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아이를 낳는다는 게 두려워요. 태어날 당사자를 위해서라도 낳지 않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떤 엄마가 세 째 아이까지 가지고 싶어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다른 이웃 엄마가 놀라면서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다.
가시밭길처럼 험난한 인생 길을 굳이 한 생명으로 하여금 더 걸어가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점점 더 진창이 되어 가는 이 세상이 과연 힘들여 살아 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정말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살아갈 만한 가치가 없는 세상. 부정하고싶지만 안타깝게도 함께 있던 엄마들 모두 한숨을 내 쉬며 공감했던 대목이다. 물론 세상은 그것을 보는 개개인의 주관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매스컴을 통해서나 실제 주변에서 들려 오는 소식들을 접하며 느껴지는 세상은 아무래도 우울한 회색 빛을 닮아 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 준다.
그래서일까, 꿈으로 가득 차 반짝이고 있어야 할 눈망울의 주인공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채 피지도 못한 생명까지도 주저하지 않고 내 던지는 것을 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그들에 대해 아픈 원망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들에게 희망의 빛을 밝혀 주지 못한 세상에 대한 책임감으로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버리게 만들었을까? 옛날에는 세상이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목숨을 거둔 사람들이 많아 보였는데 요즘은 그와 반대로 그들이 세상을 버리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나는 가끔 기억의 시계를 뒤로 돌려본다. 그렇게 돌아 본 나의 어린 시절은 물질적으로는 참 가난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가난은 뜻 밖에도 참으로 고귀한 것들을 선물해 주었다. 작은 것에 대해서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행복해 할 줄 아는 마음. 진정한 의미의 풍요로움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더 힘들고 아팠던 가난의 고통을 경험한 우리 부모님 세대는 가난이 선물하는 그 소박한 지혜에 대해 대견해 하실 만큼 마음이 여유로울 겨를이 없으셨던 것 같다.그저 못 먹이고 못 입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어떻게 해서든 그 가난만큼은 대물림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만을 불태우셨던 것이다. 물론 그 덕분에 어느 정도의 물질적인 풍요는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아무 것도 없던 세상에서 정말 많은 것을 이루어 낸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얻는 대가는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계산으로 셈을 하자면 너무나 값비싼 것이었다. 채워지지 않는 욕심으로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있을 때 우리는 희망, 사랑, 꿈, 나눔, 정직 등 정말 참 보물로 안고 가야 할 것들을 너무 많이 잃어 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욕심을 비워야 비로소 그 빈자리에 들어설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면 우리는 자연의 세계에서 배울 것들이 참으로 많을 것이다. 자연은 최소한의 것만을 갖고서도 모든 아름다움을 다 꽃피운다. 햇빛과 땅과 바람과 하늘이 어울리며 그렇게 함께 할 때 가장 찬란하게 빛날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자연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지금 세상은 너무나 즉각적인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어떤 일에서든 바로 그 자리에서 답이 오기를 원하는 인스턴트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살아 갈 수 있다는 착각을 하며 살아가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은 참 공허하다. 그래서 기다리지 않고 손을 잡지 않고 미련없이 세상을 버리려 하는 것이다. 현란한 세상 불빛은 우리를 유혹하지만 그렇게 만족을 모르고 한없이 갈구하는 삶의 종착역은 마치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의 최후와 닮아 보인다.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것이 아니라 영혼이 굶주리고 가난하다는 것을... 그래서 낡고 식상한 골동품처럼 하찮게 대접받던 가치들을 다시 찾아 내고 빛을 내게 하여야 한다. 사랑이, 희망이 서로 함께 함이 얼마나 값진 것들인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가 가장 소중한 보물임을 알게 되는 세상을 주고 싶다. 누구나 이렇게 말하는 세상이 되도록...
"아이를 더 낳고 싶어요. 아이에게 이 좋은 세상을 여행하게 해 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