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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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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5)


BY 선물 2006-05-31

우리 집 강아지에게 막둥이란 이름은 참 잘 어울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붙여서 계속 부르다보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어울리는 이름이 되는지... 결국은 그것들이 다 길들여진 까닭이겠지만...

하지만, 막둥이가 그 이름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는 것들 중 때론 맘에 안 드는 것들도 많다. 막내라고 지어준 이름답게 귀여운 행동도 많이 하지만, 마구잡이 행동을 막 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우리 막둥이 이름이 전파를 타고 있지 않은가! 사연인즉슨, 형님늬우스라는 코너에서 아나운서 옆에서 촐싹거리는 역할을 맡은 남자의 이름이 바로 막둥이였던 것이다. 그들의 정체는 조폭이었다. 물론 밉지 않은 조폭이긴 했다.

그 코너는 이렇게 시작된다.

-형님늬우스를 시작하겠습니다. 늬우스가 늬우스다워야 늬우스지..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그랬던 것 같다.

남편은 그게 그렇게 재미났는지 자꾸 따라 한다. 이렇게...

-막둥이가~ 막둥이다워야 막둥이지.

이 문장은 리듬을 제대로 타야 제격이다.

그 때문인지 막둥이는 막둥이답게 행동한다. 마구잡이로...

아무데서나 배변을 하고 아무데나 쑤셔 들어가고 어떤 목표물이 생기면(주로 공이나 인형 같은 것) 돌진해서 싸운 뒤 혁혁한 전과를 세우고는 의기양양 자기 집으로 전리품을 물고 돌아가는 것이다.

막둥이의 집은 부산형님이 사주신 이동용 가방인데 예쁘긴 하지만 지독하게 좁기도 하다. 그러나 막둥이는 모른다. 자기 집 평수 따위는... 그래서 막둥이는 그 보금자리에 꽤 만족하고 있다. 배울 점이다.

어느 날, 남편이 이런 말을 한다.

-우리 막둥이 영재 끼가 있어.

얼핏 보니 막둥이가 자기 밥그릇과 싸우고 있다.

-그게 뭔 소리?

남편이 보기엔 막둥이 밥그릇에 그려진 강아지 그림을 보고 막둥이가 밥을 사이에 두고 경쟁자가 생겼다고 생각해서 싸우는 거라고 한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남편 말에 푼수 마누라는 탄복하며 거든다.

-우리 집 막둥이는 다른 강아지랑은 다른 그 뭔가가 느껴지긴 해요.


처음 막둥이를 데리고 왔을 때 인터넷에서 말티즈에 대해 검색해 본 적이 있었다.

어떤 질문자가 말티즈의 충성도에 대해 질문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답이 걸작이었다.

<제가 말티즈를 키우는 주인인데요. 어느 날, 친구랑 싸웠거든요. 근데 제가 친구를 때리고 있는데 우리 집 말티즈가 저를 깨물었어요. 이것으로 충성도에 대한 답은 된 것 같은데요.>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대단한 말티즈를 떠올리게 된다.

말티즈는 자기 인연에 연연하기 보다는 약자를 위할 줄 아는 의리의 동물이다라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도 우리 막둥이가 그렇게 평화주의자, 세계주의자가 될 소양을 가진 종자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우리가 영재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착각임을 곧 발견하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사료를 다른 그릇에 담아 주었다.

그런데 앞발로 툭툭 치더니 또 다시 혼자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것이 아닌가.

이건 영재가 아니라 바보 같았다.

-이눔아, 네 밥그릇도 몰라보고 밥도 안 먹고 뎀벼드냐?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강아지도 잘 먹고 잘 싸야 한다.

우리 막둥이 참 잘 먹고 잘 싸는데 장소를 가리지 못해서 말썽이다.

처음 강아지를 데리고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했던 말이 있다.

-난, 절대로 똥오줌 못 치우니 그리 알아요.

그 말에 남편은 자기가 다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하면서 목욕도 자기가 다 책임지고 강아지와 관련된 것은 뭐든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했다.

그러나 어찌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출근도 않고 집에서 강아지만 본다는 뜻인가.

난 사실 속으로 혼자 각오하긴 했다. 할 수 없지, 뭐 내 팔자가 그런가보지 뭐.

하지만, 그건 속마음이고 겉으론 확고하게 말했다. 더러워서 난 그런 거 절대 못한다고...

사실 우리 어머님 굉장히 깔끔하시고 비위 약하신 분이다.

또한, 당신이 그렇다는 사실에 뿌듯해 하시기도 한다.

난 그냥 그런 편이지만 그래도 자존심 상 나도 깔끔 떠는 척 하게 된다.

그 때문에 어머님 앞에서 더 코 맹맹한 목소리로

-전 그런 더러운 거 못 만져요.

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님 대놓고 말씀은 못하셨지만 속으로 그러셨을 것이다. 틀림없이...

-평소에 별로 그렇지 않은 얘가 갑자기 웬 유난일까?

처음에 남편이 집에 있을 땐 정말 남편이 막둥이 일을 다 해주었다.

난 계속 못한다며 꼼짝하지 않았다.

아예 보지도 못하겠다며 헛구역질 하는 시늉까지 했다.

오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솔직히 그쪽 비위는 좀 약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남편이 집에 없을 때는 도리가 없다.

애비 퇴근 때까지 전 못해요 홍홍 하며 미운 짓 할 배짱이 차마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님 보시는 앞에서 비닐장갑을 끼고 코를 움켜쥐며 휴지를 듬뿍 말아서 아이, 이를 어째 하면서 간신히 치웠다.

그러나 막상 우리 막둥이 똥오줌을 직접 보니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줌은 병아리 눈물만큼 누고 똥은 아이 손가락 길이 정도 누는데 바닥에 묻어나지 않아서 사람 똥과는 또 달랐다.

그래서 몇 번을 치우다보니 그 다음엔 비닐도 끼지 않고 코도 막지 않고 휴지도 조금 아껴가며 분비물을 치우게 되었다.

그것을 지켜보시던 어머님 통쾌하신 듯 한 말씀 하신다.

-에미야, 너 지금 더러워서 어떻게 그걸 맨손으로 치우니?

하지만, 내가 없을 때 어머님도 할 수 없이 똥오줌을 치우시는데 나처럼 똑 같이 치우셨을 거란 생각엔 일말의 의심도 없다. 우린 서로에게 그렇게 뜻밖의 연극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는 것이다.

여하튼, 강아지는 배변습관만 잘 길들이면 한 시름 놓는다는데 그를 위한 우리의 작전은 치밀하게 수립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