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나는 대단한 면허증 하나를 취득하였다. 웬만한 박사님들도 단 번에 합격하기 어려운 면허증. 바로 운전면허증이다. 내가 등록한 운전연습장의 쿠폰에는 40여 회 이상 연습할 수 있게 되어 있었지만 나는 고작 18번만 연습하고 경험 삼아 응시한 첫 번째 시험에서 24점 합격점에 26점이라는 아슬아슬한 점수로 운 좋게 합격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쉽게 면허를 땄다고 좋아했었는데 막상 운전을 하려고 하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차에 적응이 안된 사람이라 시내 연수를 받고서도 여전히 매우 불안한 운전을 하는 초보 중의 초보, 왕초보기 되고 말았다. 차만 끌고 나갔다 하면 내 차, 남의 차 가리지 않고 긁고 박고 하면서 흠집 내며 말썽을 부렸으니 `참을 인(忍)'자 외우며 참아 주던 남편도 나중에는 이마에 `내 천(川)'자를 그리며 짜증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 초보시절 하루는 남편과 함께 영등포 쪽으로 볼 일이 있어 갔다가 남편은 차에서 내리고 나만 운전석에 앉아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남편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주차 단속을 하는 경찰차가 요란한 싸이렌 소리를 울리면서 나타난 것이다.내 앞 뒤로 주차해 있던 차들은 어느새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내 차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꼴이 되었다. 당황한 나는 남편을 기다리다 못해 우선 그 순간만 모면할 요량으로 차를 앞으로 끌고 나갔다. 그렇게 해서 계속 나가다 보니 길도 잘 모르고 운전 요령도 없던 나는 어느 새 경인 고속도로로 들어서고 만 것이다. 잠깐 유턴할 곳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내 눈에는 발견되지 않았었다.
그 뒤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었다. 느릿하게 허둥거리는 내 차를 조롱이라도 하듯 큰 대형화물차들은 바람을 일으키며 쏜살같이 지나갔고 어찌할 바를 몰라 애태우던 내 몸은 식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갔다. 분명이 그 시간 쯤에는 남편이 볼 일을 끝내고 나와 사라져 버린 아내와 차 때문에 걱정 반, 짜증 반으로 흥분하고 있을 텐데 속수무책인 나는 앞 뒤 생각없이 우선 그 위험한 도로의 가장자리 길에 차를 세우고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를 지나가는 운전자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나 가는 차들은 한결같이 빵빵 클랙슨을 울리며 겁을 주었고 결국은 다 큰 어른인 내 눈에서는 바보같은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얼마쯤 그렇게 넋을 놓고 있으니 엄청나게 큰 화물차 한 대가 다가 왔다. 운전석도 어찌나 높던지 고개를 바짝 들어야 그 기사 분을 볼 수 있었는데 자신이 신호를 주며 앞장 서겠으니 걱정 말고 그대로만 따라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높은 운전석의 위치만큼이나 그 분이 우러러 보였고 나는 감사의 말을 전하며 한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 분의 자상한 친절에 힘입어 가까스로 회차 할 수 있었던 나는 조금 뒤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남편을 발견하였다.
그 때 달리는 차 속에서 남편을 보니 나를 향해 손짓으로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지켜보다가 또 다시 유턴 해야 할 곳을 놓치고 목동 방향으로 가는 지하차도로 진입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은 신시가지 아파트까지 가서야 차를 돌려 다시 남편과 극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는데 그 때 남편은 나에게 위로를 해주긴 커녕 있는 대로 신경을 곤두세워 화를 냈으니 그 때 일은 두고 두고 나에게 약점이 되어 타박 받는 일이 되게 되었다.
그 때 길을 잃고 헤매던 나는 잘못된 길로 나갈 때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유턴이나 회차 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정말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언제라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침착하게 운전할 수 있다는 것. 그 고마움을 배운 좋은 경험이 되었었다.
때때로 나는 그 때 일을 떠 올리면서 인생이라는 차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인생은 약간의 여유가 있는 기름만으로 시간적인 여유는 없이 도착지까지 주행해 나가야 하는 차와 닮아 보인다. 인생길 나아가면서 잘못 된 길로 접어 들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되돌릴 것인지에 대한 선택도 빨라야 하며 때로는 되돌릴 경우 치명적인 손실을 입을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주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 나이 서른 아홉을 인생의 한 언덕을 넘어 서는 나이로 의미를 두는 나라가 있다고 한다. 솔직히 돌아 본 내 인생은 후회와 회한이 무척 많아 보인다. 때로는 다시 유턴해서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그러나 시간과 함께 쌓인 내 개인의 역사까지 그렇게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보면서는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비교적 훤히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미래를 바라 볼 때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지니고 있다. 다만 돌아 본 시간들 속에서 얻은 여러 고마운 경험들로 조명등 삼으면서 앞 길을 밝힌다면 남은 길 가기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나에게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순간들이 숙제처럼 계속 주어질 것이다. 그 때 그 때 좀 더 신중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내 삶에 대한 경건한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게 되는데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가, 국가가 그렇게 수렁에 빠져 휘청이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러나 기름도 시간도 여유가 별로 없다. 더 늦기 전에 수렁에서 빨리 벗어 나 비록 돌아갈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지금 서 있는 이 길에서나마 조금 더 나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로움을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겸손한 마음으로 주위에 귀 기울이고 받아 들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이고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인생은 없을 것이다. 그 길의 끝 자락에서 웃을 수 있도록 내 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내가,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