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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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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종이 뿌려질 날을 기다리며...


BY 선물 2003-11-23

나에게는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진한 회한이 남아 있다. 그 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해마다 방학이 되면 외가와 친가가 함께 있는 시골로 다니러 가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늘 하게 되는 고민이 있었으니 바로 친가와 외가 중 어디에서 많이 있을 것인가 하는 참으로 별난 고민이었다. 하지만, 어린 내게는 제법 심각하게 생각된 고민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서 내리기만 하면 바로 갈 수 있는 외가 댁은 제법 큰 시골이라 그래도 5일장도 열렸고 비교적 젊은 외숙모가 계셔서 쌀밥에 맛있는 오뎅반찬도 해주었기 때문에 방학동안 지내기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거기에다 또래 친구들도 있었고 시골치고는 비교적 깨끗한 변소가 있어 항상 꽁보리밥에 된장국 밖에 없고 어두워지면 귀신이 나올 것 같이 깜깜한 변소가 있는 친가보다는 외가에 있기를 훨씬 좋아했던 것이다.

친가는 외가에서도 꽤 먼 거리라 걸어서 산을 넘고 내를 건너야 갈 수 있는 그런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아마 그래서 더더욱 친가에 가기를 꺼려 했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느 날 외가에서 시골친구들과 지내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던 나에게 친가에 다녀오라는 말씀을 외할머니께서 하시는 것이었다. 아직은 어리고 철없었던 그 때, 한겨울에 차가운 바람 맞으며 얼어 붙은 논둑 길과 또 좁은 산길을 걸어 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힘들게 느껴져서 그렇게 외진 곳에 친가가 있다는 것이 귀찮게도 느껴졌고 그야말로 의무감에 할 수 없이 가야하는 길로 생각되었기에 죄없는 땅바닥만 툭툭 밀어차며 그렇게 투덜대며 걸어갔었다.

어렵게 친가에 도착했을 때 큰어머니께서는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셨지만 나는 겉으로 웃는 대신 속으로는 계속 친가에서 있어야 할 일을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나를 그곳까지 데려다 주신 외삼촌께 큰어머니께서 뭐라도 드시고 가시라며 고마움을 전하셨는데 그 때 옆에 있던 나는 그 앞에서 그만 외삼촌께 빨리 데리러 오시라는 철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던 것이다. 그 때 큰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서운하셨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 같다.

친가는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았고 천장도 낮아 방안이 어둑어둑했다. 그리고 담배 냄새, 노인네 냄새가 뒤범벅이 되어 한 시도 있기 싫은 기분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포근한 할머니를 뵐 수 있다는 기쁨 한가지를 보물처럼 갖고 있었기에 그 침침한 방으로 냉큼 들어섰다. 내가 어둑어둑한 방안에 들어섰을 때 마른 기침을 뱉어 내는 어떤 형체가 너무도 작게 보일 듯 말듯 하였는데 바로 병으로 앓고 계시는 할머니였다.
"왔냐, 내 손녀... 그래, 잘 왔다, 잘 왔어, 어여 이리 따뜻한 데로 와서 앉거라."
할머니의 기운 없는 음성이 들려 왔다. 어둠에 익숙해진 다음 자세히 할머니를 뵈니 너무나도 마르시고 배만 볼록 나오신 모습이셨다. 그리고 퀭한 눈 주위가 순간적으로 무섭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할머니께 그런 내 맘을 들켜서는 안 된다는 그 정도의 생각은 있어서 냉큼 할머니 앞으로 가 그 깡마른, 핏줄이 다 튀어나온 손을 살며시 만져 드렸다. 그리고 "할머니 아프심 안돼요. 빨리 나으셔야 해요." 라는 말을 하면서 가깝게 얼굴을 갖다 대었다. 할머니는 기력이 다하셨지만 그래도 있는 대로 힘을 주시며 내 손을 꼭하고 잡아 주셨다.

친가에서 하룻밤을 지냈을 뿐인데도 나는 벌써 발동이 나기 시작했다. 꽁보리밥은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고 찌든 냄새는 머리까지 아프게 만들었다. 더더구나 새까만 할머니의 모습은 차마 뵙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큰 맘을 먹고 큰어머니께 외가에 가야한다고, 친구들하고 약속한 것이 있어 하루밖에 더 못 잔다고 말씀을 드렸고 큰어머니는 그럼 내일 내가 바래다 주마하고 힘없이 말씀하셨다. 그리고 간신히 하루를 더 머물렀다가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할머니께서는 내 손을 꼭 잡으시며 하루만 더 있다 가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 사랑해요. 하지만, 약속 때문에 가야만 해요." 라는 거짓말을 하고 나온 뒤 큰어머니와 함께 외가로 돌아갔다. 그렇게 외가로 돌아온 뒤, 맛있는 반찬과 쌀밥을 배불리 먹고 단잠을 자고 있는데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기어이 시상 비리셨네..."

순간적으로 불길해진 나는 벌떡 일어나 바깥에 나가서 시상 비리는 게 뭐냐고 여쭤 보았고 그것이 할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말씀이란 것을 소식 전하러 오신 분이 안되어 하시는 표정으로 알려 주셨다. 하루만 더 자고 가라고 하신 할머니 말씀이 그 순간 내 가슴에 콱 박혀 와서 어린 나이에도 너무나 큰 죄를 지었다는 느낌을 갖고 말았다. `아, 하루만 더 잤어도... 할머니께서 그렇게 원하셨는데...'

가끔 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놀러 오시면 여동생과 내가 불러 드렸던 노래가 있었다.
`할머니 머리엔 눈이 왔어요. 벌써 벌써 하얗게 눈이 왔어요. 그래도 나는 나는 제일 좋아요. 우리 우리 할머니가 제일 좋아요'
할머니는 이 노래만 들으시면 행복해 하셨고 그렇게 즐거워 하시는 할머니를 나도 참 좋아했었는데...
그 노래를 불러 드리면 고쟁이 속 깊숙한 곳에서 꼬깃꼬깃한 돈도 꺼내 주셨는데..

요즘도 가끔 하늘을 보며 생각하는 것이 있다. 어렸을 때 할머니께 부탁 드린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 천국이 있으면... 정말 있으면 거기 가셔서 예쁜 색종이를 제게 뿌려 주세요. 전 천국이 있는 지가 너무 궁금하거든요. 그러니 있으면 꼭 뿌려 주세요. 약속이요."
그러나 할머니는 예쁜 색종이를 아직도 뿌려 주시지 않으신다.

우리 할머니라면 분명히 천국에 가셨을 텐데...
아마 내가 하루 더 안 자서 서운해서 그러시나 보다...

할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그 하루가 제게 이리도 상처가 되어 수십 년을 따라다닙니다.
편히 쉬세요. 그곳에서는 부디 아프지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