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알게 된 노부부에 관한 우스개 이야기 세가지이다.
<이야기 하나>
어떤 할머니가 시집 보낸 딸이 잘 살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딸 네 집으로 가셨는데 살림살이 하는 모습이 제법인지라 흐뭇해 하셨다고 한다.그런데 사위가 퇴근할 무렵이 되자 갑자기 딸이 입고 있던 옷을 전부 벗어 버리고 알몸이 되어 버렸다.그것을 보신 할머니가 너무 놀라 옷을 입으라고 하니 딸은 자신이 `사랑의 옷'을 입었노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 온 할머니도 할아버지 앞에서 딸처럼 옷을 벗고 `사랑의 옷'이라는 말씀을 하셨다.그것을 들으신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 "그럼 그 주름진 옷이나 좀 다려 입으시게!"
<이야기 둘>
어느 날, 한 할아버지가 김치찌개 생각이 간절해서 신문을 보시다 말고 부엌에 계신 할머니께 김치찌개를 해 먹자고 말씀하셨다.그러나 할머니는 귀가 어두우신지 도통 대답이 없으셨고 그것을 애처롭게 생각하신 할아버지는 조금 더 큰 음성으로 재차 김치찌개를 주문하셨다.그런데도 대답이 없자 할아버지는 연민의 감정이 솟아 올라 눈시울이 붉어 지는 것을 애써 감추시며 `어휴,가엾어라.이젠 귀가 완전히 고장났구나.'하는 마음으로 할머니 바로 곁으로 다가 가셨다.그리곤 보다 큰 음성으로 "오늘은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구!"라고 하셨는데 그 순간 할머니 하시는 말씀. "어이구, 이 영감탱이가 귀가 먹었나,도대체 몇 번이나 대답하게 만드는 거예욧!"
<이야기 셋>
할아버지와 나란히 잠자리에 드신 할머니가 갑자기 신혼시절이 그리워져서 할아버지께 "영감,당신 옛날엔 내가 이렇게 누워 있음 손을 잡아 주었지요."라고 하셨다.할아버지는 "알았어,손 이리 줘."하시면서 할머니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그랬더니 할머니는 또 "그리고는 제 뺨에 살짝 입도 맞추었지요."라고 하셨다.할아버지는 또 그대로 해 주셨다.거기에 만족 못하신 할머니가 "그러다가 제가 너무 귀엽다며 앙 깨물어 주기도 했지요."라고 하시자 할아버지는 갑자기 귀찮은 듯 벌떡 일어나셨고 왜 그러느냐는 할머니 물음에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 "깨물려면 틀니 갖고 와야 하잖아!"
우스개라는 이 세 이야기는 나에게 자꾸만 슬픈 웃음을 흘리게 한다.그것은 세월 따라 어쩔 수 없이 맞게 되는 육신의 노쇠 때문이다.무슨 일이든 당해 보지 않으면 그 심정을 알 수 없다고 하니 나 또한 노년의 삶을 잘 모를 것이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턱없이 부족한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여든을 목전에 두신 두 분의 시부모님과 십 수년을 함께 살다 보니 몸과 마음의 노쇠함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내 결혼 사진에 계신 두 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놀랍도록 달라지신 모습이셨다.
새댁일 때 어머님 흰 머리를 자주 뽑아 드렸는데 그 때마다 시원하다 하시며 곤하게 잠이 드시던 어머님도 이젠 흰머리가 너무 성하셔서 뽑아 드릴 수도 없게 되었고 그 때처럼 단잠을 주무시게 해 드릴 수도 없게 되었다.아직은 비교적 정정하신 아버님과는 달리 어머님은 몸 어느 한 군데 성하신 곳이 없을 정도로 고통을 받으셔서 당신 스스로 `귀신 같은 모습'이라 하실만큼 검불처럼 지친 모습이 되셨다.
살림을 일구시느라 젊어서 당신 몸 돌보실 틈이 없이 일하신데다 따님만 내리 넷을 낳으셨던 까닭에 산후 조리조차 제대로 못하셨던 것이 이젠 어머님 건강한 삶을 뒤에서 덜컥 덜미를 잡고 마는 원인이 되고 만 것이다.
한의사이신 네 째 아주버님의 온갖 노력도, 유명하다는 의사의 어떤 치료도 다 소용 없고 이제는 진통제조차 말을 듣질 않으니 그저 손놓고 지켜보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요 며칠간은 밤에 한 숨도 못 주무신 듯 아침에 뵐 때마다 두 눈이 검게 드리워져 퀭한 모습이시다.누워 계신 것이 앉아 계신 것보다 오히려 더 아프다 하시니 그 불면의 밤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실 것인가.
그런데도 아무 것도 해 드릴 수 없는 며느리는 그저 그런 고통을 호소하시는 어머님 곁에서 듣고 있는 것만이 고작이다.어느 날 그 고통이 너무 괴로워 보여서 "어머님,전 어머님 말씀을 들어드릴 뿐 어떤 위로도 해 드릴 수가 없네요.참 못난 며느리이지요?제가 그 고통을 알려면 늙어 어머님처럼 아픔을 겪어야만 하겠지요.그러나 전 평생 그 고통 이해 못해 드리는 며느리이고파요.너무 힘들게 보이셔서 차마 전 겪고 싶질 않아요.그래서 어머님 뵈면 저도 너무 속상하답니다."라며 안타까워 할 뿐이다.
그러면 어머님은 '아니,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절대 아프지 마라.정말 여차하면 창 밖으로 뛰어 내리고 싶을 만큼 못 견디는 아픔인데 널랑은 절대 아프지 마라."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신다.
이제는 정말 어머님이 소원이라며 말씀하시는 그 기도를 하는 것 밖엔 해 드릴 것이 없는 것인가.언젠가 돌아 가시게 될 그 날이 오면 고통없이 갈 수 있는 복을 기도해 달라는 말씀.그것 밖에 해 드릴 것이 없는지 정말 답답한 마음이다.어머님은 후 일 돌아가시게 되면 화장을 해 달라는 말씀을 하신다.그래서 뼛가루를 뿌려 주면 원없이 자유롭게 훨훨 날아 다니고 싶다 하신다.
며느리로서는 당신 죽음에 관한 말씀인지라 차마 듣기가 민망하여 애써 딴청을 부리는데 열린 귀로 다 듣고 만 그 간곡한 청을 뒷 날 어찌해야할 지 가슴 먹먹하다.
그런 고통 중에서도 우렁각시처럼 가끔씩 아픈 몸을 이끄시고 국도 끓이시고 찌개도 해 놓으시는 어머님.그리고 당신 방은 꼭 당신 손으로 청소 하시는 깔끔하신 어머님.
아,난 정말 그리 될 수만 있다면 어머님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모든 아픔과 상처는 저 레테의 강에 띄워 영원히 건네 보내고 고마운 마음만 가슴에 새겨 기억하며 그 힘으로 남은 날들을 보살펴 드리고 싶다.어떤 노인 분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젊을 줄 알았더냐,너도 늙어 겪으면 노인네 심정 다 알거다.'라는 말씀들을 잘 하신다.그러나 유난히 겁많고 아픈 것을 못 참는 나는 어머님의 그런 고통만큼은 영원히 겪지 않고 그래서 영원히 이해 못해 드리는 며느리로 남고 싶다.
정말 내게는 오지 마라.
차마 겪지 못할 노년의 서러운 아픔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