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말 힘들었어.
어른이 되어서야 명절이란게 여간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어.
특히나 며느리란 입장에서 명절은 더 그렇게 느껴지지뭐야.차례상도 부담스럽고 친지들 모이는 것도 벅차기만 해.
만약에 말이야.
내가 새로운 명절 풍속을 만들 수 있다면 지금과는 좀 다른 명절이 되게 할 거야.
한 집에서 모이는 것 까지는 좋아.그것까지 바꾸려 들면 안되겠지?
그렇게라도 얼굴을 맞대고 오고 가는 정을 확인해야 서로가 한 가족이고 한 핏줄임을 끈끈히 느끼게 될 테니까...
그런데 그 자리는 모두에게 행복한 자리가 되어야 하지.
누군가의 희생으로 갖게 되는 즐거움이어선 안 된다는 거지.
열 사람이 열씩 힘들여서 백이라는 즐거움을 만들어야지,
한 사람이 구십 힘 들이고 나머지 아홉 사람이 열만 힘들여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라면
그건 떳떳하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 거 같애.
그러니 다 같이 애 쓰고 힘들여서 보다 의미있고 값진 명절의 즐거움을
만끽하자고 말하고 싶은 거야.
나도 알아.
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입장이 다른데 똑 같이 하자고 주장하는 것,그게 어쩜 억지라는 걸...
그래도 이번엔 좀 힘들었거든...그래서 이런 헛소리라도 좀 해보면 좀 풀릴까 싶어서...
어휴...
차례상에 올릴 음식들 장만도 만만치 않았지만 우리 집에 오실 형님(시누님)들께 골고루 나눠 드릴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실은 더 힘들었어.
배추 4통을 소금에 살짝 절여 지진 배추부침개는 그래도 명절 때마다 하는 것이니
따로 말하지 않을래.
문제는 부산 큰 형님이 튀김용으로 사 오신 물오징어였어.무려 스물 세 마리!
올케인 나는 다른 음식 장만하고 튀김은 형님이 하루 종일 하시기로 하시고 사오신거야.
큰형님은 올케 힘 안들게 하시려고 다른 밑반찬들도 많이 장만해 오셨지.
참 고마우신 분이야.
근데 그 형님이 손을 다치셨어.내겐 어마어마힌 사건인 일이지.
그래서 혼자 눈을 뜨고 시작한 음식 장만이 점심까지 걸렀는데도 늦은 저녁시간까지 쉴 틈 없이 계속 되었어.
처음에는 고소하게 느껴지던 기름냄새가 나중에는 역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어.
퍽퍽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튀는 기름을 피하느라 내 느슨한 신경줄은 때 없이 조여 들었고
그건 마치 한바탕 전쟁과 다름 없었어.
음식준비로 지저분해진 씽크대와 부엌청소까지 끝내고 나니 뒷 목이 뻣뻣해지고 다리가 저려오고 허리는 정말 똑 부러지는 느낌이었어.
휴....
어른이 되면 이렇게 힘들 줄도 모르고 어렸을 때는 명절을 왜 그리도 좋아했을까?
먹는 것이 귀할 때 명절은 넉넉한 먹거리가 보장이 되어서 그랬을까?
아님 친지들로부터 받았던 용돈으로 비록 가짜이긴 하지만 노랑 핑크,초록 고운 빛깔의
목걸이,반지,귀걸이 같은 유치하면서도 화려했던 보석들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날이어서 그랬을까?
그러고 보니 그 때의 내 즐거움이 지금의 내가 겪는 고단함에서 얻어낸 것이었잖아.
맛있는 음식들은 엄마들의 수고에서 나왔고,용돈들은 얄팍한 지갑 속의 고단한 한숨이 배인 그런 돈이었던 거야.
그러나 난 몰랐어.마냥 신나고 즐겁기만 했어.
어른들은 무쇠 팔다리를 가진 줄로만 알았고 어른 들의 지갑은 늘 도깨비 방망이인 줄로만 알았거든.
모든 것이 부족하고 귀했던 그 때의 명절은 그래서 지금 아이들의 명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신나는 날이었어.
여하튼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왔어.
분주 했던 명절은 그렇게 지나갔어.
그런데 말이야,난 아무리 힘들어도 불평을 할 수가 없어.
아프신 다리 이끄시며 그래도 도와 주시려고 애쓰시는 어머님을 향해 불만을 가질 수는 없잖아.
다친 손가락 때문에 어떻게 해 볼 수도 없으면서 올케 옆에서 미안한 맘으로 바짝바짝 속 태우시는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나는 큰 형님을 원망할 수도 없잖아.
그것도 동생 좋아한다고 사 오신 오징어인데...
한결같이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하나 뿐인 친정 올케에게 마음 써 주시는데 내 누구를 미워하겠냐구...
하지만 말이야,그래도 정말 힘들었거든...참 고단했거든...
그러니 그 스트레스를 명절이란 놈에게 풀 수 밖엔 도리가 없잖아.
그런데 있지,참 희한하게도 다 지나간 지금 생각해보니 말야.
명절이 다가올 때는 집더미만한 해일처럼 느껴졌는데
지나간 흔적을 보니 아무런 상처도 남기질 않았고 그건 파도도 아니었던 것 같애.
물론 지나고 나니 하는 말이지만...
왜냐면...
참 수고했다는,참 맛있다는,참 고맙다는 그 한마디 한 마디 말씀들이
내 고단함을 다 씻어 가 버린거야.
그리고 부끄럽지만 목이 좀 아파오길래
그래 잘 됐다,차라리 많이 아파서 나 몰라라 드러 누워야지하는 맘까지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여전히 내 몸은 꿋꿋하고 산뜻하더라구.
그런 내 몸의 건강함이 고마웠어.
그리고 피곤을 묻혀 얼굴 찌푸릴 수 있는 상황에도 환하게 웃을 수 있어
내 스스로를 달달 볶지 않고 편안하게 해 준 내 무딘 마음이 차라리 행복했어.
날 위하려는 마음이 있어 부침개 한쪽에도 내 정을 포개어 드릴 수 있었으니
이래서 주고 받는 정이란 게 좋은 것인가 봐.
그런데 있지,그래도 명절은 싫어.
난 힘든 게 무지 싫거든.
그래서 이렇게 궁시렁 궁시렁 거리고 있는 거야.
매미때문에 우는 사람 보면서 함께 속상해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