모였다.

그 자리에 나가면서 어머님께 부탁드렸다.

어머님은 늘 시부모님 모시고 큰살림 한다고 하면 그런 자리에 뽑히지 않는다고 믿고 계신 분이시라

<어머님, 기도해 주세요. 저 안 뽑히게요.>

그랬더니 어머님 살짝 화를 내신다.

<그런 기도드리면 혼난다. 별난 기도를 다한다고······.>

그래서 대충 얼버무렸다.

<아뇨, 제가 되는 것보다 다른 엄마가 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요.>


드디어 한 자리에 모였다.

일단 함께 식사를 했다. 난 긴장이 되어서 밥 한술도 편히 목구멍으로 들어가질 않았다.

솔직히 40여 명이나 되는 복사 단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자모회의 대표가 된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내 처지를 아는 하느님은 나를 이해해 주시고 뽑지 않으시리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가슴이 쿵쾅거렸다.

한 엄마가 준비해 온 종이를 펼쳐 놓았다.

한 장에만 복음 말씀을 적어 놓았는데 그것을 뽑은 사람이 자모회장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한 엄마가 이런 말을 꺼냈다.

모두들 하지 않겠다고 하면 자기가 어쩔 수 없이 네, 하겠습니다 하려는 유혹이 자꾸 생기는데 그게 하느님 뜻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할 만한 사람을 뽑아주실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는 말도 덧붙였다.

모두들 자기가 선택한 종이를 펼치는데 내 눈에도 종이에 적힌 글귀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르꼬 복음 9장 35절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창피하지만 눈물이 나려고 했다.

너무 부담스러웠다.

집에 가서 어머님께 뭐라고 말씀 드려야 하나 걱정뿐이었다.

다른 엄마들이 편안해보였다.  정말 부러웠다.

한편, 그 순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참 죄송스러웠다.

모두들 나의 그런 맘을 알았는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기도해주겠다는 고마운 말들을 해 주었다.

그런데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이상하게 평화가 느껴졌다.

설마 하느님이 날 미워서 그런 자리에 뽑아 주셨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도 신앙 속에서 탄탄히 뿌리 내리기를 소망하며 매일 미사를 다닌 지 두 달 쯤 되었는데 나를 이렇게 자꾸 교회로 인도해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감사의 마음이 생겼다. 부족하지만 성실히 해야겠다는 맘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엄마들에게 전했더니 다들 기뻐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어머님께 말씀드릴 일만 남았다.

조심스럽게 그 말씀을 전해 드리면서 낭패스럽다는 표정을 하였다.


그 순간

<은총이다.>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정말 뜻밖이었다.

내 귀를 의심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넌 그런 자리 맡으면 안된다 하셨던 분이시다.

그런데 할 수 없지, 쯧쯧도 아니고 은총이다 라니 세상에······.

<어머님, 감사합니다.>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그것 밖에 없었다.


어머님은 참으로 좋은 선물을 내게 선사하셨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조금씩 변함을 느낀다. 

어쩜 나도 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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