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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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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BY 선물 2004-01-04

늘 통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한 문우 님으로부터 새겨 들을만한 지적을 받게 되었다. 우울을 특허 낸 듯한 글을 그만 썼으면 하는 바람의 글이었다. 그 이유로 그런 우울한 글을 쓰다 보면 글 쓰는 사람의 정신세계까지 어두워지기 쉽다는 것이었다. 어두운 정신, 그것은 또한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의 생활까지 어둡게 만들기 쉽다는 걱정스런 마음 씀이었다. 정말 가슴으로 느껴지는 좋은 말씀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나 자신도 참 이상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살아 움직이는 나를 직접 보면 그 어느 누구도 어두움을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많이 들었던 나에 대한 평가 중의 하나가 참 밝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는 어두움이 느껴지질 않고 늘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언제나 철없는 모습으로 잘 먹고 잘 웃고 잘 자는 참으로 낙천적인 사람이다. 누가 먼저 나를 건드리지 않는 한 결코 화를 내거나 우울해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내가 고요한 시간 중에 글을 쓰다 보면 정말 자꾸만 가라앉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글로써 나를 접하게 되는 분들은 늘 조울증 환자 같은 변덕스런 사람으로 나를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 조금만 기분 좋으면 방방 뜨는 글로 행복을 드러내고 조금만 우울해지면 금세 다른 얼굴로 확 바꿔 버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움직이며 숨결이 느껴지는 이 내 몸이 나일까, 아니면 글 속에서 표현되는 변덕스런 사람이 나일까, 문득 나도 궁금해진다. 그 누구와도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밝은 내 모습이 진실이라면 참 좋겠다. 그러나 사실 별로 자신이 없다. 실은 아이들이 평가한 엄마의 모습에서 글과 흡사한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꽤 오래 전의 일이었는데 이번에 그 문우 님의 지적을 받고 나니 그 때의 일이 새롭게 다가왔다.

아이들에게 엄마를 날씨에 비교해 보라는 어떤 설문지가 있었다. 그 답에 따라 아이들이 엄마를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나를 소나기라고 적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었다. 밝은 얼굴로 기분 좋게 대해 주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돌변한 얼굴로 화를 내는 엄마라는 이유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던 모습이었지만 실제로 아이들에게는 그런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것이 내 진실처럼 여겨졌다. 그런 이유로 나는 늘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어떤 면으로는 약한 아이들 앞에서만 맘껏 자기 감정을 발산하는 내 자신이 비굴해 보여 참으로 부끄러웠다.

며칠 전 성당에 고백성사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이었다. 사실 성탄 전 성사를 보러 갔을 때 너무나 많은 신자들로 인해 끝없이 길게 늘어 선 줄을 보며 기다릴 일이 아득해져서 그만 성사를 포기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새해가 되기 전에는 꼭 성사를 보고 말겠다는 욕심이 앞서서 그만 졸렬한 행동을 하게 되고 말았다. 2층 고백소로 올라가는데 뒤에서 어떤 자매 님(여성 신도를 일컫는 말) 이 바로 뒤에서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었다. 나는 행여 한 명이라도 날 앞지를까 걱정되어 거의 뛰는 듯한 걸음으로 앞서 가려고 했다. 또 성탄 때처럼 길게 줄을 서 있을까봐 한 사람이라도 제치고 앞에 서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유치한 판단 때문이었다. 숨을 헉헉거리며 바쁜 걸음으로 그렇게 올라가는데 뒤에서 그 분이 내게 말씀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오늘은 어쩐 일로 혼자 오셨네요? 늘 가족과 함께 오시더니..."
그러나 그 분은 내가 단 한 번도 뵌 기억이 없는 분이었다. 나는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었고 그 분은 다시 설명을 해 주셨다.
"항상 맨 앞자리에 가족들이 함께 앉으시는 것을 봤거든요. 그런데 함께 오시는 어른들은 친정부모님 이신가요?"
"아뇨, 시부모님들이세요. "
"아, 예. 정말 착하신 분이시군요. 가족들이 함께 미사 드리는 모습이 정말 보기가 좋았어요."
시부모님과 함께 산다고 하면 항상 듣게 되는 칭찬이지만 수없이 듣는 칭찬임에도 결코 편안하지 않은 것은 나 자신조차 내 진심껏 모시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 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고백소 앞에 서 있는데 의외로 성사를 보려는 사람들은 너무나 적었고 나는 줄을 서지 않고도 성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 이기적이고 한심한 행동은 계속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 분은 앞서 가려고 걸음을 재촉하는 내 뒷모습을 보며 따뜻한 인사를 건넬 마음을 가지셨는데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 분의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주시 당한다는 것이 갑자기 불편해졌다.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 그 분의 손 내밈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여지는 내가 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부담스러워진다. 이제 성당 맨 앞자리에서 신부님 강론을 들으며 꾸벅꾸벅 조는 일도 조심해야겠다. 그동안 가족들 앞에서는 내 조는 모습을 현란한 말솜씨로 변명했지만 다른 신자 분들이 눈 여겨 나를 본다면 여간 한심스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부모님과 남편이 놀릴 때 나는 잠의 요정이 내게 다가와서 살며시 잠가루를 뿌려주고 갔노라며 슬쩍 귀여운 척 하는 변명을 해서 무안을 모면하려 하지만 뒤에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헤드뱅잉 하는 내 모습이 결코 유쾌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느 집이고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 집도 사는 모양새가 다른 여느 집들과 다를 바 없이 때로는 천국 같다가도 어느 순간  지옥 같은 아수라장이 되기도 하는 터여서 괜스레 남의 이목을 받는다는 것이 결코 달갑지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어쩜 본의 아니게 내 겉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 같은 부끄러움이 자꾸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실은 오늘도 아침에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했지만 결국은 크게 속상한 일이 생겨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급하게 외출할 일이 생겼는데 밖으로 나가는 내 얼굴은 다시 웃음으로 감쪽같이 포장되어 있었다. 그래야만 어른다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언짢은 일로 인해 내 인생이 가엾어지고 초라하게 생각되었는데 그런 감정을 그렇게 드러내지 못하고 포장한 얼굴로 있어야 한다는 것은 더 속이 상했다.

왜 자꾸 우울한 일이 생길까? 정말 우울한 글을 많이 쓰기 때문일까?
별로 욕심 없는데, 정말 평범한 행복을 바랄 뿐인데 왜 내겐 그것조차 벅찬 일일까?
어디선가 본 글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가장 행복했던 때를 말하라고 했더니 한결같이 아내가 귀지를 파 주던 일 같은 아주 자잘한 행복의 시간을 끄집어냈다고 한다. 나도 그 정도로 자잘한 행복을 꿈꿀 뿐인데 왜 때론 그런 욕심 없는 마음조차 상처받아야 하는지 정말 속이 상하다. 그래도 겉으로 표현 못하니 내 속은 시커멓게 재가 되고 말았다.

어쩜 그래서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도 처음에는 한숨과 나락 같은 절망에 빠져 시작했는데 글로써 자꾸 뱉다 보니 조금씩 마음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수필은 개인의 신변이나 풀어놓는 글이 아니라는데 아무래도 나는 내 신변을 풀어놓는 것이 `딱'이니 정말 잘난 글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은 아예 잡문이라 생각하고 쓰는 글이다. 앞으로도 한참은 나는 잡문을 쓸 것이다. 어쩔 것인가, 지금 난 그렇게 뱉어내는 것이 나를 위한 좋은 위로의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편안하게 쓴 글, 나를 위한 잡문을 이 곳에 올림을 죄송하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