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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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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그 가스나


BY 나의복숭 2003-07-16

아들넘 얼굴이 전과 달리 조금씩 어두워진걸
눈치챈건 봄이 시작되고부터이다.
그냥 흔한말로 봄을 타는줄 알았다.
밥을 조금 덜 먹어도
음..봄이니 입맛이 없나보다 생각했고
전에 없이 웃질않아도 인제 좀 과묵해졌나보다
그렇게 무심하게 넘겼다.

우연히 아들넘에게 온 전화요금 고지서를 봤다.
여자친구를 사귀고부터 엄청나게 나온 요금을 보고
내가 보태줄것도 아니면서 잔소리에 큰소리에 욕을한
전력이 있는지라 여전히 많이 나왔겠지...
가벼운 맘으로 들여다 봤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반대로 엄청 줄어져 있었다.
당연하게 인제 이넘이 정신을 차렸는가보다 생각했다가
언뜻 스치는 예감.
혹 여자친구하고 헤어진건 아닐까?
그러고보니 내 느낌을 뒤받침해줄 아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조금씩 사실로 다가왔다.
맞다. 그러고 보니..그러고 보니....

밥 먹는다고 아들하고 밥상에 마주 앉았다.
얼굴이 헬쓱해진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칼치 가시를 발라서 아들쪽으로 밀어주니
전같으면
"아이구 우리 오마니. 왜 이리 친절하십니까?''
너스레가 나올껀데 말이 없다.
말이 없는건 고사하고 칼치쪽으로 활발하게
젓가락질도 않는다.
풀밭인 밥상보고
''뱀 나오겠다" 킬킬대든넘이...

"너 여자친구하고 헤어졌니?"
빙 둘러 물을것도 없이 단도직업적으로 물었다.
사실이라면 직선적으로 묻는게 덜 상처받을거 같아서...
"네"
역시 짧은 대답.
그랬구나.
학생이 공부나 하지 뭔 연애냐고 거품물고 닥달하든
내가 그만 말이 콱 막혔다.
"아니 왜? 왜 헤어졌는데?"
"그냥요. 제가 싫은가봐요"
그만 가슴이 쨘해왔다.
내 아들이 어디가 어때서...문디 가스나...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평소 아들에대한 기대치가 큰탓인지
그놈 하는게 영 내 맘에 차지않았고 부족했다.
장손인데도 집안 어른들한테 소홀하는거 같았고
철이 들 난거 같았고
공부 열심히 하지 않는것도 늘 속상했지.
남들이 아들에 대한 칭찬을 하고
잘난 아들이라고 치켜줄때도
혹여 그런말이 아들귀에 들어가서
요넘이 100% 진짠줄믿고
자만심에 빠질까봐 경계하곤 했다.

제대하고 복학후 여자친구 사귀는거 알았을땐
그시간에 공부나 좀 더 열심히 하지...
학생 본분 들먹이며 못마땅해 했다.
''공부만 하는 공부벌레는 쫌생이지. 대학생은
낭만을 즐길줄도 알아야 하고 한번쯤 학생운동에
참여해보는것도 괜찮아..."
남의 아들에겐 요따위 소릴 능청스레 하면서
내 아들은 옆눈 안살피고 학생답게 공부를 해줬으면싶고
데모대에 휩쓸리지 말았음 싶고....
모순이라도 그런 모순없는 이기적인 엄마였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근데 막상 아들이 사귀든 여자친구와 결별했단
소릴 들으니 너무 너무 속이 상했다.
"가시나 지가 뭐 잘났다고 내 아들한테 상처를 줘?"
세상 엄마맘이 다 그런가?
이때는 내 아들이 너무 잘난 아들로 둔갑해있었다.
지가 뭔데...지가 뭔데.....
아들의 까슬한 얼굴을 보니 측은하기도 하고
뭐라고 위로할지 할말이 없다.
"가스나 그거 못땐네. 야야 치워라. 너같은 애를
싫다니...내눈엔 니가 젤 잘나 보인다"
"어머니 아들이니 잘나 보이지요"
웃어야 되는데 평소처럼 웃음이 안나온다.

아들에겐 첫사랑인거 같다.
첫사랑은 깨어지는게 정설이고 깨어짐으로써 아름답다는
소리는 차마 얘기 못하겠다.
그래. 아들아
힘들고 괴롭겠지
그러나 그 힘듬과 괴로움후에 넌 훨씬 더
성숙해져있을꺼고 어른으로 성큼 한발 올라와 있을꺼야.
세상 사람들 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살아왔단다.
니 아빠도....엄마도... 모두....

마음이 쨘하다.
전화요금 많이 나온다고 잔소리했는데
인제 요금이 팍 줄었는데도 왜 이리 맘이 아픈가?
간사스런 내 맘이 밉다.

아들아.
인제 전화요금 얼마나 나오든 절대 잔소리 않으마.
수재들만 모인 니들 학교에서 보통머리인 너보고
장학생 되라고 닥달한거 취소할게.
공부 안해도 좋다.
그냥 대학생활 낭만적으로 보내거라.
잊을껀 하루 빨리 잊고 전처럼 푼수엄마랑
장난치며 그렇게 놀자꾸나.

그런데..그런데...
내 아들하고 헤어진 그 가스나.
참말로 밉다. 밉다. 밉다.