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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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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이의 이야기


BY 선물 2006-09-14

언제나 진솔한 강론으로 마음의 평화를 주셨던 신부님이 다른 본당으로 가시는 날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다행히도 오늘 미사에서 신부님을 뵐 수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신부님의 강론을 한 말씀도 놓치지 않고 들으려 애썼다.
신부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분한 음성으로 강론해주셨다.

지금 이 순간이 슬픈 시간인 이도 있고 기쁜 시간인 이도 있을 것이다.
또 지치고 고단한 이도 있을 것이고 고통의 순간에 놓인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런 저런 시간을 겪으며 살아가는 동안 내 삶이 별 의미도 없이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어떤 순간이든 우리 믿는 이들은 하느님이라는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신부님 강론의 요지였다.
언제나 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렇잖아도 요즘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이 많았던 터라 특별히 마음에 와 닿았다.

정말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나 근본적인 질문이라 차라리 유치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바삐 살아가는 세상. 새삼스럽게 삶에 대해 복잡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많이 배운 잘난 사람들도 여기에 관한 답을 쉽게 내리지 못할 것을 내가 괜히 주제넘은 생각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자꾸 그런 자문을 하게 된다.
산다는 것이 참 힘든데 그래도 이런 삶을 부여잡고 안간힘 쓰며 살아가는 내 모습에서 어떤 의미라도 찾고 싶어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은 낙천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꾸 복잡한 생각을 하며 자신을 힘들게 하는 면도 있기에 그런 생각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려고 애 쓰는 편이다.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하며 매사에 명쾌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런 성향도 다 팔자인 것 같다. 나를 부인한다고 해서 내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고민했던 것에 대해 조금은 답을 얻은 듯해서 어느 정도 마음이 가볍다.

한창 꿈이 찬란했던 시기를 지나 현실이 어떤 것인지를 아프게 배우면서 삶에 대해 조금은 더 진지한 눈을 갖게 된 것 같다.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땅을 딛고 사는 사람답게 더 이상 공허한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내겐 쉽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는 일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자식 낳아 잘 기르며 부모님 잘 받들며 살아가는 것.
참 단순한 것 같은데도 그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나는 숨이 차 온다.
예전에는 거기에 사족을 붙이며 삶을 꿈꾸었다.
남편은 무조건 경제적으로 나를 여유롭게 해 주리라 생각했다. 으레 그러리라 생각한 것이다.
자식들도 잘 키우고 또 절로 잘 커 줄줄 알았다. 거기에 대해서도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았다.
부모님들도 내가 잘해 드리면 그것으로 만사가 평안하리라 생각했다.
잘해 드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서는 정말 무지했다.
하지만, 내가 으레 그러리라 생각했던 것들이 삐거덕거리며 조금씩 아귀가 맞지 않는 것을 겪으며 그제야 세상살이 참 만만치 않구나 절감하게 되었다.
남들은······.
남들은 별 어려움 없이 다 갖는 그런 평범한 행복들이 왜 자꾸 나는 비켜 가는지 속만 상했다.
크게 잘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별로 모자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나 정도면 적어도 이러이러하게는 살아야 하는데.
그건 정말 욕심도 아닌데.

그런데 그게 욕심이었나 보았다.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았던 정도의 삶조차 꿈처럼 갖고 싶은 지금이 되어서야 나를 제대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교만의 늪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나 정도면 하는 참으로 헛되고 어리석은 망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겸손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자기 연민에 빠져 남에게 냉정하고 자신에겐 늘 관대했다.
진실로 난 그것을 모르고 살았다.
최근 내게 계속 어려운 일이 닥쳐오자 나는 저절로 세상에 납작 엎드리게 되었다.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절로 가장 낮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동안은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언제나 내가 주인공인양 주위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내 밑으로 낮추어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교만은 내가 굳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생겨난 것이라 의식 세계 저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몰랐다.
하지만, 내가 낮아지고 보니 보인다. 잘못 생각하고 잘못 살아왔던 내 모습이.

한 예로 나는 외출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나에 대해서도 큰 착각을 하며 교만한 맘을 갖고 있었다.
요즘은 다들 집을 지키지 않고 이리저리 나가다니면서 사는 주부들이 참으로 많은데 나는 그래도 항상 시부모님과 한집에서 살며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살아가는 건실한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의식 저 깊은 곳에서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를 알고 있다.
내가 힘들고 지치다보니 신앙인이기에 주님을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되도록이면 미사를 매일 보려 애쓰게 되었다.
아침에 집에서 어영부영 지내다가 매일 미사를 다니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부지런하게 살면서 겸손된 맘으로 신앙생활을 하는지에 대해서 깨닫게 된 것이다.
난 집을 비운 주부들은 친구들끼리 놀러가거나 외식하러 가거나 아니면 돈 들여서 운동을 하거나 그렇게 시간을 보내리라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이들도 정말 많았고 설령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럴게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내가 어찌 감히 그들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했는지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

자식들 공부에 열 올리면서 각종 정보수집에 혈안이 되어 다니는 엄마들을 보면서도 난 은근히 그들을 속되게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정말 때때로 그렇게 그들을 낮추어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난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렇게 다른 엄마들이 자식들 생각하며 온 마음을 다해 노력하고 품을 들일 동안 나는 저절로 잘되겠지 머리로만 생각하며 팔짱끼고 있던 게으른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집에만 있는 엄마가 틀렸다거나 다 잘되겠지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은연중에라도 내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며 타인을 낮추어 보는 우는 이제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지금도 내가 모르는 교만에 빠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이렇게 한번쯤은 내가 크게 깨져야 했던 것 같다.
스스로가 하찮게 보이고 작아 보이는 것이 꼭 슬픈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뿌옇게 보이던 세상이 조금 맑아진 느낌이고 내게 주어진 고통에 대해 보다 겸허한 마음이 되었다.
이젠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이 다 귀해 보인다.
내가 낮은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은 결코 자학이 아니었다. 오히려 억울한 맘을 없게 하고 내 삶을 긍정하게 만들어준다.

정말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내가 갖고 있는 지혜로 그것을 헤아리기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저 주어진 삶에 묵묵히 살아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언제까지 세상을 배워야할지 모르겠지만 삶의 고비는 언제나 작은 깨달음을 하나씩 던져 주는 것 같다. 아마 세상 다하는 날까지 그렇게 나는 세상을 배워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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