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유류분 제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864

막둥이(10)


BY 선물 2006-06-26

 

1.


친구와 함께 한 시간 반 정도 길 친구가 되어 버스를 탔다.

가는 길엔 둘 다 심각한 얼굴이었고 오는 길엔 둘 다 환한 얼굴이었다.

그 차이는?

가는 길에 나눈 이야기는 자식에 관한 것이었고 오는 길에 나눈 이야기는 각자 기르고 있는 강아지에 관한 것이었다.


2.


-아이, 잘했어요.

-어이구, 우리 애기 배고프구나. 밥 먹어야지.

-우리 애기 쉬 마렵구나, 어여 가서 쉬 누면 까까 주지.


내가 막둥이에게 하는 말이다.

얼마나 다정한지 내가 들어도 살살 녹는다.


-좀 일찍 다닐 수 없니?

-깨우면 그만 자고 바로 일어나!

-머리 모양이 그게 뭐니. 좀 단정하게 잘라라.


아들에게 하는 말이다.

참 사랑하는 아들인데 내 말 속엔 짜증이 듬뿍 묻어 있다.


3.


막둥이는 오줌을 눌 때와 쌀 때가 있다.

제 자리에 가서 누면 누는 것이고 정한 곳 이외에서 누면 싸는 것이다.

눌 때는 과자가 상으로 주어진다.

쌀 때는 잔소리를 듣고 과자도 안 준다.


막둥이도 눌 때와 쌀 때의 반응이 다르다.

누고 나올 때는 꼬리가 힘차게 팔랑인다. 또한, 거만스런 눈빛이다.

쌀 때는 슬슬 피하며 도망할 준비를 한다.

누고 나왔는데도 아무도 몰라주면 화장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린다.

그러다 사람이 나오면 화장실 쪽을 향해 걸어간다.

그런 때 확인하면 배변 시트지에 노란 동그라미 하나가 자랑스레 그려져 있다.

그런 때 과자를 주지 않으면 속된 말로 환장한다.


4.


우리 집을 방문한 이들이 막둥이를 보고 반응하는 모습들이 제 각각이다.

강아지를 기르는 집 아이들은 막둥이를 천사처럼 떠받든다.

강아지를 기르는 집 어른들도 막둥이를 귀엽다며 안고 어르고 난리다.

그렇지 않은 이들 중엔 심지어 막둥이를 무섭다며 피하는 이들도 있다.

많이 자라긴 했어도 아직은 솜털처럼 가벼운 아인데...

막둥이를 무섭다 하는 사람을 보면 밉다. 많이 밉다.

나도 예전에 그랬을까...

그랬던 것 같다.

무섭다 하진 않았지만 분명 멀찍이 피해 다녔다.

그 모습이 지금은 참 보기가 싫다.


5.


차에서 막둥이와 1시간을 있었던 일이 있었다.

자꾸 이상한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서 목이 마른가 생각하며 물을 주었다.

조금 목을 축이다 말고 다시 낑낑거린다.

더워서 그러나 싶어 밖으로 안고 나갔다.

사람들이 막둥이 귀엽다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내 자식 예쁘다는 소리만큼 정말 행복하다.

사람들이 와서 막둥이를 살짝 만지고 간다.

꼬집지도 않았는데 울 막둥이 좀 불편한 얼굴이다.

다시 차로 돌아와 혹시나 해서 준비해간 배변 시트에 앉혔는데 그냥 일어난다.

뒷자리의 아들이 자기에게로 보내하고 한다.

막둥이는 냉큼 아들에게로 갔다.

그리고 차 뒷자리에다 볼일을 바로 본다.

화들짝 놀란 아들 하는 말.

-엄마, 끝이 없어.

막둥이 그렇게 많은 양의 오줌을 누는 일은 처음이다.

나름대로 참고 또 참았나보다.

이놈이 밖에선 시트지를 분간 못하나.


6.


자다 말고 뭔가 내 발길에 떨어진 느낌에 벌떡 일어 났다.

침대 끄트머리에서 막둥이가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혼자 쩔쩔 매던 중에 내 몸부림치는 발길에 차여 뛰어 내렸나보았다.

막둥인 방구석에 깔아둔 시트지로 가서 볼일을 본다.

그리고 과자 하나 얻어먹고 다시 침대에 올려주었더니 그대로 새근새근 잠이 든다.

완전 아기다.


7.

막둥이에게 새집이 생겼다.

막둥이를 구해 준 조카가 선물한 것이다.

그동안 막둥이 몸도 배로 컸는데 집이 무지 좁았을 것이다.

새 집은 지붕이 분리되어 있고 붙일 땐 찍찍이로 붙여야 한다.

막둥이는 새집을 무척 맘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막둥이가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막둥이 집에서 들리는 소리다.

가서 확인해 보았더니 막둥이 얼굴이 찍찍이에 붙어 있다.

여름이라 덥다고 지붕을 철거한 탓에 지붕 붙이는 곳의 찍찍이가 노출된 탓이다.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다.

그래도 막둥이의 고통을 생각하니 맘이 급하다.

찍찍이에서 털을 조심스럽게 빼 주었다.

그 뒤로 막둥이가 집 위쪽으로 뛰어 오르는 일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