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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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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서


BY 선물 2004-06-23

언제부턴가 귀가 먹먹하다.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나왔을 때나 높은 산에 올라가 기압 차가 많이 날 때 그럴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남편은 코를 잠시 쥐었다가 놓으라고 한다. 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차라리 귀가 들리지 않았으면... 눈도 보이지 않았으면... 대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면 내 눈과 귀, 그리고 입 등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그 능력과 맞바꾸리라.

아이의 마음을 읽고싶다. 그러면 아이를 좀 더 이해할 텐데... 그러면 제대로 아이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 텐데... 나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쓸 뿐이다. 아이를 치유해 줄 수 있는 능력은 더더구나 없다. 능력이 없으니 아등바등 그 무엇에라도 매달리고 또 매달리며 수선만 부릴 뿐이다.

내 나름대로는 아이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말들을 머리 속으로 생각한다. 이 정도면 아이에게 간절한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겠지 하는 오만으로 그러나 정말 애절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불과 두 달 전쯤의 내 딸아이라면 그런 내 마음을 받아들이려고 노력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동안 무엇이 아이의 마음을 이렇게 닫히게 만들었는지 냉담한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나름대로 각본을 그리며 말을 건넸던 나는 순식간에 분노가 치밀고 그런 내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 놓고 만다. 아이는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역시 저런 사람이야 라고 하는 듯 하다. 대답조차 없다. 엄마, 죄송해요. 이제 다신 엄마 마음 안 아프게 할게요. 우리 아인 그렇게 말하며 내 품으로 단박에 안겨들 그런 아이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모습을 아직도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러이러하게 이야기하면 아이도 이러이러하게 반응하리라 생각했던 것들이 무참하게 배신당하면 좀 더 인내하지 못하고 적나라한 내 심정을 다 토해내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순간의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참을성 없이....

되돌아보면 아이는...
아이는 그 동안 끊임없이 내게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었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힘들다고 학교 생활이 외롭다고 그런 말을 종종 했었다. 그러나 내 가슴이 미처 그 아이에게 열려있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저 누구나 외로운 것이라고, 누구에게나 그런 고비쯤은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이겨내란 말만 내뱉었다. 아주 쉽게...
정말 심각하게 생각지를 못했는데... 그러다가 난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시기를 놓치고 만 것이다. 아이는 홀로 견디질 못하고 학교를 마음으로부터 떠났고 더 아픈 것은 세상을 차가운 시선으로 보게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짐을 들고 있는 할머니를 보면 절대로 지나치질 않던 내 아이. 길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보면 꼭 얼마간의 돈을 주어야 마음이 편해지던 아이. 선생님들로부터도 때로는 성격이 급하지만 그래도 순진한 아이의 맑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칭찬을 늘 들어왔던 아이. 그랬던 아이가 저렇게 맘을 꽁꽁 닫고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질 않는다. 엄마가 가장 절실했을 때 외면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별나게 싸늘한 엄마도 아니었고 정말 보통의 평범한 엄마였을 뿐이다.

교감선생님께서 아이를 다독여주셨다. 아이는 집에 와서 그 선생님의 다정함에 너무 행복하다는 말을 했다. 그 선생님의 따스함이 얼마간 학교에 아이의 마음을 붙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한 번 친구들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은 너무도 쉽게 또 다시 상처를 입게 된다. 친구들로부터 조금이라도 이상한 말을 들으면 견디질 못한다. 외향적이고 적극적이던 딸아이는 어느새 위축되고 밥맛까지 잃게되고 말았다. 학교급식도 하지 않은 것이 꽤 오래 전부터였다고 한다. 대체 그 시간에 아이는 혼자 무엇을 했단 말인가. 나는 또 무엇을 했던가?

아이가 학교를 거부하기 시작했을 때 우린 체험학습이란 이름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그 여행에서 딸아이의 묘한 면을 발견했다. 낯선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조금만 잘 해 주면 무척 감격하며 행복해하고 아주 짧은 만남인데도 정을 다 주고 이별을 엄청나게 아쉬워하며 눈물짓는 것이었다. 숙박업소의 주인 할머니의 친절한 말 한마디에 감동하는 아이. 아이는 그동안 참으로 외로웠던 모양이다.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따스하게 대해주면 그 사람에 대해 큰 감사의 마음을 갖고 흠뻑 정에 빠지는 것을 보면... 교감선생님께 가졌던 마음도 그와 같은 맥락이었다.

올해 초, 아이는 노트 한 권을 들고 혼자서 끙끙대며 씨름을 하고 있었다. 국어 시간에 필요한 노트인데 인생에 관한 글을 적는 노트라고 했다. 그래서 그에 맞게 표지를 멋있게 장식하겠다는 말을 하며 색종이와 풀 등을 이용해서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 내놓았다. 쭈욱 곧은  길을 그려놓고 옆으로 자그마한 샛길을 그리더니 그 길로 가면 다신 되돌아올 수 없는 늪으로 빠진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과감하게 샛길로 가는 길목에 엑스 표시를 하면서 자신은 언제나 곧은길을 걷는 인생을 살고싶다는 말을 했었다. 그 때 아이가 참 대견하고 고마웠었는데...

그런데 지금 아이는 샛길을 가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곧게 뻗어 있는 길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길을 잃곤 어쩔 줄 몰라하며 헤매고 있다. 아이가 그렇게 주춤거리는 사이 그 파장은 참으로 엄청난 힘이 되어 나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엄마는 강하다고 하던데 내 존재가 이렇게 미약하고 무지몽매할 줄은 정말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길을 만들어서라도 놓아주어야 하는데 어쩌면 놓여 있는 길조차 찾지 못하고 버벅거리고 있다. 밝은 눈을 갖지 못한 까닭이다. 지혜가 턱없이 부족한 까닭이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온통 주변에 대한 원망과 나에 대한 자책뿐이다. 원망은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고 자책은 자꾸만 스스로를 주저앉힌다. 진실에는 원망보다 자책을 하는 편이 더 가까울 것 같다. 돌아보니 참으로 잘못 살아왔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부모의 사랑만 있으면 아이는 절로 잘 자라리라고 믿었고 내 맘을 다해 정성을 쏟았다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건 순전히 내 방식대로의 사랑이었을 뿐이었나 보다. 이렇게 나를 일깨우기 위해 주관하신 절대자의 섭리라면 차라리 감사드리고싶다. 제대로 살게 하시려고 깨우침을 주시려고 잠시 고통을 선물하신 것이라 믿고싶다. 그것은 이 시간을 어떤 절망적인 의미의 끝이 아닌 참 의미의 아름다운 삶으로 발 내딛게 하는 시작의 순간이라 생각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겸손하고 매사 긍정적이고 따뜻한 사람. 그동안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했었다. 교만하게 보이는 사람, 삶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 세속적인 잣대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그렇게 생각되는 사람들 앞에서 난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오히려 내가 그들 앞에서 교만한 마음을 갖고 살아왔었다. 조금 힘들어도 가치 있는 삶보다는 편하게 가는 길을 택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었다. 돌아보면 후회되는 일들이 수두룩한데도 반성은커녕 앞으로 후회할 일이 뻔히 내다보이는 선택을 겁 없이 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좋은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에서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지당한 이치를 왜 몰랐던가? 혹시라도 선하지 못했던 행실이 있고 못된 마음이 있어 그것이 아이에게 그대로 스며들었다면 이제는 내가 변해서 좋은 기운이 아이에게 스며들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할 일이다. 늦지는 않았다. 희망을 놓지 않는다. 언제나 나는 바닥에 무릎꿇은 사람되어 조금이라도 내가 선을 행해 덕을 쌓게 되어 누리게 될 복락이 있다면 아이에게 오롯이 바치고픈 마음이다.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이 순간으로 끝나지 않고 내 일생 전체를 이끌어갈 수 있다면 오늘의 고통은 언제나 고마운 은혜로 간직하게 되리라. 부디... 부디 은혜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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