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돈이 필요했다.
통장에 돈이 있다면 걱정할게 무어겠나만
잔고가 비어있는 상태에서 쓸일이 생기니
말 그대로 앞이 깜깜했다.
어디가서 융통하나?
없으면 안쓰는게 자존심이라 생각하고
남에게 아쉬운 소릴 안하는 성격이라 막막했다.
한며칠만이면 융통이 되는데 문제는 당장이니...
문득
아들이 생각났다.
알바를 해서 통장에 등록금 낼 돈을 적립해놓은줄
알고있지만 그돈을 뻔뻔스레 빌려 달라고 할려니
어미입장에서 차마 입이 안떨어진다.
내 자격지심인지도 모르겠다.
돈이 없어서 지가 벌어 공부하는것만해도 얼마나
고마운가?
부모된 맘에 대견스럽고 그래서 언제나 죄지은 듯
미안한 맘인데....
남편한테는 돈을 맡겨놓은 듯
당당하게 내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자식에게는 빌려달란 소리도 못하겠으니
왜인지 모르겠다.
평소 장난치며 할말 안할말 다하는 모자간인데 말이다.
그래도 친지나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거보담은
아들에게 말하는게 나을거 같았다.
저얼데 아쉬운소리 안하는 오마니의 성격을 아는넘인지라
측은지심해하며 상처받지 않을라나 모르겠다.
근데...왜 이렇게 눈치가 보이는지....
괜히 이런저런 쓸데없는 소리만 슬슬 하다가
눈 질끈 감고 용기를 냈다.
"혹시 너...."
아들넘 신발 신고 나갈려다가 머뭇머뭇하는
내 모습을 보고
"왜 그러시는데요? 저 돈 줄라고요?"
에휴~
무거운 분위기 눈치채고 저넘이 먼저 선수를 치는데
돈 빌릴려고 안떨어지는 입을 뗄려고 하는
내 마음이 죄지은듯 콩닥콩닥거린다.
그런데 말이다
"반전 데모하지마라"
내입에서는 생각지도 않는 엉뚱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게 뭐람?
난 저넘을 여태 먹여주고 키워줬는데
돈 소리가 이렇게 하기 어려운가?
내가 잔소리하면서 아들 돈 줄때는 결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남도 아니고 아들인데 왜 당당하지 못할까?
달라는것도 아니고 빌리는건데....
"돈 줄려는게 아니고.... 너 엄마한테 돈 좀 빌려줄꺼있니?"
눈 질끈 감고 말하는데
왜 이리 서러운 맘이 드는지 모르겠다.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날려고 하길레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신을 신고 나갈려든 아들넘이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잠깐의 시간이지만 내겐 아주 긴 시간같이 느껴지고
괜히 말했단 아쉬움과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엄마는 당당해야 하는데...
"여기 있습니다. 돈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이야기하라
말씀드렸잖아요?"
맞다.
무능력한 부모 대신하여 등록금 준비한다고
알바하며 모아놓은돈 나에게 맡기려할 때
"너 성인이야. 너가 관리해"
그 통장 볼때마다 마음아플꺼같아 아예
아들보고 관리하라고 했었다.
그때 아들넘은 그랬다.
돈 있으니 언제든지 필요하면 갖다 쓰라고...
얼마가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알바해서 등록금 하기위해 모우는돈을
어떻게 가슴 시리게 물어본단 말인가?
"딱 열흘 쓰고 다시 채워놓을게"
"에이 어머니 무슨소리를요, 우리가 남인가요?"
짐짓 눈 부라리는 아들이 고맙다.
그래
우린 남이 아니지
아들과 엄마지.
아들과 엄마기 때문에 더 네 돈을 함부로
쓸수가 없는 내 심정 이해하겠니?
"참말로 어머니답잖아요. 저 갑니다"
아들은 현관문 열고 재빨리 나갔다.
병아리 눈물만큼 남아있는 내 자존심을 배려함이리라.
털썩 그냥 마루에 주저 앉았다.
손때 묻은 통장과 낮익은 도장을 보니 자꾸 눈물이 났다.
내 자신에 대한 한심함과 아들에 대한 연민.
미안함.... 정말 어쩔줄 모르겠다.
아직은 부모 도움을 필요로 할 시기인데
부모가 되어서 이렇게 염치없이 아들돈을 쓰다니....
8순이 넘은 내 엄마는 아직도 나를 도와주고 있는데
난 뻔뻔스럽게 20대의 아들넘 도움을 받고있으니
이 한심함을 어쩌면 좋으랴.
무릎위에 머리 파묻고 있으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딲아도 자꾸만 자꾸만....
아들아 미안하다.
세상 살다보니 이런날도 있네.
무능력한 부모는 되고싶지 않았는데
세월이 이렇게 엄마를 초라하게 만들구나.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베란다쪽으로 햇살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