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맹견사육허가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736

뵈기 싫은거 짤라버릴까?


BY 나의복숭 2003-07-16

친정집은 전형적인 시골농가다.
부엌은 입식부엌으로 개량을 했지만
화장실은 뒷간이란 소리에 걸맞게
대문 옆에 붙어있는 재래식 화장실이다.

사람의 습관이란게 참 우스워서
늘 수세식에 길들여져있다보니 한번씩 친정집에가면
화장실 갈때마다 여간 곤혹스럽지않다.
반성을 하긴한다.
늙으신 부모님도 불편없이 사용하는데
내가 언제부터 수세식 화장실 사용했다고 불편하니 어쩌니
요런 건방스런 생각을 하나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시골에서의 친정집도 없으지므로
인제부터는 재래식 화장실의 볼일도 불편하다 생각말자고 맘 먹었다.

화장실에 올라서니...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뒷간에 올라서니
썰렁하다 못해 귀곡산장처럼 으스스했다.
한쪽 모퉁이엔 쓰다남은 시멘트 포대가 반쯤 담긴채 놓여있는데...
볼일 본다고 정색해서 앉으니
둥그란 프라스틱 쓰레기통에 엄마 솜씨인지
신문지를 네모 반듯하게 오려서 넣어놓은게 보였다.
요새도 신문지를? 하실분이 있으실라나 모르겠지만
두루말이 휴지를 아무리 사다 드려도 신문지 사용은
변함이 없으시니 인제 그러려니 해버린다.
변기밑에서 휑하니 올라오는 바람은 어찌나 찬지
엉덩이가 시려서 얼것만 같다.
이러니 내동생은 친정와서 절데 자고가질 않을려고 하는데
처음엔 서운했지만 인제는 그것도 그러려니 해버린다.

내 얼굴 바로 벽앞에 전에는 안보이든 밧줄이 길게
늘어뜨려져서 조금씩 흔들거리고 있었다.
끝에는 내 얼굴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동그랗게
만들어서 매듭을 지었는데...
이걸 왜 여기다 달아놨을까?
안그래도 냄새나고 썰렁한 재래식 화장실에
얼굴 들어갈 정도의 밧줄이 늘어뜨려져 있으니
꼭 고문실 분위기같기도 하다.
하긴 내가 고문실이라고 보긴 했나만
영화를 보니 그렇드만.....
뵈기 싫은거 짤라버릴까?


내가 들고간 두루마리 휴지를 사용하고선
신문지가 담긴 휴지통에 넣었다.
''제발 엄마. 아부지. 인제 신문지 사용하지말고
휴지 좀 사용하세요''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얼른 내 무릎만한 높이의
뒷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웃채의 방으로 들어가니 모자를 쓰고 계시는 엄마가
아랫목으로 앉으라고 얼른 비껴주신다.
보일러 사용한지가 오래건만 아직도 울 엄마는
아랫쪽이 더 따뜻한줄 아시니...

모자.
도시 사람들이 멋 부린다고 쓰고 다니는 모자를
울엄마도 멋 부린다고 사용하면 얼마나 좋으랴.
겨울이면 머리 정수리가 시려서 언제나 털모자 팻션이니
볼때마다 가슴이 쨘하다.

''엄마. 변소 앞쪽에 밧줄 그걸 왜 늘어뜨려 놓았쑤?
칼 가지고가서 짤라줄까?''
아버지나 엄마가 힘들거나 귀찮아서 늘어뜨려진
밧줄을 안짜르는줄 알았기에 내가 짤라놓고 가야지
하는 맘였다.
''아이구 안된다. 그냥 냅둬라''
''왜? 으스스하니 뵈기 싫드구만..''
''내가 그게 있어야 붙잡고 일어서지''
"?"

처음엔 무슨말인지 얼른 이해가 안갔다.
그걸 왜 붙잡아야 하는데.....?
얼팡한 얼굴로 갸우뚱~
''힘이 없어서...안붙잡으면 못 일어서니....''
아...
그때사 이 멍청한 딸 눈에 뿌엿게 눈물이 고여왔다.
그렇구나...그렇구나...
그게 손잡이였구나.....
그렇게 힘이 없으셨구나....
내가 우는걸 보면 엄마가 마음 아파할까봐
머리를 반대쪽으로 돌리고선 흐르는 눈물을 딱지도 못했다.
''미안해. 엄마. 정말 미안해. 난 골백살을 먹어도
철이 안날꺼야. 흑흑''

인제는
수분까지 다 빠졌는지 앙상한 뼈에 쪼글쪼글 붙어있는 살이
너무나 가슴을 시리게 하는데
그 엄마를 어쩔수없이 그냥 두고 올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지만.... 어쩌겠는가?
''엄마 또올게''
''오지마라. 차비만해도 얼만데...''
그러나 나는 안다.
그말속에는 언제나 그리움이 있다는걸....
못난딸을 애타게 기다린다는걸...
인제 자주본들 몇번이나 볼수 있을까 하는 아쉬운 회한을.....

화장실 아니 뒷간을 다시 갔다.
내가 아침에 냄새나는걸 참으며
밧줄 손잡이에 수건을 감아서 잡기 좋도록
바느질해놓았었기에.....
확인해보니 하늘색 타월 손잡이가 깨끗하게
내가 해놓은데로 메달려 있었다.
내 스스로 대견해서 싱긋 웃었다.
''엄마. 내가 요렇게 해 놓았어''
님이 보면 서글퍼서 웃을일이지만
나는 내 엄마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그 뿌듯함으로
친정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웠었다.
서글프긴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