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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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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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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해프닝


BY 선물 2003-07-16

중 1인 딸아이가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9시부터 시작된 전화는 30분을 넘어도 좀처럼 끝날 생각을 않는다.
설거지를 하다 말고 나는 아이에게 그만 끊으라는 무언의 압력을 담은 눈빛으로 날카롭게 흘겨주었다.
아이는 잠시 시계를 보다가 곧 전화를 끊는다.단번에 엄마말을 듣는 아이가 아닌데 웬 일인가하고 반가운 맘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 나가서 운동을 좀 하고 오겠다며 허둥대는 모습으로 현관을 나선다.
뭔가 그 모습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하던 설거지를 미루고는 아이 뒤를 따라 나선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라곤 전혀 없었지만 나는 왠지 아이가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뒤따라 나선 엄마를 못마땅하게 쳐다본다.그럴수록 나는 더 막연한 확신을 갖고 아이옆에 바짝 붙어선다.
막상 밖에 나온 아이는 그냥 맥없이 투벅투벅 걷다가 이내 생각을 바꾼 듯
"엄마,엄마하고 나오니 참 좋다.우리 둘이 한바퀴 돌자."하면서 팔짱을 끼며 너스레를 떤다.
`요놈이 분명 무슨 사연이 있는게야,뭔가를 숨기고 있는게 분명해!'
혼자서 잔뜩 의심의 마음을 품으니 눈 앞에 서 있는 아이가 갑자기 괘씸해진다.
나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달밤에 웬 체조니?"하면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이도 두 말 않고 그냥 따라온다.
집에 들어서자 마자 아이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서는 아이를 종용하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전화를 받고 그렇게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냐고 따져 물었다.
차마 누구를 만날려고 그랬냐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일까지는 입밖으로 꺼내질 못했다.
아이는 그냥 더듬거리며 운동을 해서 살을 빼고 싶어서라고 매일 이시간에는 아파트를 한바퀴 돌거라고 했다.
그 말에 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자꾸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마치 사냥감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눈을 날카롭게 번득이는 사냥꾼의 모습과 나는 흡사하였을 것이다.
드디어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아이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화를 한 친구아이말에 의하면 밤 9시 35분에 아무도 없이 혼자서 달리기를 하면 다이어트귀신이 달라붙어서 살을 빼준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 그 시간이 되어 정신없이 집을 나서는데 엄마가 눈치없이 따라나와서 오늘은 실패를 했다면서
앞으로는 그렇게 밤에 혼자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귀신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잠도 혼자 못자고 머리조차 혼자서는 못 감는다.
부부를 생이별시키고 엄마를 꼭 자기 옆에 재우는 딸이지만 그래도 그러는 아이가 측은하기도 해서
나는 인내를 갖고 아이가 무서움으로부터 벗어나길 기다렸다.
나 또한 지금은 코미디에서나 나올법한 긴머리 풀어헤치고 입가에 피흘리며 하얀 옷 입고 날라다니는
귀신을 얼마나 무서워했던가?
그것이 심하면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옆에서 안심시켜주려고 여러 궁리를 하고 있던 나로서는
아이가 귀신이 붙길 바라며 밤늦은 시간에 혼자 밖으로 나가려 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라웠다.
아이에게 귀신을 무서워하면서 왜 네 옆에 귀신이 붙기를 원하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갑자기 내 말에 끄덕이며
친구말만 듣고 너무 순식간에 판단한 것인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무섭다면서 앞으로 늦게 나가겠다는 말은 안하겠다고 한다.
어쩜 아이에게 더 겁을 주었는지도 모른다.나는 그저 아이를 의심한 나자신이 부끄럽기만 했다.
어른인 나는 아이보다 훨씬 많은 죄를 알고 있고 가끔은 아이로서는 상상도 못할 죄를 아이에게 뒤집어씌우며 억울한 맘 갖게 만들 때도 있었다.
그것은 다 험한 세상을 아는 엄마의 잘못이기도 했을 것이다.물론 아이에 대한 염려였다고 변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여과없이 드러내 놓고 아이를 혼냈던 것은 정말 큰 잘못이었다.
아이에 대한 의심을 가진 것이 속으로 미안해서 나는 아이 등을 토닥여주고는 방을 나왔다.
그러나 해주어야 했을 말을 놓친 것 같다.
세상에 귀신이 있다고 생각되면 천사도 믿으라는 말.
선하게 살면 귀신이 붙을 수 없고 널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항상 네 곁에 머무를 것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진다.
그것은 아직도 사람보다 귀신이 무섭다고 생각하는 어리숙한 어른인 나 자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위로의 말이다.
오늘은 학교에서 돌아올 딸아이가 유난히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