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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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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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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강 1


BY 생각하는 이 2004-11-22


       

       

      겨울강


      그 해 이스락 끝난 고구마 밭을 헤집던 을씨년스런

      바람을 맞으며 겨울강을 따라  떠나신 아버지 

      해거름녘 잦은 정전처럼 불안한 잠자리가

      며칠째 폭설로 내렸다.


       

      담장 밑 젓물린 어미처럼 빈거죽만 남은 옥수수대가

      휘청일 때까지 거친 숨으로 마당을 갈아먹던 눈발

      어머닌 그 새벽 탄불을 갈아 고단한 식구들의

      잠을 지펴주고

      먼 길을 되밟아 오는 바람 소리에 귀를 묻곤 했다.


       

      언제나 동굴같은 어둠을 베어내며 아침이 왔다.

      처마 끝 굵은 고드름이 햇살에 부대낄 때면

      바람 드나드는 문풍지마다  긴 한숨 꽃이 피고

      그 때마다 어머닌 갈대처럼 강가에 서 있었다.


      이따금씩 떠날 때 그 막막한 삶의 모습으로

      겨울강을 건너 오는 젊은 남정네들 속에서

      어머니의 기다림은 맥없이 비틀거렸다

       

      참으로 더딘 날이었다.

      묵은 김치에 진저리를 치며 우리는

      아버지의 그리움보다 봄녘 들판의 볕이 되고 싶었다.

      끝내 오지 않을 것 같은 그 봄,

      발목을 푹푹 적시는 눈발이 겨우내 잠을 설치게 했다.


       

      겨울 끝자락이었을까

      언 땅이 습기를 토하기 시작한 아침

      어머닌 아버지의 손 때가 묻은 목장갑을 꺼내 들고

      겨울 강을 건넜다.


       

      그리움 보다 더 절실한 삶의 부스러기들,

      보리밥처럼 불어터진 날들을  걷어 내고

      어머닌 방구들을 지피는 탄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